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시와 사상』 신인상 수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 박지웅의 첫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청춘을 위로하는 죽음과 죽음을 껴안은 청춘, 죽음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간절한 청춘, 그리고 삶의 다른 이름으로서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낯선 시어, 낯선 이미지들로 시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최근 젊은 시인들과 달리, 청춘과 죽음을, 버려지고 으깨어진 것들을, 잡으면 녹아버리는 것들을 노래하는 시인의 시는, 시인이 원하는 대로 그가 잃어버린 것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와,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와 소통하고 나누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문명이 남긴 쓰레기, 그 불편한 진실
시인은 버림받은 것, 잡으면 녹는 것, 으깨어진 것들에 주목한다. 골목길에서 파는 자반고등어와 한몸이 되어 이야기하는 낯선 도시에서의 삶(「청진동 골목에 자반고등어처럼 누워 있기」), 짐꾼대기소에서 눈과 희망을 닮은꼴로 보는 시선(「눈과 희망, 잡으면 녹다」), 농산물 경매장의 깨진 수박과 만삭인 아내의 배를 접붙이는 순간(「경고2」)이 그것들이다. 시인은 이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상처받은 자의 상실감과 고통을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찍이 떨어진 채 그려내 보인다.
그녀의 허릿짓 하나에 뜨겁게 타버린 나는 종잇장처럼 그 火氣를 견딜 수 없었다. 탐욕의 脂肪을 흔들며 나락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던 밤, 내 몸 속을 들락거리던 쥐새끼 같은 절망들……
―「다시는 희망과 동침하지 않는다」중에서
터진 수박물처럼 깔린 아침노을 밑으로
깨진 트럭 몰고 집으로 돌아간다
여자가 부른 배 안고 누워 있는 깊은 바닥
너무 행복해, 여자는 잘린 수박조각처럼 웃는다
그 피 묻은 기쁨을 둥근 배를 문지르며 그놈
행복은 이렇게 미끄러운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모든 무너지는 곳에는 입구가 있다
―「경고2」 중에서
자기 성찰과 반성, 그 속에 숨어 있는 ‘산죽은’ 자의 시선
그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빚지지 않은 자는 없다. 시인은 어느새 자신 역시 “물질문명과 공범”이 되어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고백하는 자의 위치가 범상치 않다. 평론가 권혁웅은 시인이 ‘산죽은’ 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고 말한다.
“라캉은 초자아를 설명하기 위해서 ‘산죽은’ 자를 말했지만, 나는 이를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적용하여 말하고 싶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초자아의 작인만이 아니다. 실제로는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남은 이의 삶 속에 영향을 끼치는 망자 역시 두 죽음 사이에 있다. 시인은 이 ‘산죽은’ 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갈비를 뜯는 식사 자리에서 육식의 슬픔을 느끼는 심정(「사회적 식사」)이 그렇고, 죽어서 식물로 변한 이에게서 독살의 흔적을 찾는 독법(「독살」)이 그렇고, 도시적 질료에서 반자연, 친자본의 속성을 간파하는 통찰(「시멘트 가라사대,」)이 그렇고, (……) 몸 파는 여자가 제 몸을 고기(「이 골목은 중력이 크다」)나 돈(「좁은 방에는 어둠이 넓네」)으로 환전하는 논리가 그렇다. 세상에서 사회적 관계를 읽어내는 이 시선은, 망자의 영역과 산 자의 영역에 동시에 자리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이다.”(권혁웅, 해설 「죽음과 청춘」)
갈비를 뜯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매일 동료와 어울려
이 식탁을 잡으러 다녔는지 모른다
(……)
식사가 끝나면 발톱을 닦고 이빨을 고르는
짐승의 솜씨를 가진 멋진 동료여
여럿이 있으면 우리는 왜 동물이 되는가
―「사회적 식사」 중에서
꽃을 키우는 아랫방 여자,
보름에 한 번씩 모습을 감추었다 돌아오면
어김없이 물 소리가 들렸다
그 계집 입에서 달 꺼내는 소리,
귀는 고깃덩이처럼 어두운 골목에 떨어져
계집이 달 씻는 소리를 들었다
겨우 뼈만 남은 달을 쥐고 웃는 여자
살이 오르면 누군가 또 베어가기 때문이다
그날은 분명, 그믐밤이었다
―「이 골목은 중력이 크다」중에서
‘산죽은’ 자가 바라보는 삶, 죽음
박지웅의 시에서 삶과 죽음은 단독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늘 “반은 묻혔고 반은 꿈틀거”리는 형태로, “반은 누워 있고 반은 쓰러져 있”는 모습으로 출현한다. 이를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 둘 중 어느 한 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 사이에 서서 “그러면 편히 잠들라, 그리운 쪽이여”(「너의 반은 꽃이다」)라고 나직이 말할 뿐이다. 그와 같은 위치는 故신기섭 시인의 죽음에 관해 쓴 시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신문지가 구른다 목련이 내려다보고 있다
바람이 세다 목련이 손가락을 뻗어 신문을 줍는다
사마귀처럼 돋은 꽃눈들 사이로 눈 내린다
저렇게 뒹굴다 간 사람 하나 있다
그를 품고 길 아래 구른 버스는
아무렇게나 구겨 싼 신문지처럼 그를 말았다
그날 첫눈은 기막히게 부드러운 죄를 지었다
목련이 신문을 내려놓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흉측한 꽃눈이 난 손가락 사이로 눈 내리고
음악이 사무실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더러 멈추고 더러 유리창에 가 붙었다가 떨어지는
구겨진 음악을 주워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오늘 유리창엔 도통 읽을거리가 없다
그래, 오늘은 단지 무료할 뿐이다
나는 믿지 않는다
오래오래 잘 살다가 너는 늙어서 죽었다
―「너는 늙어서 죽었다」 중에서
이태 전, 신기섭 시인을 “품고 길 아래 구른 버스는” 신문지처럼 구겨져 그를 지웠다. 시인은 이 “기막히게 부드러운 죄”를 신문에서 읽었으며 그가 없는 지상에는 이제 “도통 읽을거리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시인은 그가 없는 무료함을, 그가 잘 먹고 잘 살다가 “늙어서 죽었다”는 무료함으로 바꾼다. 죽음을 무료함으로 바꾸는 이 안간힘은, 죽은 자에게 제 모든 희망을 걸어야 하는 산 자의 안간힘이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매달려 있는 이의 안간힘인 것이다.
제 몸을 지불하고 죽음 쪽으로 걸어간 청춘들이 있었다. 기형도가 그랬고 신기섭이 그랬다. 우리가 이들의 때 이른 죽음에 비통해하는 것은, 이들의 죽음이 만개하지 못한 청춘을 폭력적으로 완결해서만이 아니다. 이들이 죽음을 지불하고 청춘의, 그 순결한 발언을 얻어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죽음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죽음은 이들의 청춘을 위로하지 않았고, 청춘은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등을 돌렸다. 이들이 진혼의 대상이었지 진혼의 주체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뒷자리에서 박지웅의 시가 시작된다. 청춘을 위로하는 죽음과 죽음을 껴안은 청춘에 대해서, 죽음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더욱 간절한 청춘에 대해서, 삶의 다른 이름으로서의 죽음에 대해서 마침내 발언하는 시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아, 이 ‘산죽은’ 청춘은 어디로 갈 것인가? 시인의 다음 시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_권혁웅(시인, 문학평론가)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에서 시인은, 자주 추락하는 자신을 일으킨 것이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사람들이었다고 밝혔다. 시인을 일으켜준 그 작고 초라한 것들, 병들고 지친 것들이 이제 시인의 시에서 위로받을 차례이다.
‘페르시아왕자’라는 게임이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도저히 건너뛸 수 없는 벼랑이 나타난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그 벼랑을 건너는 길은 어이없게도 그냥 달리는 것이었다. 달리면 그 허방에 길이 생기는 것이었다. 목숨을 걸 때 비로소 길은 몸을 내어주는, 시 앞에는 이런 투명한 길이 있고 그 의심을 견디게 해준 것은 시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믿음이 월등히 강한 것만은 아니어서 나는 자주 추락하였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키고 부축해준 것은 노부모의 지성과 병고와 땅에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나를 일으킨 것은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사람들, 나는 병들고 지친 것을 먹고 일어났으니 우선 그들에게 백배사죄하고 그 발에 입맞추어야 한다. _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에서
* 초판발행 | 2007년 12월 7일
* 121*186 양장 | 126쪽 | 값 7,000원
* ISBN | 978-89-546-0446-8 03810
* 책임편집 | 조연주 권윤진(031-955-8865, 3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