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북유럽문학을 대표하는 스웨덴 소설가, 마이굴 악셀손의 장편소설 『사월의 마녀』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장애와 입양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촘촘하게 직조된 미스터리와 신비한 판타지에 녹여내 단숨에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 작품은, 스웨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우구스트 상을 수상하며 40만 부가 팔려나갔고, 미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등 23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누구지? 누구냐니까!
삶을 도둑맞은 마녀의 처절한 복수극
몸은 불구이지만 머리와 가슴은 천재적인, 마녀 같은 주인공 ― 데시레.
데시레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태어나자마자 간질발작을 동반한 전신마비 증세를 보이며 시설을 전전하던 데시레는 친부모에게조차 버림받고, 병원침대에 시체처럼 방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연약하고 불완전한 몸엔 특별한 능력이 숨어 있다. 침대에 묶인 몸이지만 스티븐 호킹처럼 기초물리학과 천문학에 미친 사람처럼 빠져들고, 호스에 숨을 불어넣으면 모니터상의 글자로 변환해주는 ‘호흡 인터페이스’ 장치에 의지하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또렷하게 표출해내는 것이다.
오늘밤 나는 이 지상 모든 생명체 안에 존재할 수 있어!
게다가 데시레는 ‘사월의 마녀’라는 종족에 속해 있다. ‘사월의 마녀’란, 유체이탈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는 선택받은 자들의 집단. 한번 유체이탈을 할 때마다 지독한 간질발작과 함께 몸상태가 점점 악화되지만, 데시레는 최근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거나 갈매기와 까마귀의 날개깃에 파고들어, 집요하게 누군가를 추적하고 있다.
데시레의 추적대상은 바로 친엄마 엘렌이 그녀를 버리고 입양한 세 자매, 크리스티나, 마르가레타, 비르지타. 데시레는 그들에게 제 몫의 삶을 도둑맞았다고 믿으며 복수를 다짐한다.
엘렌의 사후 뿔뿔이 흩어져 살던 세 자매는, 어느 날 그들의 가장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익명의 편지를 받으며 재회한다. 편지를 보낸 이가 데시레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서로의 상처를 후벼파며 악다구니를 해대는 세 자매. 갈등이 깊어갈수록 속속 드러나는 데시레의 불행한 삶만큼이나 처연한 세 자매의 삶.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듯했던 복수의 문 앞에서 마녀 데시레는 처절하게 절규한다.
난 사랑받는 아이가 아니야……
늘 사랑에 쫓겨다니는 사람이라네
『사월의 마녀』는 미스터리와 판타지, 추리소설 등의 다양한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은 ‘장애’와 ‘입양’이라는 사회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고통을 네 여자의 인생행로를 통해 풀어낸 한 편의 우화이다.
주인공 데시레는 지금까지 수많은 매체에서 ‘대상화’되고, 희생양으로 묘사되어온 중증 장애인.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녀는 세상이 장애인에게 요구하는 순종의 미덕과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길 거부하고, 끝없이 분노하고 절망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서사의 주축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며 성인군자처럼 설교를 늘어놓았습니다. (……) 그들은 내가 육신을 부지하는 데 필요한 음식과 옷을 얻었다는 것에 우선 감사의 마음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직시하기를, 종국에는 나의 장애를 비극이 아닌 그저 불편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기를 기대했지요. 하지만 그건 명백한 비극이었습니다. 걸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 비극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단순한 불편함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때리고, 바닥에 뒹굴고, 짓밟고, 두 주먹으로 바닥을 두들기고, 정처 없이 걷거나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 후에야 겨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거지요. 비로소 잠시나마 가만히 누워 개미 한 마리가 풀줄기를 따라 집으로 기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거지요. 그런 뒤에라야 삶이란 이렇게 한순간일 뿐이면서 동시에 무궁무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있는 거지요. 우리가 어떻게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본문중에서
한편, 지하 공동세탁실에 버려져 친엄마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마르가레타는 매번 ‘더 좋은 곳으로 간다’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입양되지만, 자신이 언제 어느 때든 짐짝처럼 옮겨질 수 있는 별 가치 없는 존재라는 강박에 시달린다. 생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엘렌의 집으로 입양된 크리스티나 역시 실어증을 딛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생모에게 보내지면서 이전보다 더욱 가혹한 학대를 당하고 회복할 길 없는 유년의 상흔을 떠안고 살아가게 된다.
작품 속 그 어떤 인물보다도 굴곡 많은 인생역정을 넘나들며 독자들의 가슴에 스산한 인상을 남기는 비르지타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집행되는 사회제도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다 가장 철저하게 망가지는 인물. 비르지타의 엄마 게르트루드는 누가 봐도 구제할 길 없는 알코올중독자이지만, 어린 비르지타는 그런 엄마의 곁에 끝까지 남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회복지국’은 사회가 요구하는 어머니상에서 철저하게 일탈한 비르지타의 엄마를 격리시켜버리고, 비르지타는 분노와 반항심을 못 이겨 마약과 집단섹스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다 결국 사회의 부랑자로 전락해간다.
‘복지’라는 이름의 냉혹한 불행 ‘처리’ 시스템
이렇듯 이 작품에서 사회는 불행하고 연약한 여성들을 끊임없이 ‘정상’의 범주로 끌어내 ‘관리’하고 ‘개선’하려 들지만, 이 체제 안에서는 그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사회에 의해 기계적으로 불행을 거세당하고 이리저리 떼밀릴수록 이들은 점점 더 불행해지고 상처 입을 뿐이다.
『사월의 마녀』는 수많은 스웨덴인과 북유럽인 들에게 후기 산업사회 스웨덴의 복지정책을 돌아보게 하며, 무엇이 진정한 복지이고 불행한 개인을 위한 최선의 길인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복지란 낙오된 인간을 ‘관리’하고 그 불행을 보기 좋게 ‘처리’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개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담보와 지원이어야 하는가? 복지정책의 적용기준이 되는 ‘행복’과 ‘정상’의 범주는 과연 객관적이고 합당한 것인가? 혹시 복지란, 개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묵살한 채 집단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집행되는 편리한 ‘불행’ 분리수거 방식은 아닌가?
세계적인 복지국가 스웨덴, 그 스웨덴의 복지정책이 정립되기까지의 빛과 그림자를 한몸에 품고 있는 『사월의 마녀』가, 지금 시공간을 가로질러 한국으로 날아와 우리에게 조용히 묻고 있다.
이 소설은 네 자매의 질투와 시샘, 원한과 경쟁, 엄마와 딸의 관계 등 여성적인 이야기를 섬세하고 사실적인 언어로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전후 스웨덴 복지정책의 이면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해낸 작품이다. (……) 당시 스웨덴은 사회복지국가를 표방하면서도 서구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그 중심엔 ‘사람’이 아닌 개발, 질서, 통일성과 같은 계몽주의적 모토가 있었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사회복지의 찬란한 햇살에서 소외된 채 의학연구의 대상이 된 데시레는 자신의 처지에 절규한다.
(……) 번역을 하는 동안 등뒤에 누군가가 서 있는 듯한, 그 어떤 ‘사월의 마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두려움에 줄곧 시달렸다. 그럼에도 이 일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시종일관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과 더불어 행간에 배어 있는 인간의 온기 때문이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에 쏟아진 해외 언론의 찬사
강렬한 마법 같은 이야기…… 완벽하게 매혹적인 소설. 책을 펼치는 순간, 당신은 ‘사월의 마녀’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_워싱턴 포스트
탄탄하면서도 몽환적이다. 악셀손의 이 놀라운 소설은 장애, 가족, 사회제도 등에 억눌린 한 인간의 육체와, 그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유랑하는 그의 영혼을 그려냄으로써 숨 막히는 긴장감과 신비감을 발산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당신은 들뜨는 마음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마법을 거는 작품이다. _피플
문장은 간결하고 대화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다. 감동적이고 서스펜스로 가득하며 열정적인 작품! _라이브러리 저널
악셀손은 한 편의 우화인 동시에 사회 비판과 재미까지 두루 갖춘 황홀한 소설을 써냈다. _스벤스카 다그블라더트
『사월의 마녀』의 문학적인 강점은, 정교한 구조와 충만한 아이디어, 오랫동안 모든 독자들이 간절히 목말라 있던 풍부한 서사 등 그 독특한 지적 생명력에 있다. _다겐스 니헤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