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단의 트렌드를 좌우하는 젊은 작가
‘악의 꽃’ 클레르 카스티용
‘천사의 얼굴로 악마의 글을 쓰는 작가’로 불리며 21세기 프랑스 문단을 이끌어가는 매력적인 젊은 작가 클레르 카스티용의 신작이 소개된다. 『왜 날 사랑하지 않아?』『로즈 베이비』이후, 예리하게 날 선 필치로 남녀관계의 부조리함을 낱낱이 해부한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이미 6개국 언어로 소개된 클레르 카스티용의 일곱번째 작품이자 두번째 소설집이다. 클레르 카스티용은 스물다섯에 첫소설『다락방(2000)』을 발표한 이래 거의 매해 한 편씩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며, 2004년에는『그녀에 대해 말하다』로 티드 모니에 대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녀의 소설은 가장 단순한 언어들로 원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점점 책과 멀어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신선한 책읽기 경험을 선사한다. 정제된 에센스와도 같은 경쾌하고 짧은 문장, 도발적이되 가볍지 않은 사람과 삶에 대한 현대적인 성찰을 담은 그녀의 소설은 이 시대 젊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시대적 글쓰기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옹색하고 비루한 마음의 소유자들도 사랑을 한다.
메마르고 인정머리 없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뒤틀린 마음,
불행한 마음, 그런 마음을 지닌 존재들도 사랑을 한다.
사랑은 이제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처녀작 『다락방』에서부터『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까지 클레르 카스티용의 관심은 ‘사랑’이다. 그중에서도 사랑의 권태, 광기 그리고 불안이 주관심사다. 첫째 소설집『로즈 베이비』이 여자와 여자,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랑의 권태, 광기, 불안을 말했다면,『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남자와 여자, 주로 부부관계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랑의 모든 부작용과 마주한다. 이번에도 카스티용은 고혹적인 외모만큼이나 온화한 톤으로 스물세 편의 잔혹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오직 사랑스럽고 완전한 존재들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단편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에서 남편은 언제나 출장중이다. 언젠가는 그가 내 곁에 오래 머물 날이 있겠지, 하고 기다리던 주인공은 어느 날 남편의 옷가지 속에 한 유명 브랜드의 여자 원피스가 말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에게 꼭 맞는 원피스에 그녀는 흡족해한다. 아무래도 곧 다가올 그녀의 생일선물인 듯한데, 원피스와 함께 들어 있던, 임신중임이 표시된 임신테스트시약은 대체 무엇일까? <쥐약>의 남편은 도통 부인을 칭찬할 줄을 모른다. 아내가 뭔가 물어도 바보 같은 말투로 질문을 그대로 따라할 뿐이다. 어느 날 그는 그녀를 강간했던 남자와 똑같은 차림새를 하고 나타나 그녀를 아연실색케 한다. <한없는 관용>의 아내는 남편을 바보로 여긴다. 그와 함께 하는 외출을 일종의 시련으로 생각한다. <고통, 그걸 죽여야 한다>의 남편은 딸아이가 죽고 절망의 구덩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내를 위로하기는커녕 포박하고 가둔다.
사랑이 핑크빛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비정상적인, 그러나 우리 내면에 하나쯤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인물들의 본심과 마주한 독자는 그 비틀린 모습이 감당키 어려워 비명을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전복적이고 신랄한 모던 러브스토리의 대가(大家).
당신 곁의 그 사람이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순간에 읽어야 할 은밀하고 쇼킹한 처방전!
건선에 걸린 피부처럼 금방이라도 쩍쩍 갈라질 것 같은 메마른, 지상에서 가장 가혹한 러브스토리들, 상식의 선을 한참 벗어난 기이한 이야기들로 우리는 클레르 카스티용을 다시 만난다. 젊은 소설가 카스티용은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를 통해 스쳐지나는 음울한 일상의 생각들과 현대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지만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치부를 완벽하게 비추어낸다. 이제 남녀 의 사랑 뒤에 숨겨진 모든 복잡하고 상스러운 모습이 터부를 벗고 주저 없이 드러난다.
클레르 카스티용은『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의 원제를 처음엔 ‘비열(Infect)’이라고 붙였다. 그녀는 ‘사랑을 하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비열해지는 법’ 이기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그리고 사랑의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한 영화감독은 인터뷰에서 해피엔딩이라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이야기는 사실 끝이 나지 않기 때문이란다. 카스티용은 끝나지 않은 사랑의 ‘그 이후’를 이야기하는 드문 작가다. 그녀는 눈길을 피하지 말고 똑똑히 이 징글징글한 상처와 아픔들을 똑바로 쳐다보자고, 이 역시 사랑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한 단면임을 잊지 말자고 또랑또랑한 어조로 말한다. 그녀의 펜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안의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직시하고 껴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해마다 프랑스 독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그녀의 신작을 또다시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주요 단편 소개
‣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남편은 언제나 출장중, 그녀는 오늘도 대기중. 그녀는 그의 전화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서둘러 그의 트렁크를 들고 나선다. 그가 기차 도착시간이나 역, 출발지 혹은 행선지를 알려주면, 역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옷가지가 꽉 찬 트렁크와 빨랫감이 꽉 찬 트렁크를 교환한다. 그녀는 그의 트렁크 바닥에 돌돌 말려 있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어본다. 꼭 맞는다. 아마 곧 있을 그녀의 생일 선물인가보다. 그런데 이 양성반응의 임신 진단시약은 뭘까. 이상하다. 엿새 후, 그녀는 또 트렁크를 들고 나설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모든 게 취소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후 그녀는 몇 년째 플랫폼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 고공비행!
‘나’는 팬티를 입지 않고 스타킹만 신은 여자 옆에 앉아 여행중이다. 그녀는 내게 제 입으로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나 같이 솔직한 여자가 못 할 말이 어디 있겠어요? 난 뭐든 터놓고 말하고 싶어요, 내숭 떠는 건 성미에 안 맞아요.” 그러고는 연신 자기 얘기를 해댄다. 오빠의 똘똘이를 처음 본 후로 어쩌고저쩌고…… 오빠의 딸랑이가 어쩌고저쩌고…… 그리고 통로로 나가기 위해 요가를 하듯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그 탱탱한 엉덩이를 내 얼굴 쪽으로 불쑥 들이밀더니, 팔걸이에 걸쳐놓은 내 팔을 원피스 뒷자락으로 사정없이 문질러댄다. 그래도 그녀는 사과 한마디 없다.
‣ 콩쿠르를 위해 태어난 아이들
엄마와 나는 내일 댄스 콩쿠르에 출전할 예정이다. 나는 엄마의 댄스 파트너다. 그렇지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나도 예쁜 여자, 착하고 다정한 여자를 원한다. 그리고 난 춤추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이제 엄마와 자기도 싫다. 엄마의 배는 역겹다. 그렇지만 엄마는 모든 것을 강요한다. 콩쿠르의 우승을 위한 파트너끼리의 호흡을 위해서라지만 엄마의 입을 맞추기도 싫다. 꼭 껴안아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처녀처럼 보이기 위해 내일 입술수술을 하러 간다고 한다. 그렇지만 입술수술 따윈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거다.
‣ 사회의 기본구성단위로서의 가족
나는 내 인생이 너무나 완벽하게 느껴져서 이 행복을 쓰러뜨리려면 얼만큼 날카로운 칼날이 필요할까 궁금해질 정도다. 남편과 나는 숨기는 게 전혀 없다. 우리는 뭐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어떤 문제라도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존중한다. 오늘은 남편 회사의 송년 파티에 갔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가 이상한 말을 한다. 그 말이 즉시 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여보, 아까 그 여자 말이야, 살결이 정말 끝내줘. 그렇게 부드러운 피부는 이제까지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어.”
‣ 나는 남자를 질리게 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생일 파티에 나는 엄청나게 망설이다 마지못해 왔다. 계속 독신으로 지내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남자에게 쉽게 빠지는 타입이지만, 실속은 전혀 없다. 여기서 그다지 관심 가지 않는 한 남자를 만났다. 아무튼 그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 그런데 그는 나를 보지 않고 앞만 쳐다본다. 일행을 찾는 모양이다. 내가 손을 잡자 그는 은근슬쩍 손을 뺀다. 수줍음을 타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그가 일어서며 말한다. “난 오토바이를 타고 왔어요. 그리고 여분의 헬멧은 없고요. 다음에 만나요.” 나는 대꾸한다. “어떻게요? 날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싶나요?” 그는 벌써 저만치 나갔다.
‣ 쥐약
‘어이 뚱땡이 아줌마!’ 남편은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내게 핀잔을 준다. 내 얼굴이 굳노라면 쿡 찌르며 농담도 못하냐고 넘겨버린다. 그가 나를 ‘예쁜이’라거나 ‘내 사랑’이라고 불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남자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당신이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할 때 그게 어떤 기분인지 전혀 모른다. 지금 생각이 난다, 식탁 위 카나페에 쥐약이 들어 있다는 말을 해준다는 걸 깜박 잊었다. 그가 쥐에게 줄 점심을 목구멍에 게걸스레 밀어넣고 있으면 어쩐다…… 그런데, 문제는 졸음이 나를 휘감는다는 것이다.
‣ 테레즈는 늙어간다
우리는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난다. 내가 그녀를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마흔네 살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나는 그녀와 결혼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지 이십 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나의 선물이었다. 요즘 그녀는 내가 떠날까 두려워하며 젊어지는 알약들과 크림들을 마구 사들이고 있다. 각종 신제품들에도 끊임없이 눈독을 들인다. 그래서 약이 너무 많아 처치 곤란한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럴 때면 그 젊음의 묘약들은 내 차지가 되고 그렇게 해서 결국 그녀가 아니라 내가 더 젊어진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곳곳에 편재한 유머, 자유분방한 상상력, 유연한 이야기 전개.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_르 피가로 리테레르
점점 더 책과 멀어지고 있는 요즘 독자들에게 놀랄 만큼 값진 선물.
절제된 언어로 생동감 있게 담아낸 에센스 같은 소설.
_파리 마치
작가의 천사 같은 얼굴도, 감상적이고 말랑말랑한 책 제목도 절대로 믿지 마라.
_르 푸앵
사랑의 올가미에 갇힌 영혼의 심연 속으로 점진적이고 은밀하게 스며드는,
지나칠 정도로 뛰어난 작품!
_케스티옹 팜
클레르 카스티용 Claire Castillon
1975년 프랑스 불로뉴 비양쿠르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경험한 뒤에 갑자기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열여덟 살 때 광장공포증에 걸려 길고 지난한 정신과치료를 받기도 했다. 스물다섯 살에 첫 소설 『다락방』을 발표한 후, 거의 매해 한 편씩 작품을 내놓으며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아름답고 고혹적인 외모와는 달리 가치 전복적이고 도발적인 작품 성향 때문에 ‘천사의 얼굴로 악마의 글을 쓰는 작가’로 불리며, 일거수일투족이 가십란에 오르내리며 젊은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트렌드세터’이기도 하다.
그녀는 또한 소설 쓰기 외에도 희곡『기침하는 인형』을 발표해 무대에 올리기도 하고, 텔레비전 방송 진행자로 활동하는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다. 지금까지 『다락방』(2000) 『나는 뿌리를 내린다』(2001) 『렌 클로드』(2002) 『왜 날 사랑하지 않아?』(2003) 『그녀에 대해 말하다』(2004, 티드 모니에 대상 수상작) 『로즈 베이비』(2006)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 http://www.clairecastillon.com
옮긴이 윤미연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캉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구해줘』『첫 번째 부인』『드골평전』『나의 라디오 아들』『엄마와 딸 그리고 하버드의 기적』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2008년 4월 1일 발행
* ISBN 978-89-546-0534-2 03860
* 128*188(양장) | 200쪽 | 9,500원
* 담당편집_해외문학 3팀 장선정
(031·955·2654 | koiblue@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