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품격? 돈의 맛!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벌거벗긴 미술계의 진면목
2005년 초 리처드 폴스키는 그가 너무도 사랑하는, 무척 힘겹게 손에 넣었던 워홀의 자화상 ‘깜짝 가발’을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활기를 띠기 시작한 동시대미술 시장에서 시세 차익을 거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앤디 워홀의 그림 한 점을 소장하기 위해 12년 동안 애썼고 우여곡절 끝에 2002년 초록색 ‘깜짝 가발’을 4만7,500달러에 구입했었다. 그것은 그에게 그저 그림 이상이었다(이 그림을 획득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전작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마음산책, 2005, 현재 절판)에 상세히 밝혀져 있다).
나는 내 ‘깜짝 가발’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렵게 얻은 승리의 기념물로서, 가치 있는 워홀 작품을 사기 위한 지루한 수색 끝에 얻은 결과물이었다. 물론 나는 그 작품의 가치가 올라서 기뻤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올바른 투자를 했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그림은 내게 단순한 투자 이상이었다. 그것은 내 영혼의 일부였던 것이다. ‘깜짝 가발’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미술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돈이 많을지는 몰라도 내게는 멋진 그림이 있었다.
이처럼 평생 소장하리라 마음먹은 작품이었지만, 재정난에다 결혼생활에도 문제가 생겼던 폴스키는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경매에 내놓는다. 그림은 37만5,000달러에 팔리며 그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림을 구입한 지 3년 만에 거의 여덟 배로 값이 뛴 셈이었으니, 아주 괜찮은 장사였다. 하지만 그의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후 2년 동안 미술시장은 폭발적으로 팽창했고, 그림 값은 차마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치솟아 수백만 달러의 미술품 거래는 예외가 아닌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 책은 지은이가 자신의 ‘깜짝 가발’을 팔아버린 후 다른 수집가를 위해 또 다른 ‘깜짝 가발’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은이의 ‘깜짝 가발’을 20만 달러에 사려고 했던 한 수집가는 이 그림을 사지 못하고서도 ‘깜짝 가발’을 소장하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고 개인 미술상인 지은이에게 그 그림을 구해달라고 한다. 시장에 나오는 ‘깜짝 가발’이 씨가 마른 가운데, 이 수집가는 결국 2007년 한 소장가에게서 초록색과 오렌지색 ‘깜짝 가발’을 167만5,000달러(한 점당 83만7,500달러)에 구입한다. 그러니까 2년 만에 ‘깜짝 가발’의 시세가 2배가 넘게 뛰었던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해 6월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또 다른 ‘깜짝 가발’이 무려 240만 달러에 낙찰이 되었다.
절정으로 치닫다가 나락으로 떨어지기까지,
미술시장의 초상
이런 엄청난 변화 덕분에 미술시장의 구조 또한 바탕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래 경매회사는 2차시장의 기능을 담당한다. 예술가가 작품을 창작하면 그 작품은 미술상에 의해 거래가 된다. 그렇게 미술품을 소장하게 된 수집가가 작품을 다시 판매하려고 할 때도 예전에는 대개 미술상을 찾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경매가 한 번 열릴 때마다 폭등하는 그림 값을 목도한 구매자와 판매자 들은 미술상들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경매회사와 거래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기준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시장이 마치 이성을 상실한 것 같았다. 예전에는 미술상, 갤러리, 경매회사에게 각자 자신의 영역이 있었고 그 영역에서 역할을 다하면 되었지만, 이제 그런 구분은 무의미해져갔다. 그리고 이 바뀐 판도에서 승자는 경매회사가 되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미술가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것은 갤러리의 몫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미술가들이 미술계에서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게 되면 그제야 그들의 작품이 경매에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창작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작품이 경매에 올라오는 것이 당연해진 것이다. 덕분에 미술상들은 자신의 감식안을 믿고 작품을 매매하는 것이 아니라 “MBA 출신처럼 생각하고 월스트리트의 증권 매매 업자처럼 투자”해야 하게 되었다.
『나는 앤디 워홀을 너무 빨리 팔았다』에서 폴스키는 ‘미술계’가 ‘미술시장’이 되어버렸던 짧고 폭발적이었던 시기, 즉 자신이 ‘깜짝 가발’을 경매에 내놓았던 2005년부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술시장이 붕괴하기 직전까지의 시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지은이는 경매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 경매회사의 급부상으로 갤러리에게서 떠나가는 미술계의 권력,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부자들만의 게임이 되어버린 미술시장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을 찾는 법에 대해 깊이 파헤친다.
미술계 속사정에 대해 함구하는 대부분의 미술계 인사들과 달리, 폴스키는 고객들을 대신해 뉴욕과 런던, 샌프란시스코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과정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작품 값이 폭등하는 미술시장에서 자신이 너무 빨리 팔아버린 ‘깜짝 가발’을 대체할 만한 작품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주저 없이 있는 그대로 얘기한다. 미술품 수집이라는 이상하고 변덕스러운 세상에 대해 설득력 있는 뒷얘기를 모두 털어놓는 이 책은 미술업계가 작품 을 돈으로 가치 전환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유쾌하고 불경스러우며 적나라한,
미술계 내부자의 폭로
이 책은 이처럼 미술시장에서 가장 중요했던 시기에 대한, 내부자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의 고급 정보를 잔뜩 담고 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동료 미술상들과 미술계 인사들 그리고 자기 자신이 희화화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는 미술계 내부의 풍경을 더 이상 솔직할 수 없을 정도로 까발려 풀어낸다. 특급호텔에 투숙한 미술상이 친구가 호텔 미니바에서 마카다미아 너트 깡통을 꺼내 먹었다는 것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싸우는 모습이나, 지은이가 술김에 상대도 되지 않는 건장한 화가에게 호기롭게 팔씨름 시합을 제안했다가 겨우 모면하게 되자 안도하는 모습, 또 잘나가는 미술상이 1등석에 타서는 이코노미석에 탄 자신의 동료를 비웃는 모습은, 이 사람들이 과연 미술계를 주물럭거리는 인물들인가 하는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이런 미술계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들려주는 가운데 지은이는 미술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자신의 경험을 풀어 놓음으로써 마치 독자가 그 곁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경매에 작품을 판매하려고 내놓을 때 작품의 가치를 최대한 인정하게 하면서도 잠재적인 수집가가 입찰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최저 예상가를 정하는 법이라든가, 경매가 시작되기 전에 잠재적인 구매자들에게 접촉해서 누가 경매에 참여할지를 예상하는 모습, 고가 거래가 예상되는 작품의 소장자에게는 판매자 수수료를 받지 않는 등의 호의적인 거래 조건을 제시하는 모습, 특정 작가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수집가가 그 작가 작품의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끌어올리기 위해 경매에 참여해서 그림 값을 올리는 모습 등, 이 폐쇄적인 세계에 익숙한 내부자가 아니고서는 잘 알기 어려운 것들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어 독자들에게 그 세계의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지은이는 결국 이 시기를 거치면서 미술상에서 미술품 재정 자문가가 된다. 지은이는 자신의 ‘깜짝 가발’을 ‘너무 빨리’ 팔아버린 죄로, 고공 상승하는 미술품 시장에서 그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살 능력이 자신에게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림을 팔아서 남긴 돈으로 새로운 ‘워홀’을 사기엔 그림 값 상승 폭이 너무 커졌던 것이다. 미술품을 거래해서 남는 차액으로 이윤을 얻어야 하는 미술상으로서는 설 자리를 잃었다는 얘기와 다름없었다. 결국 지은이는 미술계에서 자신의 자리가 더 이상 ‘미술상’이 아님을 인정한다. 그리고 ‘미술품 재정 자문가’로 탈바꿈한다. 미술품 거래에서 소장자와 수집가를 연결하고, 소장자가 경매에 미술품을 내놓을 때 경매회사와 교섭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수집가에게 적당한 작품을 찾아줘서 구매하게 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지은이 또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