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로 올요미모노 상을 수상하며 데뷔, 그해 나오키 상 후보에까지 오르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다이라 아스코는 ‘여자 오쿠다 히데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유머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사랑 보존법』은 그런 그녀의 위트가 한껏 발휘된 소설집. 같은 상대와 네 번째 결혼하는 커플, 미중년 아버지에게 애인을 뺏겨버린 남자, 할 줄 아는 거라곤 돈 안 되는 공부밖에 없는 학자 선생님, 이사 중독증에 걸린 골드 미스 등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과 결혼에 골인하려 애쓰는 유쾌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사랑이 사건이 되는 사람들의 유쾌한 연애 분투기!
사랑에 빠지는 남녀의 모습은 일종의 화학반응에 비교해도 좋을 것이다. 서로 섞이는 과정에서 어떤 때는 물과 기름처럼 둥둥 떠서 분리되고, 어떤 때는 주위의 무언가를 촉매 삼아 화르륵 불타오르기도 한다. 다이라 아스코는 이렇게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남녀관계의 오묘함을 특유의 유머 센스를 동원해 유쾌하고 맛깔스럽게 그려낸다. 하나같이 어딘가 어긋나고 기우뚱거리기 일쑤지만 미워할 수 없는 커플들의 이야기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사랑 보존법」 고타로와 마유미의 네번째 결혼식에서 엉겁결에 사회를 맡게 된 나카코. 축의금과 예복 문제로 투덜거리는 주위 친구들 사이에서 왠지 석연찮은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결혼이란 의식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혼과 결혼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마유미의 연설을 들으면서, 나카코의 눈길이 향하는 곳은 다름아닌 새 신랑(?) 고타로다. 근사한 안경을 쓴 수염이 잘 어울리는 조용한 남자. 고타로는 어째서 마유미처럼 철없는 여자와 네 번씩이나 결혼하는 걸까?
「아빠의 베이비 보이」 소아과 간호사인 청순한 여자친구 고토에와 결혼할 계획에 부풀어 있던 다케히코에게 청천벽력 같은 선언이 떨어진다. 백수에 한량에 바람둥이라 돌아가신 엄마를 고생만 시키던 철없는 미중년 아버지에게 고토에가 반해버린 것. 어린 눈에도 한심하게 보이던 무위도식 대책 없는 아버지에게 대체 무슨 매력이 있기에 매번 여자들이 꼬이는 걸까?
「그대가 떠난 후」 갑작스런 모친상을 당한 유코를 기다리던 쓰요시. 드디어 듬직한 남자친구 노릇을 할 때가 왔다고 각오하며 위로의 말을 준비했지만, 정작 충격에서 벗어난 유코는 까다로운 절차로 가득 찬 장례식 준비의 고충만 털어놓기 여념이 없다. 심지어는 장례식 때 참여한 스님과 묘한 핑크빛 무드마저 풍기는 듯한데. 소심하게 전전긍긍하기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
「외로운 사람들의 소립자」 근면성실한 선반공 데쓰타로의 집에는 언젠가부터 군식구 하나가 얹혀산다. 아들 텟페이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자 소립자 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 다쿠다가 그 주인공이다. 돈 한 푼 되지 않고 도통 쓸모없어 뵈는 공부에 매달리는 다쿠다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쫓아낼 기회만 엿보던 데쓰타로. 그런데 동거남과 헤어지고 집으로 들어온 딸 하루카와 그놈의 거동이 어째 수상한 눈치다?
「그녀는 향수병」 툭하면 살던 집을 버리고 낯선 동네로 이사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도키코와, 그녀에게 이끌려 매번 함께 새 집을 보러 다니고 이삿짐을 싸주곤 하는 시마쓰. 어디까지나 친구인 관계이지만 도키코의 결혼 선언에 울적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남자든 집이든 좀처럼 정을 붙이지 못하던 그녀가 정말 정착할 곳을 찾은 걸까?
「너무 친절한 노부미쓰 씨」 딸 루리의 스무 살 생일날, 미치루와 노부미쓰는 이제껏 숨겨온 비밀을 공표하기로 마음먹는다. 루리에게 친동생 말고도 아버지가 다른 곳에서 낳은 동생이, 그것도 세 명이나 있다는 것. 오는 여자 거절 못 하는 성격 탓에 다섯 자녀의 양육비를 떠맡고 뼈 빠지게 고생하는 서글픈 천사표 아버지의 파란만장 인생 고백이 펼쳐진다.
이 세상의 대세에서 조금 벗어난 남녀의 연애 스토리
『사랑 보존법』에는 언뜻 평범하고 착실해 보이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운 나쁜 사람들의 좌충우돌 스토리가 가득하다. 수다스럽고 분주한 대화 속에 의외로 진솔한 감정을 담아내는 다이라 아스코의 문장을 읽다보면 마치 오래된 친구의 밉지 않은 하소연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떤 자리에서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질리지 않고 유효한 화두가 바로 ‘타인의’ 연애, 남녀의 속사정 아니던가? 덧붙여 여섯 편의 단편 모두 작가의 주위 사람을 실제 모델로 삼아 쓴 것이라고 하니, 다이라 아스코의 재능과 행운은 글쓰기뿐 아니라 인복(?)에도 있는 듯하다.
흔히들 냉각기간을 둔다는 말을 하잖아? 그게 정신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뿐이라면 마음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식히면 돼. 하지만 이혼의 효과는 더 강력하다구. 말하자면 애정을 냉동고에 넣어두는 것과 같은 거야. 왜, 아이스 팩을 생각해봐. 그것처럼, 따뜻하지만 물렁물렁해져서 쓸 수가 없지만 냉동고에 잠시만 넣어두면 다시 딱딱하게 굳으면서 제 기능을 되찾아.
_「사랑 보존법」 중에서
여자에게 의견 같은 걸 말해서는 안 돼. 원래부터 여자에게 남자의 의견 따위는 필요 없단다. 어떤 일에 대해 의논을 하거나 투정을 부리면 그저 부드럽게 끌어안고 ‘그래,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라고 말해줘야 해. 그것이 남자로서 지녀야 할 올바른 몸가짐이야
_「아빠의 베이비 보이」 중에서
이 세상의 대세에서 조금 벗어난 남녀의 연애 스토리
구제불능 인간을 그리는 데 있어선 다이라 아스코를 따를 자가 없다!
_일본 독자평에서
옮긴이 박미옥
1970년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 외국어 대학 및 대학원에서 일문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검은 마법과 쿠페 빵』 『오늘의 레시피』 등이 있다.
* 2008년 8월 20일 발행
* ISBN 978-89-546-0632-5
* 124*184 | 324쪽 | 9,800원
* 담당편집 : 양수현(031-955-8863 shu@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