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도시의 한 청년이 일을 냈다. 대책 없이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고 길을 나선 것이다. 그것도 윈난雲南 고원지대를 거쳐 티베트 라싸에까지 이르는 대장정이다. 여행을 해본 적도 없고 같이 떠나는 동료도 없는 혈혈단신으로, 심지어 자전거도 제대로 타본 적이 없는 그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이유는 역시 있었다. 이 여행은 그가 여자 친구에게 주는 결혼 선물이었다. 여자 친구와 결혼을 앞둔 청년은 이 힘든 과제를 수행해냄으로써, 그리고 그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 노트를 만들어 예비신부를 감동시키고자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화가는 아니지만 수준급의 그림을 그리는 사내였다. 이렇게 하여 영문도 모른 채 눈물로 말리는 여자 친구에게 걱정 말라며, 잘 다녀오겠다며 길을 나섰다. 물론 이 여행이 일종의 ‘프러포즈’라는 점은 비밀로 해둔 채 말이다. 자, 이제 그의 앞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음만큼은 용기백배하여 기차를 잡아탄 그는 저 멀리 펼쳐진 윈난 고원으로 날아올랐다. 마치 다펑大鵬이라는 그의 이름처럼 대붕이 되어서 말이다.
길 위에서 만난 도반들
“일단 떠나고 보자”라는 마음으로 쿤밍昆明 행 기차에 몸을 실은 그는 정신없이 흔들리는 객실에서 묻어두었던 걱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쿤밍 역에 내리자마자 그는 한 사람을 만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라싸까지 가는 자전거 여행객 야오 씨였다. 둘은 금세 친해졌고 혼자였던 여행이 야오 씨는 물론 그와 합류하기로 한 대여섯 명까지 합쳐서 대군단으로 불어났다. 자전거도 고칠 줄 몰랐던 그에게는 어떤 준비물을 보충해라, 커브길에서는 이렇게 타라, 잠자리는 어떻다 등 여행에 대해 조언해줄 친구들이 생겨났다.
얼하이에서 솽랑까지, 아름다운 풍경들
멀리 창산을 보며 호숫가를 달리며 풍경을 만끽하던 다펑은 불안을 잊고 여행의 행복에 빠져들었다. 마을에 도착하면 지역 음식과 맥주도 마시며 고단을 잠재웠다. 바다와 같이 끝없는 호수에 서서히 날이 저물고 별이 돋아나면, 그 별들은 금세 지구를 향해 가득 쏟아져 내릴 것처럼 엄청난 크기로 자라났다. 새벽녘에 옥상에 올라 조용히 잠든 낯선 타향 마을의 지붕을 보기도 했다. 밤새 떠드는 옆방 손님들,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샤워시설, 절벽 바로 위에 세워져서 심장이 오그라들면서 볼일을 봐야했던 일들로 인해 고생도 했지만, 낯선 것과의 조우는 그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힘든 여정을 이겨낼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거침없는 펜화로 만나는 차마고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저자가 직접 그린 아름다운 펜화들이다. 워낙 티베트 여행객이 많아 사진으로 이 고원지대를 만나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여행의 세부를 디테일하게 그림으로 남겨서 독특한 감흥을 느끼게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특히 초반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달리 목적지가 다가올수록 흥분해서 선의 터치가 과감해지고 대상의 생략도 일어나는 등 시간에 따른 변화를 보는 맛도 있다. 또한 저자가 화가 고흐를 좋아하다보니 그와 비슷한 느낌의 나무와 풍경을 만나보는 것도 신기하다.
여행 내내 함께한 그리운 사람
초반의 아름다운 풍경은 곧 지옥 같은 여정으로 바뀐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오르막길에선 길에 주저앉아 울기도 했고, 급커브 길에서는 동료가 넘어져 다치는 바람에 간이 철렁하기도 했다. 안개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오랜 시간 달릴 때면 축축해진 바지 속 다리는 감각이 없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곳곳에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는 구간이 가득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길과 그 밑을 흐르는 흉포한 강물은 언제 나를 삼킬지 알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저자에게 힘을 북돋워준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여자 친구다. 그는 본문 중간중간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며 이 모든 경험이 나중에 우리 두 사람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엽서 여러 장을 이어 붙여 설산의 전체 모습이 나오게 하고 각 장마다 여자 친구 이름을 한자씩 써서 자신의 건재함을 뽐내기도 했다.
때론 치기도 보이고, 때론 닭살스럽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저자가 마음에 품어내고 펜으로 표현한 이 한 달여의 여행에 동참하는 기분은 정말 특별한 공간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누군가는 이럴지도 모른다. “아, 몰라. 나도 일단 떠나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