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그리움의 다도(茶道)’
제1부에서는 차로 유명한 산사들의 풍정(風情)과 그곳에 머무는 스님들의 고즈넉한 불심과 다심(茶心)을 그린 글들을 모았다. 저자 스스로 “거창한 불사가 있고 주말마다 관광객을 그득 실은 버스가 들락거리는 유명한 사찰보다는 호젓한 곳에 숨어 인적이 드물고 세속의 때가 덜 탄 곳을 주로 찾는다”고 밝히고 있듯, 널리 알려지지 않은 덕에 오히려 때 묻지 않은 맑은 차향이 살아 있는 사찰들을 소개한다. 산사에 다실을 짓고, 절을 찾아 험한 길을 걸어 올라온 사람들에게 무료로 차를 내면서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는 수종사의 동산 스님. 그러나 다실 입구에 놓여 있는 목제 시주함 속에 자발적으로 던져넣고 가는 복전의 액수가 차 재료를 대기에는 부족함이 없더라며 소년처럼 웃는 다각승의 염화미소에서, 저자는 찻물보다 맑은 다심과 불심을 배운다.
한편, 연화산 산사에서는 바로 뒷산에 좋은 차나무가 있음에도 돌보질 않아서 절 앞마당의 자판기 커피를 뽑아마시는 스님들과 맞닥뜨린다. 차문화와 긴밀한 관련을 맺어야 할 사찰에서 먼저 차를 저버린 모습을 목도하고는, 차인으로서의 섭섭함과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이 밖에도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해인사, 직지사, 화엄사 등의 사찰은 물론 다솔사, 정혜사 등의 숨은 사찰을 찾아가는 여정과, 그 길에서 일면식 없이 찾아가도 다실을 활짝 열어 반겨주던 눈 맑은 다각승들과의 인연을 담백한 필치로 그려냈다.
제2부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페어리 디킨슨 대학 교환교수 시절 스타벅스 커피향으로 넘쳐나는 뉴욕 거리에서도 한국의 차 향내를 그리워하며, 정든 차인들을 향해 한 통 한 통 편지를 쓰듯 써나갔던 저자의 뉴욕발 칼럼이 실려 있다.
그가 수십 년을 두고 교류해온 차인들, 이성선, 김필곤 시인, 도공 김대희 등 차인들에 얽힌 일화와, 뉴욕 한복판에서 펼쳐진 한국의 전통차 행사,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 스퀘어에서 재미교포 2세들과 둘러앉아 한국차의 온기와 멋을 전하던 날의 감동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제3부에 실린 진중한 글들은 저자가 우리 차의 정신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궁구했던 생각의 결실이다. 저자는 차문화가 한류문화의 뿌리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나가면서, 우리가 도외시했던 고유의 차문화를 조명하고 동북아 중심의 ‘녹차문화권’을 형성하자는 혁신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과도하게 인위적 형식에 치중하는 일본다도나 범용한 다반사 수준에 머물고 있는 중국다도와 대비되는 우리 다도의 ‘중정(中正)’의 멋에 주목하다보면, 차문화가 한류문화의 원조라는 저자의 말이 결코 허황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세상사 소용돌이를 잊게 하는 차 한 잔의 위안과 휴식
“뒤엉킨 현실 속에서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형식과 상투적인 가식(假飾)에서 벗어나 다만 ‘맛있는 차나 한 잔 즐겁게 마시지’ 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차인, 이근수. 왜 그토록 매일 차를 마시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는 ‘그냥 그리운 마음을 담아 마시는 차가 가장 맛있기에’라는 대답밖에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고 답한다.
이 책에서 그는 차에 관한 무수한 상식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정작 차를 마시는 데 있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찻물의 연둣빛을 닮은 맑은 그리움’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향한 정과 그리움을 품은 이라면 누구나 찻잔 속에서 세상사 소용돌이를 잊고, 고요한 위안과 휴식을 얻을 수 있다. 『푸른 화두를 마시다』는 차에 일가견이 있는 차 애호가들은 물론, 지금껏 차라면 중국산 티백 녹차나 영국산 홍차밖엔 몰랐던 이들까지도, 우리 차의 매력에 감동하고 심취하게 할 만한 정갈한 책이다.
후산(後山) 이근수의 다도정신은 순(純), 청(淸), 온(溫), 공(恭)에 있다. 이것은 다도정신에 앞선 그의 성품이고 성정이다. 이 화두 속에 그의 호흡과 맥박이, 체온과 정신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순수와 청정과 온화와 공손은 제대로 익은 가을열매처럼 자기 세계가 구축되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정신의 형상이고 마음의 향기이다. 차와의 만남이 어디 보통 인연이겠는가. 또 차생활을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네 삶에 얼마나 큰 축복일 것인가. 다도무문(茶道無門)이고, 차인불기(茶人不器)다. 후산은 어떤 차 단체나 어느 다도유파에도 관계하지 않고, 진정한 다심(茶心)과 다정(茶情)과 다신(茶神)이 있는 곳이면 함께 어울려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마신다. 홀로 마시는 차 자리일지라도 그는 언제나 자유로움과 더불어 경건함을 지니며 격식이 없으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미묘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중정(中正)의 경지가 산유화처럼 절로 피어나는 후산의 차 세계에서, 그가 강조하는 ‘그리움’이라는 것도 빈 찻잔과 빈 마음에만 고여 드는 영원의 달빛이며 자연의 음악임을 알 수 있다. 김필곤(시인)
* 초판발행 | 2008년 1월 25일
* ISBN | 978-89-546-0455-0 03810
* 153*210 | 224쪽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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