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따라 죽을 거야.”
그렇게 되뇌니, 세상처럼 마음도 고요해졌다.
햇빛 덜 받는 사람들을 응시하는 정직한 눈길과
그 주위의 그늘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엄정한 태도,
이 삶이 나빠지길 멈추지 않는 한 김이설의 소설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열세 살」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올해로 등단 10년을 맞는 소설가 김이설의 두번째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가 출간되었다. 2010년에 펴낸 첫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이후 꼬박 6년 만이다. 소설집으로는 더딘 발걸음이지만, 그사이 작가는 경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그리고 현재, 격월간 소설 잡지 『Axt』에 장편 『어쩌면 아주 다른 사람』을 연재하고 있다) 등을 잇따라 출간하며, ‘김이설’이라는 단어에 단단한 무늬를 새겨넣었다. 그 무늬란 폭력이 우글거리는 밑바닥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 그 세계의 진상을 선명히 감각하게 하는, 그리하여 그 세계에서 한 발 떨어진 채 지켜온 우리의 평온함이라는 게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되물음으로써 각인된 것이었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집념 혹은 치열함을 느끼게 한다”(소설가 은희경)라는 평을 받으며 제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부고」와 2016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으로 선정된 「빈집」을 포함해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을 통해, 김이설은 그 벗어날 길 없는 세계에서 삶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삶도 과연 지켜나갈 만한 것인가, 라는 둔중하고도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하여 ‘오늘처럼 고요히’라는 제목은 수록된 소설들의 전체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체득한 인물들이 내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바람이 된다.
삶에 끊임없이 맞으며 한없이 뒤로 밀려나다
어느 순간 등뒤로 문이 열렸을 때,
그것은 출구일까, 아니면 더 깊은 바닥일까
소설집 가장 처음에 자리한 「미끼」는 김이설 스스로 “그동안 보여준 소설의 정점 같은, 더이상 비슷한 작품을 쓸 수 없도록 여한 없이 쏟아부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폭력이 대물림되는 과정을 야성적으로 구현해낸 작품이다. 아버지가 창고에 가둬놓고 물고기를 낚아채듯 함부로 짓이기던 여자를 ‘엄마’라 부르던 ‘나’가 어느 순간 또다른 여자를 끌고 와 아버지보다 더 무자비한 방식으로 여자를 창고에 던져넣을 때, 우리는 폭력의 연쇄 속에서 증폭되는 것은 오로지 더 큰 폭력밖에 없다는 선뜩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악몽보다 더 지독한 현실을 그려낸 「흉몽」을 통해서도 차갑게 전해져온다. 남편의 실직 후 불어난 빚을 갚고자 모텔에서 밤낮없이 청소 일을 하며 버텨가던 ‘나’에게 어느 날 남편이 찾아온다. 구취를 풍기는 돈가방 하나를 들고서. 출처가 미심쩍은 돈가방도, 횡설수설하는 남편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참담한 삶이나마 근근이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결말일 것이다. 그래야만 적당한 불편함을 잠시 느끼고 우리 역시 원래의 세계로 안전하게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비참함도 손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듯이, 김이설은 이 정도 선에서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 위를 가차 없이 지나쳐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우리에게 던져놓는다.
그리고 그 실타래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비참한 상황의 연속으로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때, 그 선택의 가장 처음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느냐고. 일찍 아버지를 잃고 트럭 운전 일을 하는 어머니와 살아온 딸이 어머니의 직업을 이유로 사귀던 남자와 헤어져야 할 때, 자신에게 가해진 그 불운의 원인을 어머니에게만 두면 되는 것일까(「폭염」), 남편의 자살과 그로 인한 시어머니의 치매,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의 전부가 되는 게 옳은 것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라는 되뇌임 속에서 어린 두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나’의 선택에 대해 우리는 쉽게 단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죽고 죽임이 어떤 해결책도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아름다운 것들」).
이 작품들을 따라가다보면,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서로를 옭아매는 것 외에 서로에게 어떤 의미도 되어주지 못한다는 작가의 냉혹한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성폭행-친모의 죽음-애인과의 이별-중절 수술 등 끊임없이 바닥으로 휘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나’를 위안해주는 사람은 아빠도 오빠도 아닌,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지닌 의붓엄마이며(「부고」),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왔다는 그 자부심 하나로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나’가 잠깐이나마 웃음짓는 순간은 동료들과 함께 시답잖은 농담을 할 때이고(「한파 특보」), 가족 중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한 ‘나’가 연약하나마 어떤 희미한 연결감을 느끼는 대상은 국적도 다르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민호 엄마다(「비밀들」). 우리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이 가족 아닌 타인이라는 것은 엄정한 진단이지만 동시에 폭력이 휩쓸고 난 이후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을 모색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인 희망을 가져다준다.
삶의 한 단면을 잘라 그 단면의 무늬와 결을 잡아채는 것이 소설이라면, 김이설은 지금 가장 어둡고 축축한 단면을 베어와 우리에게 내미는 셈이다. 삶 전체를 놓고 보면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한때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지나치는 것은 삶 전체를 지나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듯, 김이설은 집요하고 엄정하게 그 단면을 파헤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목도하게 되는 그 비정한 세계란, 우리에게는 결코 일어날 리 없다고 안심하며 바라보게 되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 중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세계이다. 어떤 것보다 빠르게 전염되는 ‘위악과 열악의 구취’처럼,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한동안 우리에게는 쉽게 벗어날 길 없는 타인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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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소설 속 인물들을 모두 한자리로 불러들이고 싶다. 그러곤 그들에게 내가 막 끓여온 미역국을 대접하는 것이다. 뜨거운 국물로도 마음이 녹지 않는다면, 그래서 조금 더 바짝 붙어앉아 화톳불이라도 피운다면, 기꺼이 내 소설이 박힌 책들을 찢어 불쏘시개로 쓰겠다. 내 소설을 태워 잠시나마 그들의 몸을 덥힐 수만 있다면, 내 무용한 소설이 가장 유용한 순간이 될 것이다.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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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 타액의 교환이 형편의 교환으로 한 단계 나아가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 ‘이 정도밖에 못 살았다’는 미안함과 ‘그런 것 따지는 사람 아니다’라는 의연함을 주고받는 과정임을 안다. 표면적으론 훈훈한 성품의 교환이지만, 이면에는 ‘사회적 삶의 상처’들이 교환된다. 김이설은 이 상처를 전략으로 읽어내고 계발해내는 사람들, 그러한 그들을 어설프게나마 따라 하는 사람들, 이 잔혹한 현실이 자신도 모르게 이뤄져버린 데 대해 멍한 사람들의 구도를 정밀하게 소묘해낸다. _김신식(감정사회학도, 독립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