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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의 >걸어본다<10 아이오와
김유진 에세이 『받아쓰기』
“세계가 한 학급으로 이루어졌다면?”
아이오와 국제 창작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머문 아이오와 일기
여행이 아닌, 관광이 아닌, 바야흐로 산책.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 줄 아는 예술가들의 산책길을 뒤따르는 과정 속에 저마다의 ‘나’를 찾아보자는 의도로 시작된 난다의 걸어본다 열번째 산책지는 바로 ‘아이오와’입니다.
아이오와라고 하면 그곳이 어디일까 낯설어 할 분들도 꽤 되실 텐데요,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이 작은 동네의 이름이 비교적 문단 안팎에 널리 알려진 데는 아마도 ‘아이오와 국제 창작 프로그램(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IWP는 1967년 시작된 아이오와 시 주관의 국제적인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매년 각국을 대표하는 글쟁이들이 3개월 동안 아이오와 대학교 내의 같은 호텔에서 머물며 창작과 토론, 낭독회 등에 참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해마다 권위를 더해가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는데, 지난 2015년 한국을 대표한 예술가는 김유진 작가였습니다. 김유진 작가는 지난 2004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이후 소설집 『늑대의 문장』 『여름』, 장편소설 『숨은 밤』을 출간하여 그만의 독특한 자기세계를 구축한 바 있고, 현재는 소설쓰기와 더불어 번역에도 매진하고 있습니다.
김유진 작가의 에세이 『받아쓰기』는 그 부제 ‘내가 머문 아이오와 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이오와에서 머문 3개월 동안의 일상을 매일같이 일기로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2015년 8월 22일부터 11월 11일까지, 33개국에서 온 34명의 시인, 소설가, 번역가와 함께 문학으로 책으로 어울렸던 기록의 결과물입니다. ‘일기’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보다 김유진 작가의 기질적 특성상, 『받아쓰기』는 그 어떤 과장된 감정적 흐름도 없고 과대하게 포장된 일상도 없고 다만 ‘있음’의 ‘있음’을 정확하게 적어감으로써 읽는 우리들로 하여금 보다 자유롭게 저만의 그림을 그리도록 유도합니다. 때문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나가는 맛이 담백하면서도 묘하게 슴슴한데, 조미료와 같은 그 어떤 가공물이 첨가되지 않았다는 확신 앞에서 그 뒷맛이 무척이나 건강하게 남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에게 문학이라는 자의식이 너무 과하게, 그럼에도 너무 빤하게 포장되어온 것은 아닌가 오히려 이를 되짚어보게 하니 말입니다.
‘걸어본다 아이오와’라고 했지만 이 책에는 아이오와에 대한 일절의 정보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김유진 작가가 걸어본 3개월 동안 아이오와는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 시간 동안 작가의 곁에 머문 동료 작가들과의 소소한 일상이 드라마를 보듯 선명하게 펼쳐집니다. 언어를 초월하고 성별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여 한 공간에서 한데 섞여 벌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을 보고 있자면 ‘모국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 ‘언어’적인 부분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분명하게 알게 되는 사실이라면 “어떤 나라에서 누군가의 나라로. 그곳은 아주 먼 곳이면서, 동시에 더이상 멀지 않은 곳”이라는 받아들임, 아마도 그에 가까운 심정일 것입니다.
이 책을 재미나게 읽는 요령이랄까, 팁을 하나 드리자면 책 커버를 벗겨 안쪽에 그려진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짚어가며 보시라는 말씀입니다. 걸어본다 시리즈는 책 커버 안쪽에 늘 산책 지도를 담아왔던 참이었는데, 이번 『받아쓰기』는 2015년 아이오와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모든 작가들을 소개하는 차원에서라도 보시기 좋게끔 캐리커처 제작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더불어 본문 곳곳에 그림일기 속 그림들처럼 맑은 심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김란 작가의 삽화에도 오래 시선을 두셨으면 합니다. 일기라는 장르에 걸맞게 그림 역시 도통 오버란 걸 안 합니다. 그래서 두고두고 자주자주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 순정한 마음에 여러 번 미소를 짓게도 됩니다.
특별히 이번 책의 추천사는 최승자 시인의 기록을 담았습니다. 최승자 시인은 1994년 아이오와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여 그때의 기록을 빼곡하게 기록한 책으로 우리에게 아이오와에 대한 각인을 시켜준 바 있는데요, 현재 그 책 또한 새롭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후에 출간될 최승자 시인의 아이오와 일기와 김유진 작가의 아이오와 일기를 비교해서 읽는 감흥이 어떨까 기대가 됩니다. 20년 가까운 시간을 뛰어넘는 차이, 그러나 ‘사람’과 엮인 삶에서의 깊은 사유는 왠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할 것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마지막 일기를 살짝 얹어봅니다. 이 책의 마지막이라지만 끝내 마지막이 아니고 이내 이 책의 시작이라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을 듯해서입니다.
“작가들은 모두 다른 나라로 돌아가므로, 출발 시간도 다 달랐다. 나는 작가들 중 가장 일찍 호텔을 나섰다. 야엘에게 메시지가 왔다. 야엘은 텔아비브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대해 말했다.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어. 와서 글을 써도 좋아, 라고 말했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텔아비브나 스톡홀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2015년 11월 10일 화요일」, 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