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한형조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왜 동양철학인가』(문학동네)를 출간한 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예전에는 동양철학의 전근대성이 강조됐죠. 그 뒤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유교를 비롯한 동양 전통을 근대와 접목시키는 것이 논의의 초점이 됐죠.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근대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 오늘날 유교의 핵심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욕망의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 인간의 초월적 본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근현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욕망에 대한 가치평가를 적극적으로 행한 동양철학이야말로 미래의 사유체계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던 것이다.(동아일보 2000년 12월 22일자) 그 전망의 노정을 따라 꾸준히 걷고 있는 그가 이번에 내놓은 성찰의 결과물은 ‘조선 유학’이다.
조선 유학, 그 활발발한 정신의 해부도
주지하듯이 조선은 유학(성리학)의 나라였다. 유학은 조선조 5백 년 동안의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였으며 지배계급과 지식인층의 유일무이한 존재 기반이자 가장 첨예한 철학적 테마였다. 이 책 『조선 유학의 거장들』은 조선 유학의 성좌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인물들의 정신의 정수를 헤집고, 때로는 그들 사이에 벌어진 뜨거운 사상적 격전의 현장을 되짚어봄으로써 조선 유학이 갖는 드넓은 스펙트럼과 미지의 깊이를 드러내 보인다.
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단편적 전기나 몇몇 에피소드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물며 이 책 속에서 ‘거장’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진 인물들은 명실 공히 조선 최고의 두뇌들이다. 저자는 그들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언어의 결과 맥락을 세심하게 매만지며 조선 유학의 심층적인 좌표를 그려나간다. 조선 유학이 개화 만발한 16세기부터 근대의 문턱인 20세기까지가 당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의 이학(理學)과 기학(氣學), 주리(主理)와 주기(主氣)를 둘러싼 불꽃 튀는 사유의 궤적을 통해 꼼꼼히 그려진다.
16세기 백화(百花)의 정원
1장의 주인공은 율곡이다. 그는 퇴계의 카운터파트로서 조선 최대의 철학 논쟁인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이끈 대유(大儒)이자 조선 유학의 한 젖줄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율곡의 입산 경험에 주목하여 조선 성리학이 극력 배척했던 불교의 사상이 유교와 회통하는 지점을 밝혀낸다. 율곡 나이 20세에, 금강산에서 이루어진 어느 노승과의 철학적 대화를 꼼꼼히 분석하며 저자는 유교와 불교가 대척점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 지형을 공유한다고 역설한다. 율곡이 ‘학문’에 뜻을 세우고 현실세계를 그 터전으로 삼게 된 철학적 여정을 저자는 율곡과 노승의 유-불 논쟁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재현해낸다.
2장은 역시 퇴계다. 그는 명실 공히 조선 유학의 정점으로서, 주자학의 밑그림을 완성한 장본인이다. 이 글은 퇴계 70년 공부의 온축이 집약된 『성학십도』 분석을 통해 그 사상의 핵심을 밝힘으로써 오늘날 주자학의 근본기획이 갖는 의미와 위상을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총제적으로 주자학은 반근대적 사유이고, 이념이고, 체계이고, 문명이다. 그것은 낡았지만, 가장 새로울 수 있다. 그것은 근대가 묻어버린 ‘본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근원적으로 사유하며, 그것을 충분히 실현시키는 방도를 제시한다. (…) 지금 우리에게 부닥친 문제가 절박하게 ‘생명’과 ‘소외’라면, 주자학은 노장과 불교, 양명학과 더불어, 자신의 깊은 지혜를 들려줄 것이다.”
3장은 “시퍼런 칼날의 유학”자 남명 조식을 다룬 글이다. 저자는 남명의 얼마 되지 않는 1차 문헌 분석을 통해 그의 무사적 기질의 연원을 밝히고, 조선 유학에서 그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을 재정리한다. “남명은 그 인물과 사상에서 조선 유학의 정형을 벗어나 있다. 조선 유학의 전통에 충실한 사람들은 그를 이단적 일탈로 보겠지만, 조선 유학의 규모에 답답해하는 사람에게는 그는 혁신적 개성이다. (…) 남명은 도학이 이론이나 경학으로 대치되는 것을 깊이 우려했다. 그는 이론적 경향이 도학의 소외라는 것을 한눈에 간파하고 그 풍조가 깊어지기 전에 병근을 근원적으로 치유하려 했다. 그의 학풍이 광해에서 인조에로의 전환을 겪지 않았다면 조선 유학은 실천적 실무적 기풍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17세기 철학적 격돌의 심화
4장에서는 사단칠정론과 함께 조선 유학 양대 논쟁 가운데 하나인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의 구체적 전개 양상을 살펴본다. 인(人)과 물(物)의 본성은 다르다(인물성이론, 호론湖論, 즉 주기主氣)는 주장과 인과 물의 본성은 같다(인물성동론, 낙론洛論, 즉 주리主理)는 주장은 각각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1682∼1751)과 외암(巍巖) 이간(李柬, 1677∼1727)을 중심으로 격렬히 부딪쳤다. 이 논쟁은 인간-자연의 상호 위상 정립에 관한 문제인바, 한말까지 조선 유학 논쟁의 중심 테마로 계속된다. 북학파로 불리는 일군의 실학자들(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등)이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모두 인물성동론의 낙론 계열이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하는 아이러니다.
18세기 위로부터의 개혁론
5장을 차지한 거장은 정조다. 그는 익히 알려진바 호학 군주로서 스스로 군사(君師)를 자부했다. 그는 물러설 곳이 전무했던 현실을 버티며 유학의 예교와 민본의 실현으로 전진하고자 했다. 저자는 “정조는 주자학을 넘어서기보다, 주자학 위에 더 단단히 서는 길을 택했다. 그의 프로젝트를 ‘주자학의 비판적 복고’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조는 서학의 도전과 속학의 패퇴에 뭉그러진 주자학을 혁신을 통해 복고하려 했다. 이 기획은 공자의 복고에 비견할 만한 것”이라 말하며, 정조의 사유에 비추어 오늘날 인문학 위기의 본질을 읽어낸다. “정조는 학문과 현실 사이에 있어야 할 긴장을 아프게 들이댄다. (…) 우리도 지금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하고 있거나, 권력을 위해 학문을 할 뿐, 나를 가다듬고 남을 이롭게 하는 ‘현실적 학문’에는 소홀하지 않은가. 인문학의 위기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자라난 것이다.”
6장은 18세기 조선 유학을 대표하는 거물, 다산을 중심으로 주자학과 서학의 분리 양상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먼저 유교와 서학의 사상적 유사성을 지적하고, 다산이 주자학을 배격하고 공맹 원시 유학으로 회귀한 이유를 설명한다. 다산의 사유가 갖는 사상적 복합성과 중층성, 그리고 수많은 오해와 질곡 앞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산은 하나의 이름표에 갇히지 않고, 단선적 정위를 넘어서 있다. 단순한 사실에서 복합적 사유에 이르기까지 평면적 이름은 입체인 실상을 전해줄 수 없다. 다산의 사상은 활간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그를 어느 편으로 끌어들일 것인지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그의 모색과 실험을 통해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모색하고, 상호 인정과 화해 위에 새로운 종교를 기획해보는 전진적 자세가 필요하다.”
7장에서는 18세기 ‘실학’의 대두와 이학(理學)의 위기를 돌아본다. “나는 실학의 진정한 가치는, 다들 놀라겠지만, 주자학과 더불어 ‘근대에 대한 비판적 거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실학이 주자학과 완전히 단절된 사유 체계가 아니라고 못 박으며 또한 실학자들은 근대를 의식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저 “주자학과 그것의 구현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학은 주자학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주자학의 전면적 부정이 아니라 비판적 수정의 역사적 과정이었다. 실학은 역사적 실제에서 주자학의 수용과 배제, 강고와 해체가 동시에 진행된 결과이다.”
19세기 도학의 수호자들
8장은 한말, 유학의 현실 대응 양상을 살피는 글이다. 논의의 중심인물은 “한말의 거유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유림의 중망을 짊어진 거인이었으며, 아울러 주자학의 문제를 결국시킨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눈을 감고 자정(自靖)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비겁자 아니면 파렴치의 오욕을 덮어”쓴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이다. 저자는 다시 한번 주기-주리의 프레임워크를 통해 간재의 삶의 궤적이 자정의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성을 조선 유학 논쟁의 흐름 속에서 과학적으로 증명해낸다.
20세기 지구 공동체를 향한 꿈
마지막 9장은 혜강 최한기에게 바쳐진다. “19세기는 불안과 동요의 시대였다. 유교적 전통의 견고성이 도전받고 있던 시대, 실학자들은 이 집을 버티고 고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 가운데 전통의 유교 문화가 근본적 변화를 겪으리라고 판단한 사람은 없었다. (…) 단 한 사람 혜강 최한기만이 동서양의 교섭이 몰고 올 변화의 심원한 의미를 예감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 저자는 기학(氣學)을 중심으로 하는 혜강의 사유의 혁신성과 그것이 갖는 미래 전망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되새겨봄으로써, 혜강에 이르러 비로소 “유교의 도덕규범과 실학의 경세치용, 그리고 서구의 실용과학은 동등한 자격과 가치를 갖는”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
이 책은 ‘거장들’을 지성사나 사상사의 맥락에서 계보학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그 철학적 수준과 성취가 곧 ‘조선 유학’ 전체를 대변할 만한 인물들의 사유와 언어, 바로 그 핵심을 향해 펜 끝을 겨누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살아 있음을 힘주어 역설한다. 유학의 현재와 미래적 가치의 발굴과 창출에 경주하며 유려하고 개성 넘치는 글쓰기로 우리 철학계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한형조 교수. 이 책은 그의 조선 유학 공부 15년, 그 뜻 깊은 도정의 장중한 성과이다.
조선 유학은 지금은 낯선, 의미에의 모험, 그 도전의 기록이다. 무성한 소문과 이런저런 억측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이해보다 비평에 입빠른 전언들에 질려, 직접 무릎 곁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 지 오래되었다.
이 책은 조선 유학사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을 망라하지 않았고, 학연과 가문의 자세한 계보도 따지지 않았다. 교과서나 백과사전처럼 정리된 지식의 통조림을 찾는 사람은 실망할 것이 틀림없다.
나는 거두절미, 조선 유학의 최고수들의 문을 두드려, 그들의 핵심 아이디어 하나에 집중했다. 그들이 익숙하게 던지는 그 수수께끼 같은 말의 ‘기본 의미’는 무엇일까, 그 심층과 맥락, 그리고 전망이 무엇인지를 캐묻고 또 기록했다. ―머리말 중에서
▷ 2008년 10월 2일 발행
▷ 978-89-546-0669-1 03150
▷ 140*195 | 432쪽 | 22,000원
▷ 책임편집: 오경철(031-955-2656, missbaker@munhak.com)
내가 바로 조선의 유학儒學이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이 펼쳐 보이는 사유의 진경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