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한 생동하는 캐릭터들,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경쾌한 뜀박질
25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보물 같은 아이들의 동심을 동화라는 그릇 안에 담아 온 작가 장주식. 그가 새 동화 『조아미나 안돼미나』를 펴냈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실제로 근무했던 경기도 여주의 하호분교 아이들을 모델로 삼아 탄생했다. 하호분교의 풍경은 도시의 여느 초등학교의 풍경과는 조금 다르다. 전교생이 서른 명 남짓이고 교실이 네 개뿐인 작은 산골 학교에서 아이들은 학교 정원에 풀꽃 심어 가꾸기, 개울에서 뱃놀이하기, 텃밭에 농작물 심고 수확하기, 눈밭을 걸어 강에 나가기 등의 체험활동으로 사계절 내내 자연의 품에 맨몸으로 뛰어든다. 아이들은 자연과 어울리며 자연의 삶을 배운다. 『조아미나 안돼미나』 속에는 사이좋은 딱새 부부 휘와 호,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재미있는 토끼 뒤뚱이, 까칠한 매력의 숲속 구렁이, 반달눈으로 웃고 다니는 길고양이 반달 등 다양한 생명들이 자신의 개성을 뽐내며 생동한다. 작가는 ‘좋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열 살 아이 ‘조아미나’를 중심으로, 6학년이지만 동생들과 잘 어울리고 나서기도 잘하는 개구쟁이 오정구, 어린싹 하나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주무관 ‘그냥아저씨’ 등 여러 인물들이 자연과 한데 어울리는 모습을 활기차게 펼쳐 보인다. 그들의 뜀박질을 따라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여정에서 독자들은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할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위기의 딱새 가족 이사 프로젝트,
더 먼 곳으로의 비행을 위해!
이야기는 조아미나네 학교 뒷산 숲에 두 마리 딱새가 찾아들면서 시작된다. 봄날의 숲속에서 딱새 휘와 호는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둘의 앞길은 평탄치 않다. 사방으로 뿌리를 뻗은 멋진 오동나무 둥치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그만 개구쟁이 오정구의 눈에 띄고 말았다. 모둠 정원을 꾸밀 재료를 구하러 온 정구와 아이들의 손에 애써 지은 둥지는 엉망이 되었다. 딱새 부부는 다시 학교 창고 안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지만 길고양이 반달의 습격에 둥지는 물론 알마저 잃고 만다. 더욱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학교 정문 옆 배전반 속에 숨어든 호와 휘는 아이들이 하교한 후부터 등교 전까지, 사람이 없는 시간에만 활동하며 집을 짓고 무사히 알을 낳았다. 새끼들도 부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출입구는 배전반 밑으로 난 구멍뿐이어서 새끼들이 첫 비행부터 어려운 곡선 비행을 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오정구에게 둥지를 들키고 말았다. 딱새 가족은 무사히 이소를 마치고, 보다 먼 곳으로 비행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을 지키려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
『조아미나 안돼미나』의 주인공 조아미나는 딱새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북을 칠 때 아이들이 손가락 아파 죽겠다고 하면 ‘다리가 안 아파서 좋아.’ 하고, 탈춤을 출 때 아이들이 다리 아파 죽겠다고 하면 ‘손가락은 안 아프니까 좋아.’라며, 뭐든 “좋아, 좋아.” 하던 ‘조아미나’였지만 딱새들 문제라면 태도가 달라졌다. 팔짱을 딱 끼고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안 돼!”
딱새 부부가 오동나무 둥치에 집 지은 것을 모르는 정구가 나무를 옮기려 할 때, 아빠가 어린 딱새의 비행을 도우려 배전반 문을 열어 주자고 했을 때, 숲의 구렁이가 어린 딱새를 먹었을 때 조아미나는 어김없이 ‘안 돼’라고 외쳤다. 조아미나의 당찬 외침이 만들어 내는 것은 옳고 그름의 도식적 구분이 아닌 물음표들이다.
“도대체 뭐가 안 된다는 거야?”
“난, 그냥,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은데…… 아닌가?”
이러한 물음표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잠시 붙잡고 다른 생명에 대한 인간의 개입 적정성, 생태의 순환과 같은 의미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마련한다. 인물 개개의 가슴속에 생성된 물음표들은 체화의 시간을 거쳐 딱새 가족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응원으로 피어난다. 딱새 가족에게 관심을 두지 않던 아이도, 오히려 괴롭히던 아이도 하나둘 딱새 둥지 곁에 모여 딱새들의 안전한 이소를 위해 노래 불러 주는 장면은 사랑스럽고 뭉클하다.
‘나’를 지키며 ‘너’도 지킬 수 있는
건강한 아이들의 이야기
『조아미나 안돼미나』의 큰 미덕은 다양한 존재가 그들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는다는 데 있다. 자신의 의견을 기죽지 않고 꿋꿋이 외치는 아이부터 곤충이나 동물을 유희 대상으로 삼는 아이, 타자에 대해 흥미는 가지지만 깊은 관심은 가질 줄 모르는 아이 등 가지고 있는 특성이 제각각인 아이들의 모습이 에피소드마다 등장한다. 하지만 작가는 아이들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런가 하면 저런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장난스러운 모습 속에서 따듯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딱새 가족이나 곤충을 괴롭히는 아이로만 보이던 정구가 막내 딱새의 죽음으로 상심한 조아미나에게 “죽은 새는 죽은 새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서툰 어른 흉내로 위로를 건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아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린 딱새 두 마리를 삼킨 구렁이가 조아미나에게 비난을 들을 때도, 작가는 구렁이의 입을 통해 자연의 순환에 대해 허를 찌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넌 딱새를 안 좋아하는 모양이지. 내가 먹었다고 딱새가 없어지는 건 아냐. 딱새는 내 몸에 들어와서 내 몸의 일부가 되는 거지. 너는 어때? 조아미나, 그동안 니가 먹은 것들을 생각해 봐. 엄청나게 많지?” -81p
토끼 뒤뚱이와 족제비의 관계도 흥미롭다. 뒤뚱이는 조아미나네 학교 사육장에서 기르던 토끼였는데 배고픈 족제비의 공격에 다쳐 죽고 말았다. 그러나 뒤뚱이는 자신을 죽인 족제비가 진심 어린 애도의 노래를 불러 주는 덕분에 되살아난다.
부딪히면 부딪히는 대로 함께 있는 그들의 모습은 건강하고 눈부시다. 다양한 빛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 마찰하며 더 큰 빛을 만들어 가는 이 이야기는 ‘나’를 지키며 ‘너’도 지킬 수 있는 지혜와 타자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조아미나와 아이들이 작은 산골 학교에서 겪는 이야기는 담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문장과 맑은 그림으로 재현되었다. 막 잎눈을 틔우기 시작한 계절의 풍경과 당장에라도 책 속에서 튀어나와 노래하고 춤출 것만 같은 개성 만점 동물들, 큰소리로 다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맞잡고 둥그렇게 모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고운 색채 안에 깃들어 우리의 마음을 콩콩 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