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악마의 안내인처럼, 회사원의 쇄말적인 일상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서서히 일상 저 너머 인간의 어둠과 비극으로 접근시키다가 불현듯 지옥으로 밀쳐내버리고 마는 서사의 힘과 흡인력이 매력적이다. _은희경
읽는 내내 이 소설에 들인 작가의 공력에 감탄했고 급기야 압도당했다. 작품의 모든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일사분란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_류보선
이 소설은 증권회사 대리의 남루한 일상을 마법과 판타지의 세계와 나란히 병렬시킴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하고 있는 일상의 허구성과 위험을 과감하게 폭로한다. 다양한 영역의 정보로 가득 찬, 편집증에 가까운 빽빽한 디테일 역시 흥미로웠다. _신수정
‘이미’ 현실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이 ‘불온한 세계’
이문환의 소설은 기괴하고 당혹스럽다. 섹스와 폭력과 도착과 환각이 도처에 난무하는 세계,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분간할 수 없는 그 기괴한 세계는, 그러나 너무도 현실적인 것이기에 더욱 섬뜩하다.
1996년 『세계의문학』 겨울호에 단편 「마술사」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문환이 첫 소설집 『럭셔리 걸』(2003, 문학동네) 이후 4년 만에 새 장편(이자 첫 장편)을 선보인다.
이미 『럭셔리 걸』에서 우리는 그 기이한 세계를 경험한 바 있지만, 『플라스틱 아일랜드』 안에서 작가의 시선은, 그리고 그의 인물들은 더욱 깊숙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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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회사에서 일하는 조식은 1년 전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혼자 살아남은 사람’만이 가입할 수 있는 ‘클럽’의 일원이 되고, 이 ‘클럽’의 크리스마스 모임에서 누군가로부터 리얼돌을 선물받는다. 꺼림칙하면서도 버릴 수는 없는 물건…… 까탈스럽기 짝이 없는(그래서 가끔은 내심 사라져줬으면 싶었던, 가끔은 그녀의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기도 했던) 여자친구 혜정과 크게 다툰 어느 날, 어디선가 들려오는 인형의 목소리에 그는 옷장 속에 숨겨두었던 인형의 목을 매달아버린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혜정이 목을 매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인형은 말하자면,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였던 것.
그후 조식은 ‘클럽’의 회장인 트랜스젠더 가연과, ‘클럽’의 또다른 회원인 9등신의 미녀 이지를 동시에 애인으로 거느리게 되고, 그를 괴롭히던 직장상사는 돌연사한다.
그러나, 조식이 애인들을 만나느라 인형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자 인형은 조식을 조르고 협박하기 시작한다. 자기야 어서 와. / 오늘도 외박이야? / 오늘 일찍 들어올 거지? / 몇시에 들어올 건데? / 넌 날 영원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할 거야. 언제나 내 생각을 하게 되겠지……
인형의 도움으로 ‘클럽’의 회원들마저 조식을 우러러보기 시작하고(회원들은 가족들과 혜정, 직장상사를 죽인 것이 모두 조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계속 클럽 내에서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어느 날, 조식은 시장과는 정반대로 거래를 하는 바람에 회사에 사십억원가량의 손해를 입히고,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때를 같이해 가연은 성형부위에 부작용이 일어나 다시 남자의 몸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인형은 다시 이지와 조식을 이간질하고, 참다못한 조식이 인형의 팔을 잘라버리자, 인형은 이지의 질투심을 이용해 그녀가 가연을 죽이도록 조종한다. 인형이 만들어놓은 환각 속에서 조식은 가연의 피를 뒤집어쓰고 돌아온 이지를 죽인다.
두 여자의 살인 용의자가 되어 경찰에 쫓기게 되는 조식, 그를 거두는 클럽의 또다른 인물 ‘배남’, 그리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흑마술사……
자,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조식이 본 환상들은, 그리고 그가 겪은 현실은, 모두 환상일까, 아니면 뒤바뀐 현실일까. 그것도 아니면 모두 현실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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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는 맹목적 탐욕과 막대한 물질적 행운, 파괴적이고 강박적인 성욕, 주식과 부동산으로 대변되는 경제적인 가치들, 세계 최고의 브랜드가 생산하는 최고급 제품들, 플라스틱 인형이 일으키는 흑마술의 세계가 한 덩어리로 꿈틀거린다. 고도로 타락한 물질적 세계의 세부를 이만큼 세련되고 탐미적으로, 거의 역겨울 정도로 집요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요술램프와도 같은 리얼돌과 흑마술 등 얼핏 판타지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저그런 판타지소설로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를 통해 이문환이 그리고 있는 일상들은 매일매일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실의 그것과 징그러울 정도로 맞닿아 있기에.
어쩌면 이상향일지도, 또 어쩌면 지옥의 불길 속일 수도 있는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혹은 우리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욕망의 내장을 흐르는 탐욕 · 증오 · 분노 · 질시 등을 재료로 풀코스 만찬을 차리는” 것이 지향하는 바라고 밝히고 있다. 만찬의 첫 코스는 벌써 시작된 듯하다. 『플라스틱 아일랜드』로 한껏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저를 우리는 이미 맛보았다. 자,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그가 그려 보일 다음의 세계는, 또다른 ‘오늘’, 이 만찬의 메인디시는, 또 어떠할 것인가.
내가 추구해왔으며 앞으로도 지향하는 바는 욕망의 내장을 흐르는 탐욕 · 증오 · 분노 · 질시 등을 재료로 풀코스 만찬을 차리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의 근간은 경제활동이며 경제활동이란 한정된 재화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비롯된다. 인간성의 어두운 뒷면에 존재하는, 어린애처럼 순수한 갈망과 경쟁심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인간 행동의 한 축을 이루고 사회 시스템을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다. 모비드 앤젤(Morbid Angel)의 가사를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삶의 죄악을 음미하도록 축복받았다.” _‘작가의 말’에서
언젠가 르네 지라르는 고귀함이란 그의 욕망이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나오는, 그리고 그의 힘 하나하나를 전부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행사하는 사람에게 속하는 자질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넘쳐나는 욕망을 가졌으나 그 욕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인물들의 현대를 묘사한다. 참으로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행동 하나하나가 오직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인 세계, 인간의 욕망 이외의 어떤 목적이나 엄격성 없이 사물에 다가서도록 함으로써 인간을 점점 더 인간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든 자본주의에 대한 기억할 만한 상상도를 이 작품은 보여주었다. 사회의 보편적인 욕망의 구조에 대한 조망으로서 이 이야기가 안겨준 강렬함을 잊기는 어렵다. _허병식(문학평론가)
* 초판발행 | 2007년 9월 17일
* ISBN | 978-89-546-0388-1 03810
* 신국판 | 400쪽 | 값 10,000원
* 책임편집 | 조연주 권윤진(031-955-8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