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터키 작가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는 터키에서는 오르한 파묵과 더불어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국민작가이다. 최근 터키에서 ‘20세기 최고의 터키 소설가 40인’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1995년 첫 소설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를 발표할 당시부터 터키 독자들에게 작품 자체로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별다른 광고 없이 독자들의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어 여전히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이나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은둔하며 작품 활동과 강의에만 전념하고 있다.
대학에서 고대철학과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는 철학적인 깊이와 사유가 담긴 주제의식을 주로 터키의 옛 모습과 전통,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와 잘 조화시킨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이런 그의 소설은 진정 ‘터키’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글쓰기 방식에 있어서도 터키 고유의 옛날이야기 방식을 추구한다. 따라서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철학적 주제가 흥미로운 이야기와 어우러져 전혀 어렵거나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독특한 구성과 예상치 못한 이야기 전개가 특징인 그의 소설은 독자들이 요구하는 지적 교양과 소설 읽는 욕망, 그리고 재미를 동시에 만족시켜 줄 것이다.
17세기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현실과 꿈, 환상과 지식을 좇는 이들의 파란만장한 모험!
소설은 지금의 이스탄불, 당시 콘스탄티노플 부두에 아랍 이흐산의 전함이 위풍당당하게 들어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즉 첫 등장인물은 바로 아랍 이흐산이다. 그는 전함을 이끌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모험을 하는 인물이다. 그가 콘스탄티노플에 와서 찾아가는 인물은 그의 조카인 우준 이흐산 에펜디로, 이 인물은 아랍 이흐산과 대조적으로 ‘꿈’을 통해 ‘세계 아틀라스’를 완성하고자 한다. 꿈을 통해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데, 굳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세계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게 우준 이흐산 에펜디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는 우연히 손에 들어온 렌데캬르의 『방법에 관한 잡담』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깊은 상념에 빠진다, 바로 ‘인간 존재’에 관한 의문이다. 이는 이 소설의 핵심 주제와 닿아 있기도 하다.
“난 지금 꿈을 꾸고 있어. 의심할 바 없이 꿈을 꾸고 있어. 꿈을 꾸고 있어. 고로 나는 존재해. 하지만 존재하는 나는 누구인가?”
“렌데캬르가 말한 것처럼 나는 존재해.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 거울은 나에게 내가 우준 이흐산 에펜디라고 말하고 있고, 나의 꿈속에 있는 거울은 내가 뷘야민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모든 것들을 보는 주체는 실제로 누구인가?”(59~60쪽)
작가는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를 차용하면서도 이를 교묘하게 비틀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바로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분명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존재하는 나’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렇게 근대적 이성 확립의 핵심이었던 코기토 명제에 의문을 제기한 작가는 이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준 이흐산 에펜디는 아들 뷘야민을 세상 속으로,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못했던 모험 속으로 내보낸다.
“…… 나는 나의 꿈을 통해 세계를 발견하려고 했었다. 이 말은 내게 충분한 용기가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네가 나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 네게 허락하노니, 가거라, 가거라 아들아. 가서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보아라, 내가 만지지 못한 것들을 만져라,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것들을 사랑해보려무나. 내가 겪지 못한 고통도 겪어라. 세상과 세상의 온갖 모습을 두려워하지 말아라.”(73쪽)
이렇게 세상으로 나온 뷘야민은 온갖 기이하고 기상천외한 인물들을 만나며 세상을 만나고 모험을 겪는다. 뷘야민을 세상 속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인 땅굴파기의 명수 와르다페트, 바그다드 최고의 변장술 도둑에서 이스탄불의 거지 왕초가 된 흔즈르예디, ‘최후의 심판의 날’에 대한 예언에 얽매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온갖 실험과 물질을 탐구하는 에브레헤, 자신을 에프라시압이라는 영웅이라 생각하며 온갖 사고를 치다가 이상한 약물을 먹고 영원한 잠에 빠지는 꼬마 알리바즈. 이스탄불에서 최고의 도박굴을 운영하는 사기 도박사 가잔페르. 뷘야민은 이러한 인물들과 얽히고설키며 세상 속에서 진정한 지식을 찾아 헤맨다. 이 인물들은 소설 속에서 매우 생생하게 그려지며, 자신의 인생에서 추구하는 바를 좇아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작가는 이 인물들을 자신의 역할을 다 끝내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터키의 전통 이야기꾼 형식으로 불러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한 뒤 그 이야기가 끝나면 깨자마자 사라져버리는 꿈처럼 이야기 밖으로 내보낸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독립된 단편소설처럼 특색이 있고 각 장마다 터키 특유의 몽환적 성격이 강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환상적이고 기묘한 옛날이야기 책을 읽은 느낌을 받도록 한다. 그래서 읽어 나가는 동안 독자는 이마를 탁 치며 “아, 이 사람은 이래서 이런 것이었군” 하는 말을 무의식중에 내뱉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는 그만큼 줄거리와 인물이 교묘하게 엮이고 풀어지는 놀라운 이야기 구성이 숨어 있다.
이렇게 모든 인물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난 뒤, 자신의 모험도 이제 끝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안 뷘야민은 모험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쥐여준 책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를 펼쳐보고는 아버지의 의도를,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매우 낯설지만 언제나 매력적인 곳으로, 그래서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도시로 인식되는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그 도시만큼이나 낯설고 또한 매력적이다. 짙은 안개에 가려져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저 머나먼 시공간에서 자신의 꿈과 욕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순식간에 무로 되돌려버리는 환상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이 이야기가 꿈인가 현실인가, 꿈을 꾸는 자는 누구인가, 작가인가, 우준 이흐산 에펜디인가, 아니면 또다른 누구인가, 책을 읽는 독자는 꿈속에 있는가 꿈 밖에 있는가, 소설이 현실이고 현실은 꿈이 아닐까 하는 혼란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이 안개 걷히듯 걷히고 나면 독자는 정말 재미있는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만족감에 빠질 것이다.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를 필두로 계속 출간될 예정인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의 작품들은 터키의 새로운 형식과 소재의 소설을 만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지은이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Ihsan Oktay Anar)
1960년 터키 요즈가트에서 태어났다. 에게 대학에서 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같은 대학에서 고대철학과 그리스어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1995년 첫 소설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를 발표한 작가의 소설들은 주로 역사적 사실과 특히 오스만 제국에 관한 루머들, 옛날이야기와 비슷한 서술방식에 기반한 판타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하고 독특하게 잘 다듬어진 등장인물과 철학적 주제의식, 민속 문학이나 문화에서 빌려온 신비로운 요소 등이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요 특징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글쓰기에서 신화나 역사적인 경전 등에서 쓰인 터키 고어를 자주 섞어 사용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그가 작품마다 그 자신을 반영하는 ‘우준 이흐산(‘키 큰 이흐산’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인물을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흐산은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눈에 띄는 외모와 달리 강의와 작품 활동에만 매진할 뿐 언론이나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며 은둔자적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소설들은 터키에서 독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별다른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처녀작인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는 프랑스어, 독일어, 헝가리어로 번역되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1995), 『기계의 서』(1996), 『에프라시압 이야기』(1998), 『아마트』(2005), 『말 없는 사람들』(2007) 등이 있다.
옮긴이 이난아
한국외대 터키어과를 졸업하고 터키 국립 이스탄불 대학(석사)과 앙카라 대학(박사)에서 터키 문학을 전공했다. 앙카라 대학 한국어문학과에서 5년간 외국인 교수로 강의했으며, 현재 한국외대 터키어과 강사로 있다.
저서로 『터키 문학의 이해』 『터키어-한국어, 한국어-터키어 회화』(터키어) 『오르한 파묵과 작품 세계』(터키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내 이름은 빨강』 『눈』 『새로운 인생』 『하얀 성』 『검은 책』 『살모사의 눈부심』 『위험한 동화』 『감정의 모험』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생사불명 야샤르』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제이넵의 비밀편지』 『바닐라 향기가 나는 편지』 『파디샤의 여섯 번째 선물』 『안개 낀 때륙의 아틀라스』 등 다수가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세계 민담전집-터키편』이 있다. 『한국 단편소설진집』 『이청준 수상전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터키어로 번역, 소개하기도 했다.
* 2007년 12월 31일 발행
* ISBN 978-89-546-0510-6 03890
* 140*210 | 316쪽 | 9,800원
* 담당편집 : 류현영(031-955-8858, sanja95@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