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엄마 성미정 쓰고 아들 배재경 그리고
시인 엄마와 초등학생 아들이 아웅다웅 함께 만든 동시집
『엄마의 토끼』
신학기를 맞아 독특한 동시집 한 권이 나와 소개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동시집이라야 여러 편의 동시를 한데 묶은 흔하디흔한 책일 텐데 뭐가 특별하냐고 하실 수 있을 텐데요, 일단은 시단에서 21년째 활발히 활동해온 성미정 시인의 첫 동시집이라는 데 의의를 두고요, 둘째로는 시인이 아들의 그림과 자신의 동시를 공들여 그러모았다는 것에 그 특이점을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재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의 아들은 올 초 초등학교를 졸업했고요, 이번 동시집을 채운 재경이의 그림들은 아이가 손에 색연필을 쥐기 시작했을 때부터 모아온 것들 중에서 선별을 했습니다. 물론 동시의 주인인 엄마가 그림의 주인인 아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았다지요. 재경이는 꽤 까다로운 녀석이기도 하거든요.
편집자이기는 하나 시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 동시만큼 쓰기 어려운 장르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을 종종 합니다. 어른인 우리 모두 자라면서 순수성을 잃은 지 오래고 이제 와 어린이인 척해봤자 들킬 게 빤한데다 어린이인 양 흉내만 내봤자 유치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어린이 되기. 그러나 가끔 동시를 읽다보면 간혹 그런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바보처럼 순진하고 바보처럼 착하며 바보처럼 셈이 없는 순정한 이들 말이죠. 그런 무구함을 배우기 위해 동시집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마음을 다져먹게도 되는데요, 이번에 선보이는 동시집 『엄마의 토끼』를 만들면서는 좀 다른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자유로움이랄까요, 스스로 자 말미암을 유의 그 자유를 어릴 적부터 우리는 얼마나 누리고 살았는가 하는 깊은 되짚음 같은 거랄까요. 동시가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동시가 말씀으로 자리잡기 위해 쓰일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성미정 시인의 동시는 우리가 얼마나 단단한 억압 속에 어른이 되어버렸는지, 호두껍데기 같은 고정관념이 우리들 저마다의 통통 튀는 상상력을 얼마나 바람 빠지게 만들었는지 여실히 증명을 해줍니다. 물론 특유의 동심 어린 사유들로 유명했던 시인의 시들로 유추할 수 있거니와 그 타고남이 남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 모두가 어린이인 적 있었으니 저마다 놓친 무엇이 있지 않을까 뒤늦은 무릎 치기를 해보게도 된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우리 모두 이런 궁금증은 다 있었잖아요.
문제지 풀 때마다
곁에 앉아 있는
엄마 얼굴을 살피는
내게
엄마는
이 녀석아
답이 네 머릿속에 있지
엄마 얼굴에 써 있냐
핀잔을 주지만
엄마 표정만 보면
대번에 나는 안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답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문제지 풀 때마다」 전문
친구들한테 개새끼라고 했다가
선생님께 혼쭐난 다음부터
민이는 선생님 몰래
친구들 귀에 대고
개새끼라고 속삭였어
내 귀에도 개새끼를 넣어주었어
귓속에 강아지가 사니까
귀지 파도 귀가 간질간질
참다 참다
결국 입 밖으로 내보냈어
민이가 내 귓속에 넣어준
강아지 한 마리
엄마한테 야단맞았지만
아! 속시원해
이제는 귀도 입도 간지럽지 않겠지
-「개새끼」 전문
동시 쓰는 엄마 그림 그리는 아들, 어떻게 눈높이를 맞췄을까요?
일단은 내비둡니다! 성심껏 놀아줍니다! 순간을 기억합니다! 평생이 친구입니다!
총 3부로 나누어 63편의 시가 실려 있는 이번 동시집은 읽는 맛만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재경이의 그림이 군데군데 섞여 있는 연유인데요, 재경이는 그 흔한 미술학원 한번 가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일곱 살 때부터 열세 살 인생을 사는 지금까지 치프 셰프가 꿈이라나요. 1994년 『현대시학』을 통해 데뷔한 성미정 시인처럼 재경이 아빠도 1994년 『현대시사상』을 통해 데뷔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쓰기를 접고 빈티지 팝업북 마니아의 기질을 발휘하여 10년 전 신사동 가로수길에 장난감 및 빈티지북을 파는 가게를 열었지요. 신사동이 지금처럼 핫해지기 훨씬 전에 ‘마이 페이버릿’(My Favorite)이라는 이름으로 디자인 및 패션계 종사자들에게는 명소로 그 입소문이 자자해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는데요, 그림 인형 책 도자기 장난감 등 빈티지 제품들에 안목을 더해 파는 그들 부부의 취향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가히 짐작을 해보게도 됩니다. 다섯 살짜리 재경이를 처음 봤을 때 녀석이 아빠에게 말차를 타달라고 해 막사발에 마시던 모습이 생생한데요, 그건 또래 아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었던 문화적인 누림, 일종의 향유였어요. 신선 그 자체기도 했지요.
그래서일까요. 재경이의 그림에는 장벽이 없어요. 막힘이 없어요. 계산이 없어요. 그냥 아이다움만 있어요. 아이라면 모든 아이들이 왜 아니 그럴까 하겠지만 눈치를 보는 아이는 달라요. 학원에 다니는 아이는 달라요. 칭찬을 받으려는 아이는 달라요. 아이가 아이다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히 내버려두는 방목 속에 안 보이는 울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말하자면 엄마는 아이의 책가방이 아니라 아이의 책상 같은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떠올림 같은 거요.
성미정 시인의 동시는 읽는 데 아무런 부담이 없어요. 무엇보다 잘못했습니다, 더 잘하겠습니다, 같은 다짐과 반성을 유도하지도 않아요. 나도 그랬는데 나도 저랬는데 공감하고 다음 페이지로 훌쩍 넘어가게끔 읽히는 것이 전부라지요. 그게 다지 뭘 더 바랄 게 있느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할 뿐이라지요. 그래서 누구든 써보게 만드는 만만함을 무기로 내세우기도 하지요. 특히나 아이와의 개성 넘치는 추억거리를 만든다 할 때 이런 ‘소용’은 그리 ‘무용’한 것이 아니겠다 싶어요. 혹시 댁네에 아이가 무조건 잘 쓴 글, 무조건 잘 그린 그림만 모아두고 계신 건 아닌지요.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진짜 알고 싶다면 아이가 쓰고 그린 모든 것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내 아이를 잘 키우는 법은 내 아이 안에 그 팁이 다 들어 있다 싶다는 오늘의 결론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