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대 시인의 신작 시집을 펴낸다. 문학동네시인선의 85번째 자리이기도 한『그녀에서 영원까지』는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으로 총 43편의 시가 담겨 있는데, 총 200페이지에 달하는 이번 시집의 다채로움에 대해서는 참으로 얘깃거리가 많음을 먼저 고하는 바이다. 물론 그 중심에 시를 물고 늘어지는 시인의 집요한 집중력이 팽이 꼭지처럼 그 축을 콕 찍고 있다는 걸 밝히고 시작해야 일견 수월하겠다. 그 한 점에서 파생되어가는 이 시편들의 제각각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첫발, 그 정신의 흙 한 삽을 만져보고 시작한다면 더욱 좋을 일이라는 팁도 얹는 게 다분히 유익하겠다.
전직 천사 박정대. 스스로를 그리 칭한 박정대의 이번 시집 속 유쾌함은 자신의 시를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가 자신의 시를 말하고도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겠다. 이 시집이 너무 난해해서, 이번 시집이 너무 요상해서 읽는 데 어려움과 두려움이 함께 엄습한다면 뒤에서부터 넘겨 보셔도 좋으리. 단 발문과 해설을 맡은 이의 이름(발문 장드파, 해설 박정대)을 확인하고 보신다면 보다 큰 재미를 누리리.
『그녀에서 영원까지』는 앞서 출간된 박정대 시인의 시집들처럼 읽는 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시라는 형식의 모양새가 있다면 그 틀을 깨고자 태어난 박정대 시인의 언어들은 때론 덩어리로 때론 파편으로 뭉쳤다가 흐트러졌다가 제 안의 제 음악에 이끌려 제 몸을 부리면서 ‘자유’를 말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말을 타고 검독수리로 사냥하는 사람을 자유라 부른다지// 카자흐스탄의 언어적 관점으로 보면 나는 자유”(「자유」)라고 노래한 시인은 “그게 누구든 그게 무엇이든 자유를 노래하는 건 그들의 자유/ 스스로 꿈꾸고 스스로 노래하는 자유는 만인의 의무”(앞선 시)라며 이 한 권의 시집 속 절제절명의 ‘멋’을 그 ‘자유’ 안에서 맘껏 부린다. 그와 동시에 읽는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온몸으로 통과해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한 표현을 할라치면 ‘놀게’ 하는 것이리라.
‘그녀’라는 말과 ‘영원’이라는 두 단어를 소리 내어 읽어본다. ‘그녀’라는 말과 ‘영원’이라는 말은 얼마나 가깝고도 멀리 있는 말인가. 사실 그러다 크게 한 원을 그릴 수도 있는 말이 아닌가. 뿌연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일어서는 이 두 단어 사이에서 완벽하게 돌고 있는 우주, 그 무한 팽창의 세계를 시라는 보임으로, 시라는 들림으로 선보이는 박정대라는 가수, 박정대라는 기수, 박정대라는 무사, 박정대라는 사내, 박정대라는 시인. 그는 타고난 달변가라 시어를 낳고 시어를 키우고 시어를 성숙하게 자립시키기까지 능한 솜씨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의 시어들 속에서 나는 숨은 정성, 그 최선을 보고야 만다.
이 시집은 접기보다 밑줄 긋기를 능하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다. 한 줄 한 줄 감하여 접어가며 읽기도 가능하겠지만, 한 문장 한 문장 무너져 밑줄 그어가며 읽을 때 그 탄복의 푸른 멍은 거기 더 오래 배일 것이다. 말을 좇지 않고 그 말들을 제 뒤로 좇게 만드는 힘, 그건 억지로 부릴 수 있는 완력이 아니다. 쓰는 자와 부르는 자의 묵묵함이 읽는 자와 듣는 자의 심장을 건드릴 때 그건 완벽한 시이자 노래일 터, 주저 없이 그를 배가본드(vagabond)라 칭해본다. 그는 이렇게도 여전히도 청춘의 심벌이다. 그는 이렇게도 여전히도 시가 전부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