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있다, 있다, 있다
휴대전화 액정 뒤에 숨어서 사랑을 고백하고, 또 이별을 고하기도 하는 시대. 오래 인내하며 깊게 배려하고 진정으로 서로의 단점마저 보듬는 참다운 사랑은 이제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요즘의 사랑은 성급하고 진득하지 못하다. 진짜 사랑인지 의도적 접근인지 의심하기도 하고, 나와 상대의 마음을 견주며 손해보지 않으려 계산기를 두드리기도 한다. ‘썸’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사랑인 듯 사랑 아닌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기도 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사랑을 믿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사랑을 믿지 못하는 시대’까지는 너무했다 하는 사람들을 위해 슬그머니 한 발을 빼고, 사랑이 참 가볍고 간단해지고 있다는 정도로 정정해보면 어떨까.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급박하게 돌아갈수록 사람의 마음에도 변덕이 찾아오고, 쉽게 싫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우리 스스로도 이런 각박한 세상에 염증이 나지는 않았을까. 뉴스만 켜면 끔직한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이 시대, 매일매일 넘쳐나는 비극을 견뎌내는 우리들에게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감동의 습관』 『명작에게 길을 묻다』 등 그동안 다양한 저작을 통해 생활 속 따뜻한 이야기를 발견해 들려주고 한줄기 희망을 놓지 않게 해주었던 송정림 작가. 이번에는, 문학작품 속에서 사랑과 삶의 면면을 포착한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출간했다. 작가가 이 책에서 선정한 문학작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작은 물론이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들까지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 사랑은 있다, 있다, 있다!
소설 속에서 포착한 사랑의 35가지 장면들
이 책은 지난 2014년 7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문학동네 출판그룹 공식 카페(cafe.naver.com/mhdn)에서 주1회 연재되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꾸려졌다. 제목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도 당시의 연재명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단행본으로 엮는 과정에서 연재 분량 가운데 1/3 정도는 덜어내고, 새로운 작품을 채워넣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오 헨리의 「사랑의 묘약」, 펄 S. 벅의 「매혹」 등 오랜 세월 꾸준하게 사랑받는 고전에서부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파울로 코엘료의 『11분』 등 비교적 현대에 발표된 해외소설까지, 그리고 전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부터 박범신의 『은교』, 전경린의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등에 이르는 국내소설까지 두루 아우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그 문학성만큼은 인정받은, 바실리 악쇼노프의 「달로 가는 도중에」,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 문순태의 『정읍사』 등을 포함하여,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원작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버트 제임스 월러)와 『내일의 기억』(오기와라 히로시) 그리고 『잉글리시 페이션트』(마이클 온다체)까지 총 35편의 장단편을 다루고 있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그가 와주기만을 기다리는 한 여자의 일기 같은 소설 『단순한 열정』(아니 에르노)을 통해 도덕적 관념도 내다버릴 만큼 뜨겁고 아프지만 열정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무려 51년 9개월 동안 한결같이 기다려온 남자의 순애보를 그린 『콜레라 시대의 사랑』(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을 통해 사랑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요즘 시대에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던진다.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각각 쓰인 『냉정과 열정 사이』(에쿠니 가오리․츠지 히토나리)를 다시 읽으면서는 헤어졌지만 끝내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애잔한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러브 스토리』(에릭 시걸)에서는 현실적인 장벽을 모두 뛰어넘어 진정한 사랑으로 결혼까지 이루어낸 주인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더불어, 암에 걸린 남편의 마지막을 보살피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은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박완서)에서는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져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권태기가 찾아온 부부가 그것을 벗어나보려다가 오히려 작은 오해로 위기를 맞는 소설 『낭만파 남편의 편지』(안정효)를 통해 사랑도 화초를 가꾸듯 꾸준히 돌보아 지켜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되새긴다.
지금은 다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이렇듯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 극적인 장치를 위해 다소 과장하거나 극대화하기도 하겠지만, 우리네 삶을 토대로 모든 사건과 스토리는 이루어진다. 우리가 인생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문학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문학 속에 등장하는 악인(惡人)의 모습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기도 한다. 그렇게 문학은 우리에게 웃음과 감동, 눈물과 후회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주며, 삶의 교훈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서 사랑에 대해 다소 냉소적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고 꿈꾼다. 누구나 한 번쯤은 로맨틱한 연애소설 혹은 뜨겁고 정열적인 사랑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어한다. 그만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사랑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며, 없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다. 시절이 각박하고 사는 게 팍팍할수록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주는 온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더러는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분명히 우리를 살게 한다.
이제 다시, 사랑을 이야기할 때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제1의 가치, 그것은 발전이나 승리가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순수 그 자체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문학작품과 송정림 작가가 그 속에서 포착해낸 사랑의 장면을 통해, 우리도 다시, 사랑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사랑이 아니면 또 무엇인가.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