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현실의 혼란과 문학의 탄생
이번 평론집의 제목 ‘의미의 위기’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반대하여 노미날리즘이 나온 14세기 중세 사람들이 현실의 혼란을 ‘의미의 위기(discrimen significationis)’라고 규정한 표현에서 따온 것이다. 저자는 문학은 이 의미의 위기에서 탄생하는 것이며, 고정된 의미체계 속에서는 창작이 불가능하며 문학은 의미 해석의 안정된 체계에 구멍을 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존재는 무한하고 지식은 유한하기 때문에 안정된 의미는 제한된 영역에만 통하는 부분지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은 대중문화와 다르게 대중의 현실을 안정된 의미로 고정해놓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를 새롭게 그려내는 것이다.
제1부 ‘문학과 그 주변’에서는 문학작품의 분석을 넘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문학교육과 학제 연구의 현황과 그 역사, 나아가 19세기 이전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문학교육 방법을 짚어봄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제적인 보편성과 세계 이해를 공유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국가과 민족의 차이를 넘어서 동아시아의 고전문화는 우리들 공동의 유산이고 그 문화유산을 산출한 사람들은 모두 우리들의 선배’이므로 현대에 이르러서도 동아시아 문화의 보편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무게 있게 다가온다.
이번 평론집에는 저자가 최근 오 년여 간 발표한 글들뿐만 아니라 이십 년여 간의 집필활동 동안 그간 평론집으로 묶이지 않았던 글도 함께 담겨 있다. 제2부 ‘현실의 방언’에는 교육자의 눈으로 바라본 소설교육의 목표와 방법, 그리고 이정호, 엄흥섭, 최정희, 강경애, 이병주 등의 근대문학부터 김훈, 한강의 최근 작품들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소설 비평이 모여 있다. 제3부 ‘발견의 시학’에서는 김달진, 김영태, 정진규 등의 시인론과 함께, 20세기 이후의 한국사회에서 시가 담당해온 역할과 태도의 변화를 논의한다.
작품의 언어를 귀담아 들으면서 작품 속에 그려져 있는 대중의 삶을 뜯어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게으르게나마 비평을 계속해왔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중문화와 다른방식으로 대중을 읽으려는 작가들의 실험을 따라가보고 싶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외국인 신부(新婦)들을 이웃으로 사귀면서 대중은 지금 민주주의의 고정된 의미체계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을 의미의 위기라고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한국 근대사를 지배하던 의미체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여 비평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_‘머릿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