나는 쓸데없이 널려 있는 낡은 널빤지를 보면
모두 일으켜세워 이리저리 얽어서 집을 짓고 싶어진다
(……)
다만 이 세상이 온통 비어서 너무 쓸쓸하여
어느 한구석에라도 집 한 채 지어놓고
외로운 사람들 마음 텅 빈 사람들
그 집에 와서 다리 펴고 쉬어가면 좋겠다
때문에 날마다
의미 없이 버려진 언어들을 주워 일으켜
이리저리 아귀를 맞추어 집 짓는 일에 골몰한다
나 같은 사람 마음 텅 비어 쓸쓸한 사람을 위하여
_「쓸쓸함을 위하여」 중에서
『사는 법』 『내 안의 광야』 『지상의 그 집』 등 다수의 시집을 통해 젊은 날의 회환과 살아 있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던 홍윤숙 시인이 ‘마지막 시집을 엮는다’는 소회로 열여섯번째 시집 『쓸쓸함을 위하여』를 선보인다. 황혼녘을 담담하게 응시하는 쓸쓸함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시집은, 그러나 남아 있는 길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에 눈길을 주는 생의 따뜻함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한 생애를 정리하면서 돌아다보는 지나온 산하가 아득하기만 하다.
언젠가 방랑(放浪)이란 낱말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얼마나 신선하고 유혹적이며 심신을 뜨겁게 달구는가를, 청춘의 또다른 말 방랑 ; 다시는 없을 그 푸르던 날들을 아득히 돌아본다. _‘책머리에’에서
비어 있음으로 충만한, 그 텅 빈 아름다움
총 5부로 구성된 이 시집에서는 세상의 풍경 속에 투영된 시인의 정갈한 마음자리가 고스란히 읽힌다. 길을 걷다가 발을 멈추고 뒤돌아본 나뭇가지, 혹은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피어 있는 진보랏빛 과꽃 같은 일상의 풍경만으로도 시인은 생의 여정을 불러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을까
이 길에 머지않아 겨울 깊어지고 얼음 깔리면
다시 구석진 골방 흰 벽에 갇혀서
공허한 허기를 삭은 등뼈로 버티겠지
오늘 아직은 남은 길에 햇살 따스하니
하루를 천 년처럼 누리며 간다.
―「길을 걷다가」 중에서
젊은 날 “수만 날을 꿈꾸며 떠돌았”다 하더라도 날이 저물어 “아득한 마을 등불 켜지면” 누구라도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다. “돌아갈 집이 있어/지상의 날들 비 오고 바람 차도/행복했다”라고 말하는 시인은 이미 무언가를 비워둔 듯 보이지만, 언제나 세상을 향해 한쪽 창을 열어두고 있다. 그렇게 누군가의 “환히 열린 창”이 되기를, 다리 펴고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집 한 채”가 되기를 소원한다.
그는 생각합니다. 그가 살아온 지상의 집엔
지붕도 있고 서까래도 든든하여
비바람 눈보라 막아주었으나
안식이 없었다고
지금 텅 빈 항아리 속 해묵은 암자엔
지붕도 문도 없이 비바람 제멋대로 들이치지만
알 수 없는 안식이
따스한 용서의 눈길로 감싸온다고
이미 해 저물어 산도 길도 마을도
어둠으로 지워져 지상의 땅끝 어디쯤인지도 모를
빈 항아리 속 허궁에 앉아서
끝없이 무변한 광야가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고 따뜻하여 눈물나는
눈부시게 흰 허무의 꽃 한 송이 신비롭게 피어나는
기이한 향기에 가슴 젖어 있습니다
―「빈 항아리 5」 중에서
전 열 편으로 정리된 ‘빈 항아리’ 연작은 비어 있음으로 충만할 수 있는 비움의 경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어 있는 항아리 속에 찬란하고도 아늑한 풍경이 담겨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형체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지만 항아리 속 풍경만은 “끝없이 무변한” 무엇이 된다. “빈 항아리 속 허궁”이 오히려 어머니의 ‘자궁’처럼 읽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인은 알고 있다. 안식이 있는 그곳으로 “가는 길이 어딘지 어디서 끝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걸어서밖에는 갈 수 없는 길”이며 “아무도 동행할 수 없”는 여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켜켜이 쌓여오는 적막”, 그 아득함 속에서도 “그 길이 이젠 두렵지 않다”고.
5부에 수록된 두 편의 에세이에서는 시를 향한 시인의 믿음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새벽 두시나 세시의 영원처럼 적막한 고독 속에서” 가만히 등을 두드려주었던 시는, “우리가 의미 없이 던져진 지상의 고독한 고아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목소리”이다.
시는 나의 영원한 스승이고 성서이다. 하여 나는 날마다 그 스승을 따라 성서를 안고 희망으로 떠났다가 고통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고통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산실이기에 피하지 않고 몸을 던진다. 아무런 소득 없는 무위의 도로(徒勞)라 할지라도 살아 있음으로 하여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빛과 어둠이기에.
―「언어, 사랑의 관계지음」 중에서
비어 있는 항아리를 보면 무엇이든 그 속에 담아두고 싶다고, 마음이 텅 빈 사람들이 다리 펴고 쉴 수 있는 집을 지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시인이 짓고 있는 집은 바로, 다름아닌 그의 詩일 것이다. 세상의 굽잇길을 돌아온 노시인의 솔직한 심경이, 읽는 이의 영혼까지 정갈하게 씻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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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윤숙 |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 재학중 한국전쟁을 겪고 학업을 중단했다. 1947년 문예신보에 시 「가을」을, 1948년 『신천지』에 「낙엽의 노래」를, 같은 해 『예술평론』에 「까마귀」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공초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장식론』 『하지제』 『사는 법』 『태양의 건넛마을』 『경의선 보통열차』 『실낙원의 아침』 『조선의 꽃』 『마지막 공부』 『내 안의 광야』 『지상의 그 집』 『홍윤숙 시전집』 등 열다섯 권과, 수필집 『자유 그리고 순간의 지상』 『하루 한순간을』 등 아홉 권이 있으며, 시극과 희곡, 장시를 묶은 『홍윤숙 작품집』이 있다.
* 초판발행 | 2010년 6월 28일
* 121*186 | 148쪽 | 값 7,500원
* ISBN 978-89-546-1152-7 03810
* 책임편집 | 조연주 박지영 (031-955-8865, 8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