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 문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히며 ‘중국 문단의 선봉장’ ‘중국 제3세대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는 세계적인 소설가 쑤퉁의 새 장편소설 『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가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줄곧 다양한 형식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온 그는 치밀한 묘사와 탄탄한 플롯, 기발한 상상력이 어우러진 풍부한 입담으로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두루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가 장쑤문학예술상을 포함해 충칭문학상, 소설월보백화상, 상하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그의 작품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주요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에 소개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이렇듯 역량 있는 작가 쑤퉁이 5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발표한 역작이 바로 『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이다. 쑤퉁은 이 소설에서 소설가로서 자신의 모든 강점을 끌어모아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하면서도 간결하게, 비정하고 냉정한 현실 속 하류 인생을 깜짝 놀랄 만큼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특히 중국 하층민의 삶을 통해 현대인의 추악함과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폭로하며, 우리에게 치열한 삶 속에서 지켜내야 할 진정성과 인간성이 무엇인지 묻는다.
온정 없는 대도시의 중국 하층민이 벌이는 희망과 파멸의 변주곡
장맛비가 내리는 어느 날 오후, 이국적이며 눈에 띄는 옷차림의 금발소녀가 우리 도시 기차역 여관에 도착한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호기심 대상이 된다. 여관의 접수계 직원 렁옌은 그녀의 얼굴이 신분증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옥신각신한다. 복도에서 여관 직원 슈훙을 만난 금발소녀는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공용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뱀을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며 알몸으로 뛰쳐나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만다. 어째서 기차역에 뱀이 나타난 걸까? 갑자기 나타난 뱀 떼는 순식간에 도시를 뒤덮는다.
커위안은 사채업자 더췬 밑에서 일하는 행동대원이다. 그는 더췬의 지시로 3만 위안을 빚진 렁옌의 전 남편 량젠을 찾아가는데,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량젠은 21세기맞이 괘종시계탑에서 스스로 떨어져 죽음으로써 그 빚을 청산한다. 커위안은 량젠의 장례를 치러주고, 우연히 만난 금발소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공원에서 만나 함께 커위안의 집에 온다. 그러나 커위안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어 사랑의 결합을 이루지는 못한다.
한편 금발소녀는 매춘 여성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기차역에서 며칠째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녀는 연예계에 진출하기 위해 성형을 하고 이 도시에 왔지만 막상 기다려 만난 CF 감독에게 냉혹하게 거절당한다. 그녀는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이렇다 할 학력도 경력도 없는 그녀에게 현실은 비정하기만 하다. 도시를 배회하던 금발소녀는 성형 후유증으로 코가 망가진 채 마지막으로 렁옌을 찾아가 뱀 식당의 로고가 그려진 마스크를 빌려 쓰고 이 도시를 떠난다.
렁옌은 애인 샤오천과 틀어지고, 돈만 밝히는 여자로 낙인찍힌다. 그녀는 결국 기차역 여관을 떠나 뱀 난리로 인해 활성화된 뱀 문화 덕분에 호황을 누리게 된 뱀 전문 식당에 살모사 아가씨로 취직해 새 인생을 연다. 그녀는 뱀을 죽이고 뱀과 춤을 추기도 한다. 한편 슈훙은 복권에 대한 꿈으로 기차역 광장에 나갔다가 군중에 휩쓸려 그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20세기 마지막 날, 커위안은 취직을 부탁했던 펑다린과 싸움 끝에 그를 죽이게 되고, 결국 기차에 오른다. 기차역 광장의 21세기맞이 괘종시계는 2001번의 종을 울릴 테지만 커위안은 들을 수 없다.
동정 없는 세상의 인간 군상에 대한 냉정한 시선
쑤퉁은 이 소설에서 현대 중국의 실상과 중국 하층민의 서글픈 일상을 낱낱이 해부한다. 그러면서도 소설 속 인물들에게 어떤 연민도 보이지 않고, 도리어 비아냥거리며 냉소적인 응원을 보낼 뿐이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격투장 위에 올라섰으면 승자가 날 때까지 피투성이가 되어 싸워야 한다. 그게 인생이다. 링 위에서 부서지고 망가져라. 그 과정을 내가 끝까지 지켜보고 서술해주겠다.” 이와 같은 냉정한 시선은 소설의 전개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이야기는 서사구조 없이 전개되며, 문장 역시 날이 서 있고 비장해 보일 정도로 각이 져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21세기를 앞둔 대도시의 기차역 광장으로, 쑤퉁은 기차역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기차역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1세기 전야, 설을 쇠기 위해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기차역 광장에서 갑자기 내가 사람들로 이루어진 늪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나는 사람들의 몸으로 가득한 공간이 만들어낸 굽이굽이 휘어 도는 통로에서 생계로 찌들어 풍상에 절은 무수한 민초들의 표정을 보았다. 우애나 선량함이나 적의조차 없이 마비된 눈빛들을 보았다. (……) 그 풍경을 보면서 나는 대단히 예리하게 스스로에게 암시를 보냈다. 너, 비참한 인생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거야.
(……) 내 기억으로는 그날 밤 기차역 광장에 닿아 기차에 오르기까지 대략 이십여 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이 이십 분은 내게 ‘인생을 직면’하게 하는 경험을 주기에는 충분치 않았지만, 이 소설을 관통하는 분위기를 각인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작가의 말’ 343쪽~344쪽)
이곳 기차역 광장은 천 년을 이어온 과거의 영광을, 세계의 중심이라는 타이틀을 다시금 거머쥐고자 몸부림치며 중국 전체를 단시간 내에 개조하고자 무리수를 두는 중국 정부와, 개발과 변화의 급류에 떠밀려 무너지고 상처 입은 중국 인민의 모습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무리한 성형수술로 얼굴을 망친 금발소녀, 복권에 인생을 걸다가 미쳐버린 슈훙, 아름다운 성에서 근무하려다 살해당한 펑다린, 허세와 체면을 위해 하루하루를 낭비하다 살인자가 되어버린 커위안 등은 이러한 중국 하층민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전혀 건전하지 않으며, 그들을 둘러싼 세계 역시 결함과 추악함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현재 처지로부터 도망치며 살아남으려 몸부림친다.
왜 하필 도시에 뱀이 나타났을까
쑤퉁은 또한 이 소설을 통해 현대 중국에서 벌어지는 소통의 단절 문제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등장인물들은 순펑 거리에서 자란 한 동네 사람들인데도 하나같이 서로 증오하며 이용하려고만 든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돈과 권력(힘)뿐이다. 더욱 슬픈 것은, 그렇게 떠밀려 살아가는 하층민끼리 서로 보듬기는커녕 경계하고 의심하고 폄하하고 마음을 나누지 못해 결국은 소통을 거부하고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재촉한다는 점이다.
그런 이 도시에 갑자기 뱀 떼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뱀의 등장은 그 맥락을 잡기가 여간해선 쉽지 않다. 뱀은 신학적으로 신이 마련해준 정원에서 인간을 쫓겨나게 한 존재이자 심리학적으로는 죄와 욕망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또한 성적인 카타르시스, 숨겨진 성의 욕망과 죄책감의 상징이자 위험하고 혐오스러운 동물의 대표적인 생물체다. 그러나 뱀은 날지 못한다. 날지 못하는 뱀들이 도시를 공격하고 사람들을 패닉 상태에 빠뜨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뱀이 ‘날아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뱀의 존재는 이 소설에서 욕망의 폭발과 해방을 동시에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상징화처럼, 모순 안에 돌고 도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말이다. 나중에 한때 도시를 휩쓴 뱀 재난을 잊은 사람들이 뱀 요리에 탐닉하듯이.
병적 상태에 놓인 중국 사회를 가차없이 그려낸 소설
중국 사회의 급격한 현대화로 인한 그들의 고독과 인성의 상실은 뼈아픈 수준에 이르고 있다. 현재 중국은 과거의 유산이 급속히 파괴되고,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며, 추억이 서린 모든 거리는 문명의 이름으로 재개발되고 있다. 이젠 돈이 곧 힘이고 삶이다. 인간적인 신뢰와 꿈과 희망과 사랑의 기억들은 이 소설에서처럼 밤기차에 실어 종착지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쑤퉁은 한 인터뷰에서 “수술대에 누워 나 자신을 골격부터 부러트리고 스스로에게 칼질을 하여 완벽하게 새롭게 태어나 기존의 자신과 다른 나로 거듭나고 싶었다”라고 창작 동기를 밝힌 바 있다. 어쩌면 그가 부러트리고 칼질하고 싶었던 대상은 그 자신이 아니라 각박하고 살벌한 세상, 자신의 파티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 죽어가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구급차를 부르지 않는 비정한 세상인지도 모른다.
쑤퉁이 처음으로 시도한 현대사회의 현실과 일상을 반영한 밀착 장편소설. 각양각색 인물들의 들끓는 욕망과 소동, 그리고 추락하는 운명을 그려냈다. 뉴스넷
현실, 그것이야말로 쑤퉁의 펜 끝으로부터 나온 진실이다. 상하이상업신문
‘뱀’과 ‘비상(飛翔)’이라는 두 상징을 통해 현대 하층민의 분투를 그려냄과 동시에 급변하는 사회를 심오한 작가정신으로 해부하며 당대 문학의 의의를 질문하는 소설. 허베이건축과기학원 대학신문
지은이 쑤퉁(蘇童)
1963년 중국 장쑤성에서 태어나 베이징 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했다. 1983년 대학 재학중 단편 「여덟번째 동상」으로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다양한 형식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치밀한 묘사와 탄탄한 플롯, 기발한 상상력이 어우러진 풍부한 입담이 발현된 그의 작품들은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인 그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가장 잠재력 있는 작가’로 손꼽히며, 중편 「처첩성군」은 홍콩 <아주주간>의 ‘20세기 중국문학 베스트 100’에 선정되었다. 장쑤문학예술상을 포함해 충칭문학상, 소설월보백화상, 상하이문학상, 타이완연합보 대륙단편소설추천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많은 작품들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주요 언어로 번역 소개되었다. 또한 「처첩성군」 「홍분」을 비롯한 작품들이 장이모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전 세계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눈물』 『나, 제왕의 생애』 『쌀』 『이혼지침서』 『홍분』 『마씨 집안 자녀 교육기』 등이 있다.
옮긴이 김지연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연극과 박사과정과 중국희곡학원 경극연출과 단기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극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김지연 희곡집』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비』 『그림 그리기가 정말 좋아』 등이 있다.
* 2008년 9월 16일 발행
* ISBN 978-89-546-0648-6 03820
* 140*210 | 352쪽 | 11,000원
* 담당편집 : 류현영(031-955-8858, sanja95@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