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 최고의 문인들이 남긴 절창의 향연
이제현의 「산중의 눈 내리는 밤山中雪夜」에서 정지상의 「송인送人」까지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의 15번째 책 『고려 한시 선집』이 출간되었다. 시 선집으로는 전집의 11번째 책 『여성 한시 선집』에 이어 두번째다. 이 책에는 이인로, 이제현, 김부식, 정지상 등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인들의 한시를 선발하여 엮었다. 독자들이 고려 한시의 다양한 개성과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체제와 격식, 제재와 주제를 폭넓게 고려하여 시를 선별했다. 형식별로는 오언고시 15수, 칠언고시 10수, 오언율시 13수, 오언배율 1수, 칠언율시 13수, 오언절구 18수, 칠언절구 29수로, 도합 99수이다. “고려 광종(光宗)·현종(顯宗) 이래로 문사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왔는데, 사부(詞賦)와 사륙(四六)의 농섬(穠纖)함과 부려(富麗)함은 후세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니다”(『동인시화東人詩話』)라는 서거정의 칭송에서도 알 수 있듯, 고려 문인들이 남긴 운문은 아름다움과 정교함과 웅장함과 화려함을 두루 갖추어 후대의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은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고려 한시의 유구한 전통과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정교함과 웅장함과 화려함을 두루 갖춘 고려 한시
성리학 이념 아래 사상의 단속과 봉건 예교의 구속을 받았던 조선 전기 문인지식층은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점차 우활(迂闊)과 문약(文弱)으로 흘렀고, 윤리 도덕의 간섭 때문에 시 창작에서도 그들은 수사적 아름다움보다는 주제와 사상에 치중하여 시문의 기운 또한 자연스레 위축되었다. 이에 반해 여말 이전까지 고려의 사상계는 유교, 불교, 도교를 상호 보완 관계로 받아들임으로써 교조적인 이념의 지배를 배제했고, 문인지식층 또한 사상에 예속되는 일 없이 문학의 독립적 지위와 가치를 보장받으며 유미주의적인 창작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다. 시문에서도 당연히 수사에 힘써 후대에 말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안팎으로 개방적이고 상무적(尙武的)인 사회 환경 또한 문인지식층으로 하여금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을 갖도록 했으며, 이는 그들의 시문에도 활달한 기운을 더해주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시기상으로 더 오래되었음에도 현대 독자들에게는 조선보다 고려 쪽의 한시가 더 잘 읽히는 면이 없지 않다. 다만 고려 한시는 당시 문집으로 편찬되지 못하거나 간행되었다 해도 전란 등으로 유실되어 현재 전하는 자료가 매우 적다. 고려 전기와 중기를 통틀어 온전한 양태로 전하는 문집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뿐이다(이규보의 시는 한국고전문학전집에서 별도의 작품집이 기획된 까닭에 이 책에서는 제외되었다). 김부식, 정지상, 김극기, 이인로와 같이 고려를 대표하는 걸출한 문인들의 문학세계를 총체적으로 접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문학사의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책에 실린 고려 한시에 대하여
이 책은 총 7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의 제재와 내용을 고려하여 주제별로 부를 나누었다.
1부는 ‘산수와 경치를 그리다’라는 이름으로 엮었다. 자연 풍경과 시인의 생각이나 감정이 융화된 정경교융(情景交融)의 시가 주를 이룬다. 특히 절집을 찾아 지은 시가 많다. 산중의 사찰은 수려한 전망과 그윽한 환경 덕분에 일찍부터 산수시의 요람이 되어왔다. 김부식의 「감로사에서 혜원의 시에 차운하다」와 정지상의 「변산 소래사에 쓰다」는 경물을 묘사하는 한편 불교의 이치와 이미지를 담아낸 전형적인 사찰제영시다. 한편 김부식의 「대흥사에서 자규가 우는 소리를 듣고」는 고적한 절에서 느낀 감정을 읊었고, 이제현의 명편 「산중의 눈 내리는 밤」은 자연 합일의 정신 경계를 그려냈다. 정포의 「강구」와 「혜음원 가는 도중」, 정도전의 「산속 김거사의 거처를 방문하고」, 이인로의 「지리산에 노닐고」, 채홍철의 「복주 영호루」 등은 여행을 하면서, 혹은 명승지를 유람하고 지은 시다. 경물을 대하는 시각과 묘사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대체로 풍부한 자연미와 산뜻한 정취를 담아낸 작품이 많다. 고조기의 「산장의 비 내리는 밤」과 정몽주의 「춘흥」은 밤새 내린 비를 소재로 삼았다. 전자는 빗기운에 가라앉은 아침의 분위기를 풍경화로 그려냈고, 후자는 봄비를 맞으며 자라는 어린 풀로써 생명과 자연을 찬미하고 있다.
2부에는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다’라는 제목처럼 시골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풍경을 노래한 시를 모았다. 유람과 완상의 대상이기 이전에 산수자연은 일상의 생활공간이다. 초야에서 처사로서의 삶을 사는 시인은 절로 자연풍광과 시골생활이 어우러진 시를 쓰기 마련이다. 한종유의 「한양의 시골집」, 길재의 「즉사」와 「한가롭게 살며」는 평온하게 숨어 사는 삶이 주는 여유를 시골의 풍경과 한데 섞어놓아 한가롭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윤여형의 「촌에 살다」와 이첨의 「자적」은 상대적으로 전원시의 풍격이 선명하다. 한편 김구용의 「산에 살다」나 길재의 「금오산 대혈사의 광한루」는 산수자연을 인격 함양의 배움터로 삼으려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성리학이 확산되며 도덕 수양의 문제가 중시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안축의 「물 위로 놓인 나무다리」, 설장수의 「작은 고기잡이배」, 이색의 「교동」 등은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의 질박하고 활기 넘치는 어로활동, 석양 무렵 어촌의 풍경 등을 그려냄으로써 짙은 향토색과 건강한 생활미를 발산한다.
3부는 ‘나의 처지를 돌아보다’라는 제목 아래 시인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감회를 노래한 시를 소개한다. 봉건시대의 문인지식층은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신분과 생계의 유지를 위해서도 관직 진출에 갖은 애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 응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무신의 난으로 집안이 풍비박산된 임춘이 유랑하며 지은 「친구에게 부치다, 진퇴격」, 늙도록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신세를 한탄한 오세재의 「병든 눈」, 급제를 하고도 관직을 얻지 못한 데 따른 원망이 담긴 이곡의 「첩박명, 이백의 시운을 사용해 짓다」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김극기의 「고원역」이나 곽예의 「동교마상」은 미관말직에 머무르는 우울한 처지를 노래하며, 정포의 「심양잡시」는 원나라에서 포부를 못 이룬 비탄을 보여준다. 지위가 올라간다 해도 순조로울 수만은 없는 벼슬길이다. 홍간의 「외기러기의 노래」, 백원항의 「흰 실의 노래」, 이달충의 「낙오당감흥」, 정포의 「울주관사 벽에다 쓰다」는 이런저런 이유로 탄핵을 당한 뒤 유배 공간에서 지어진 시들로서 모두 시인의 깊은 좌절감을 담고 있다. 체제와 표현 수법은 제각각이지만 이 시들은 지식인이 출사와 은거 말고는 딱히 선택할 길이 없던 시대의 산물이라 할 만하다.
4부의 제목은 ‘이런저런 인연을 노래하다’이다.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사정이나 정감을 노래한 시를 모았다. 인연은 희로애락을 자극하기 마련으로, 문학예술의 좋은 제재가 되어 참된 시로 태어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진부하면서도 정서적으로 울림이 큰 주제는 역시 이별이다. 정지상이 남긴 「송인」 두 수는 특출한 수법으로 애절한 석별의 정을 극진히 풀어놓는다. “비 갠 긴 둑에 풀빛 짙푸르거늘(雨歇長堤草色多)”로 시작하는 칠언절구는 예부터 절창 중의 절창으로 손꼽힌다. 이인복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는 유숙에게 지어준 「사암 유숙을 보내며」는 의례적인 송시(送詩)의 전형이지만, 격식을 잘 갖춘데다 정감의 토로가 진솔하다. 곽여의 「청평 이거사에게 주다」와 한수의 「9월 15일, 목은 선생을 맞이해 누대에 올라 달을 완상하며」는 사대부 사이의 우의(友誼)를 노래한다. 전자는 늘 변함없이 고아한 정신의 교류를, 후자는 막역한 유대 관계에 기댄 풍류를 다루었는데, 모두 사대부의 격조 있는 사귐을 보여준다.
5부에는 ‘세상사를 풍자하며 바라보다’라는 제목 아래 날카로운 풍자정신이 담긴 시를 모았다. 문제를 과장하여 표현하거나 완곡하게 비유하고 해학을 섞어 조소하는 등 수법은 일정하지 않지만 주지는 대체로 분명하고 엄중하다. 이숭인의 「길 가는 어려움」과 정추의 「탐욕스런 아전, 『진간재집』의 운을 쓴 박헌납의 시에 차운하다」는 권력에 빌붙어 패악을 일삼으며 사회를 어지럽히는 무리를 풍자한다. 전자는 온갖 횡포를 부리는 타락한 특권세력에 대한 불만의식을 표출하고, 후자는 가렴주구를 자행하는 아전을 질타한다. 곽예의 「매가 달아나다」, 최자의 「남쪽 제방의 버들, 최교감의 시에 차운하다」, 이승휴의 「구름」은 간사하고 교활한 정치적인 인물을 야유한다. 한편 이곡의 「도중에 비를 피하다 느낀 바 있어」는 부귀권세의 허망함을 읊조리고, 최해의 「빗속의 연」은 재물에 대한 탐욕을 경계한다.
6부는 ‘시국과 백성의 삶을 생각하다’라는 제목 아래 사회시·전란시·애민시·농민시를 소개한다. 대부분 우국우민(憂國憂民)의 정신을 담은 시라 주제가 비교적 심각하다. 정추의 「강릉 동루에서 달을 마주하여 느낀 바 있어」와 「정주 가는 도중에」는 여진족의 침입과 관련하여 시국을 염려한 시로서, 전자는 충일한 애국주의 정서를 분출하며 후자는 황량하고 구슬픈 변새시(邊塞詩)의 풍격을 이루어 각별하다. 홍건적의 1차 침입을 다룬 김구용의 「기해년의 홍건적」은 위기에 굴복하지 않는 패기를 담아 미감이 담대하고 굳세다. 정이오의 「무풍현 벽 위의 시운에 차운하여」와 원천석의 「시골집」은 망국의 조짐을 간파한 시로서, 몰락해가는 향촌사회의 단면을 그려냄으로써 여말의 사회 현실을 애처롭게 그려냈다. 한편 전녹생의 「경상도에 안찰하러 가는 부령 정우를 보내며」는 송시(送詩)의 형식에 민생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았으며, 김극기의 「전가사시」는 전원시임에도 애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농민의 힘겨운 삶을 사실적으로 노래한다. 윤여형의 「도톨밤의 노래」는 농민의 목소리를 빌려 사회 모순으로 인한 고통을 구체적으로 폭로하게 하는 한편 지배층에 대한 거센 항변을 쏟아낸다.
마지막으로 7부에는 ‘역사 사건과 인물을 회고하다’라는 제목으로 영사시(詠史詩) 혹은 회고시에 속하는 작품을 모았다. 김부식의 「결기궁」은 현재의 시국을 풍유(諷諭)하려는 의도로 역사를 성찰한 시다. 서경천도 불가를 주장하기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로 나라를 잃은 수(隋) 양제(煬帝)의 실정을 지적하며 역사의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곽예의 「바다 건너 동정에 나선 것에 유감스러워」와 이달충의 「신돈」은 자신의 시대에 발생한 중대한 사건과 중요 인물을 다뤘다. 전자는 여원연합군에 의해 전개된 동정에 대해 살피며 커다란 인명 피해를 부른 비극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따져 묻고, 후자는 악랄한 신돈의 죄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후대의 감계(鑑戒)로 삼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역사를 제재로 한 시 가운데는 고적지를 방문하고 창작한 회고시가 여럿 있다. 박인량의 「오자서의 사당」은 춘추시대 초나라의 걸출한 정치가 오자서의 사당을 지나며 그를 조문하기 위해 지었다. 이색의 「정관의 노래, 유림관에서 짓다」는 유림관(楡林關)을 지나며 당(唐) 태종(太宗)의 정치적 득실을 생각하며 지은 것이고, 그의 절창 「부벽루」는 대동강변 부벽루를 돌아보고 고구려 동명성왕을 회고하며 민족적 기개를 노래한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