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미술 옥션이 붐이다. 소수의 향유물이었던 미술 옥션은 이제 드라마 소재가 될 정도로 대중화되었고,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은 해를 거듭할수록 확대되고 있다. 장편소설『잃어버린 연인들의 초상』은 미국 소더비와 크리스티에 이어 세계 3대 경매소로 꼽히는 프랑스 드루오 경매소를 무대로 삼아, 예술과 영원,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라는 테마를 지적이고도 깊이 있게 그려낸 수작이다.
『핑거포스트 1663』의 이언 피어스가 추천하는 초대형 신인의 등장!
“정말 이게 당신의 첫 소설인가요?”
아직은 생소한 이름의 작가 엘렌 보나푸 뮈라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된다. 2006년 알랭 푸르니에 상과 국제 로터리 클럽 신인상을 받으며 프랑스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한 엘렌 보나푸 뮈라는『잃어버린 연인들의 초상』의 여주인공 ‘오르탕스’와 같이 실제로 판화 감정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녀가 판화 경매 현장에서의 경험을 십분 살려 쓴 데뷔작이다.
평소 그녀가 일하던 판화부티크에 자주 들르던 뛰어난 소설가, 미술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이언 피어스가 이 전도유망한 신인작가의 탄생을 도왔다. 판화 아마추어인 이언 피어스와 소설 아마추어인 엘렌 보나푸 뮈라는 곧잘 건설적인 논박이 오가는 술자리를 가졌다. 당신의 일상이 소설의 소재로 넘쳐나는데 왜 글쓰기를 망설이냐는 프로 소설가의 격려에 힘입어, 얼마 후 엘렌 보나푸 뮈라는 이언 피어스 못지않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소설가로서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대를 넘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는 삶과 사랑의 실타래를 풀었다. 그리고 역사와 미술, 로맨스와 스릴러,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녀의 소설은 데뷔하자마자 언론과 평단, 독자의 주목을 끌었다.
베일에 가려진 16세기 귀족화가 자크 드 벨랑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의 희귀작이 마침내 경매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야기는 주인공 오르탕스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파리로 와서 예술사 강의를 듣던 중 한 판화상이 점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부티크로 찾아간다. 수십 년간 판화 전문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전문가로 기지와 통찰력, 감각을 지니고 있는 판화상 펠릭스는 오르탕스의 심미안과 침착한 기질을 높이 사 그녀를 고용한다.
어느 날, 상점에 한 중년의 골동품상이 찾아오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그가 가져온 것은 파리 근교에 사는 친구가 집을 수리한다며 자신의 다락방에 쌓인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는 도중에 나온 오래된 그림뭉치다. 별 가치 없어 보이는 그림들을 뒤적이다 오르탕스는 첫눈에 한 동판화에 이끌린다. 그녀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 판화가 그녀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게 되리라는 것을. 한 남녀의 이별을 묘사한 그 판화는 그녀에게 에로틱한 환상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펠릭스와 오르탕스는 이 작품이 샤를 3세 공작을 위해 일하며 그의 궁전을 장식했다는 사실 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 없는 로렌 출신의 귀족 판화가 자크 드 벨랑주의 미공개 작품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미술애호가들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 없는 벨랑주의 작품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에 열광하고,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는 판화 속 연인들의 매력과 신비는 세간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결국 판화는 열띤 경쟁을 불러일으키며 경매에 붙여지게 되지만 경매 당일에 감쪽같이 사라지고, 경매인도 살해당하고 만다.
현실과 가상의 모호한 경계 속에 싹튼 사랑.
광기로 치닫는 탐미적 사랑의 부식!
한편 이 작품 속에는 관능적인 즐거움도 있다. 오르탕스는 벨랑주의 판화가 걸려 있던 집의 주인인 빅토르에게 첫 만남에서부터 끌림을 느끼고 연인이 된다. 하지만 기혼인 빅토르에게 오르탕스는 잠시 스쳐가는 인연일 뿐이다. 남자는 상대방의 현존이 강할수록 더 강한 애정을 느끼고 여자는 상대가 로맨스의 대상으로 추상화되었을 때 더 강한 애정을 느낀다고 했던가, 판화 속 비밀을 푸는 길을 성공적으로 찾아가던 오르탕스는 사랑의 역설적 특성 앞에서 미아가 되어버린다. 수많은 이미지들에 둘러싸인 그녀는 시간과 공간의 감각이 완전히 붕괴된 채, 이미지에 잠식되어 현실과 망상 사이를 오가게 된다.
이쯤에서 소설은 독자에게 주의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판화 속 연인들이 살았던 발루아Valois 왕조 시대가 오르탕스의 현재와 촘촘히 교차하는 것이다. 1328년에서 1589년에 이르는 발루아 시대는 일명 『여왕 마고』의 인물들이 살던 시대로, 왕조의 성립과 동시에 백년전쟁과 흑사병으로 점철된 난국이었다. 작가는 이 시대와 계보, 파리와 로렌을 오가는 인물들의 관계 등을 오르탕스의 현재와 교차시키며 다층적인 플롯을 구사한다. 비극적이면서도 위대한 중세의 사랑과 광기에 휩싸인 현대의 사랑을 동시에 엮어가는 과정을 통해 책은 직소퍼즐과도 같은 다면성과 지적인 만족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고품격 아트픽션!
『잃어버린 연인들의 초상』의 원제는 ‘부식(Morsure)’이다. 이는 말 그대로 구리판 위에 부식액이 지나가며 그리고자 하는 형상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정신적인 부식, 혹은 사랑과 이미지에 대한 흔적들이 머릿속에서 각인되는 부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설은 드루오 경매의 52번째 품목이자 작가가 창조해낸 가상의 판화 속에 담긴 미스터리한 오브제들-다람쥐, 동전, 피리새, 촛불, 거울, 화로, 화병, 깃털, 반지, 편지, 우물 등-을 각 장의 제목으로 삼아 전개된다.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에서 눈과 수(數)에 대한 특수한 감각을 지닌 스밀라처럼, 여주인공 오르탕스는 촉각과 시각을 안내자 삼아 이러한 가상의 판화 속 오브제들을 더듬어나간다. 우리는 그녀의 지적인 관점을 통해 판화 속 주인공을 탐색하고, 미술 경매장의 무대 뒤 풍경들과 수집가들과 예술상들의 폐쇄적 세계에 어린 빛과 그늘을 엿보게 된다.
또한 엘렌 보나푸 뮈라가 보여주는 지극히 프랑스적이고도 낯선 고판화들의 묘사는 마치 미술관의 순례라도 떠난 듯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 중심에 로렌 궁정의 공식화가였던 실존 판화가 자크 벨랑주의 작품들이 있다. 벨랑주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으로 등장하는 소설 속의 판화는 너무나 정교하게 묘사되어, 가상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다. 뮈라는 우선 벨랑주의 <포르티아의 죽음>을 위시한 여러 작품들에서 디테일을 빌려오고, <뒤러의 죽음의 문장들>과 같은 작품에서 오브제들의 상징성을 빌려와 짜깁기했다. 매너리즘에 속했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졌던 에칭화가 벨랑주는 때때로 형상을 왜곡하여 심리적 사실성을 추구하는 기법의 작품들을 주로 남겼다. 작가가 벨랑주와 그의 작품들을 이 다층적인 소설의 모티프로 삼은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값진 미술 골동품들과 그것을 둘러싼 광기. 잭팟이 터지길 기다리는 거대한 슬롯머신처럼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드루오 옥션, 그 세계만의 특별한 규범과 언어의 세부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 작가의 세련된 호흡을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독자는 이 독특한 아트 미스터리에 중독되고 말 것이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끌로 새기듯 섬세하게 그려낸, 경탄을 이끌어내는 데뷔작!
과거와 현재를 경쾌하게 오가며 독자를 열정에 들뜨게 하는 드라마.
_엘르
독자를 화려한 16세기 프랑스로 안내한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한 여성감정사의 집념어린 추적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_르 몽드
평행을 이루던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합쳐지며 환상과 관능은 절정에 달한다!
발자크풍의 희극적인 양념까지 곁들인 고품격 아트픽션.
_파주
엘렌 보나푸 뮈라 Hélène Bonafous-Murat
1968년 프랑스 브르타뉴 피니스테르에서 태어났다. 최고의 수재들만 간다는 고등사범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예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소설가인 동시에『잃어버린 연인들의 초상 Morsures』의 주인공 ‘오르탕스’와 같이 판화전문가이자 드루오 경매소의 감정사로서 16세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판화작품들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있다. 판화 부티크에서 일하며 영국 최고의 역사소설가 이언 피어스와 친분을 쌓았고, 그의 격려를 받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판화를 감정하고 판매하는 현장에서 틈틈이 익힌 지식을 바탕으로, 16세기 실존 판화가 자크 드 벨랑주의 숨겨진 가상의 작품을 둘러싸고 현재와 16세기 프랑스 로렌 궁정을 오가며 벌어지는 로맨틱 미스터리『잃어버린 연인들의 초상 Morsures』를 구상했다. 고미술계라는 고도로 폐쇄적이고도 지적인 사회를 예리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바로크풍의 이 화려한 데뷔작으로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국제 로터리클럽 신인상(2006) 및 알랭푸르니에 상(2006)을 수상했다. 2007년에 건축을 소재로 한 두번째 장편소설『비계飛階 Echafaudage』를 발표했다.
옮긴이 박명숙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보르도 제3대학에서 언어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및 배재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2007년 현재 출판기획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순례자』『두 사람을 위한 하나의 삶』『라 퐁텐 그림우화』『이사도라 던컨』『누구나의 연인』『로마의 역사』『지나가는 도둑을 쳐다보지 마세요』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발행일 | 2008년 1월 28일
쪽수 | 416p.
판형 | 128*188mm(양장)
값 | 12,000원
ISBN | 978-89-546-0466-6 03860
담당 | 장선정 (031_955_2654/koiblue@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