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았고, 마냥 편했고, 저냥 살고 싶었던, 그곳 그리스!
난다의 >걸어본다<14 아테네
백가흠 짧은 소설 『그리스는 달랐다』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는 난다의 걸어본다 열네번째 이야기는 백가흠 작가가 짧은 소설로 그려낸 『그리스는 달랐다』입니다. 두 차례에 걸쳐 각각 3개월가량 머문 그리스에서의 나날들이 얼마나 다채로웠는지, 작가는 이에 서사라는 뼈대를 세우고 이야기라는 살점들을 갖다 붙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간 에세이 형식으로 쓰였던 걸어본다 시리즈에 이 책이 소설의 형태로 자리매김을 한 데는 그리스 사람도 아니면서 그리스 사람처럼 그리스를 살아낸 작가만의 독특한 머무름의 방식에 기인한 까닭도 분명 있으리라 봅니다. 그냥 좋았고 마냥 편했고 저냥 살고 싶었다는 그곳 그리스. 이유를 설명할 길 없는 친연은, 그 끌림은 이렇듯 스물한 편의 짧은 소설을 각양각색으로 토해놓기에 이르렀다지요. 물론 기저에 ´자유´가 담보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지요.
이 책에 담긴 스물한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바로 오늘, 바로 지금의 그리스 정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람이라면 너무도 당연해서 그냥 스쳐 보냈을 일들이 그리스 사람이 아니기에 너무도 낯설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한 채 붙들고 풀어낸 사연들 참 구구절절 많습니다. 뭐랄까요, 그래서 참 묘합니다. 그리스의 낯선 지명에 발음하기 힘든 그리스 사람들 이름이 연거푸 튀어나와도 다 우리 사는 데 같고 다 우리 옆집 사람들 이름 같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정서적 친밀도 뒤에는 우리와 그리스가 처한 환경의 유사성 또한 한몫을 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빼닮은 것은 아니지만 악화된 경제 상황이라든가 가족의 붕괴 현실이라든가 고용 시장의 불안 등등의 문제는 비단 그리스만이 겪고 있는 오늘이 아니라서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로 오버랩되어 읽히기도 하는 까닭입니다. 짤막한 에피소드로 가볍게 쓰인 것 같지만 읽는 내내 뭔가의 답답함으로 찜찜함으로 한숨이 나온다면 이는 일순 치환된 나의 이야기를 맞닥뜨리게도 되어서일 겁니다.
이 책의 정 가운데 2부는 백가흠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골라 채웠습니다. 제법 수가 많을 수 있는 사진들을 넉넉히 고른 데는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풍성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단순히 빼어난 풍광을 자랑해서 우리를 보고 즐기게 하는 사진들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움은 덜하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자랑해서 우리를 보고 생각하게 하는 사진들이라는 계산에서였습니다. 2부를 채운 그리스 앨범의 제목을 ´그리스 여행은 한국에 돌아오고 시작됐다´라고 지은 것 또한 그러한 연유에서였습니다. 여행지에 있을 때 우리는 여행이다 체감하기보다 여행지를 떠나오고 난 뒤에 그 여행을 떠올리는 데서 다시금 여행을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5년 전의 아테네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국가부도사태와 2차 구제금융의 여파가 굉장했다. 시내는 주말마다 파업과 시위로 들끓었고 매캐한 최루가스가 도시를 뒤덮었다. 곳곳에서 일어난 방화로 불에 탄 은행 건물과 정부 건물이 흉물스럽게 방치된 채로 서 있었다. 그럼에도 아테네에 대한 인상은 굉장히 안정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이 지녀야 할 어떤 기본적 권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 그리고 5년 후 결국, 올여름에 나는 그리스로 돌아왔다. 경제적인 상황은 그리 나아졌다고 볼 수 없을 테지만 국민들은 현명하고 슬기롭게 현재의 고난을 건너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그리스는 모계 중심의 사회이다. 그리스는 어머니가 삶의 중심이다. 유산 같은 것도 딸에게 물려주는 게 일반적이고, 결혼 후 남자가 여자 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 또한 많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IMF 구제금융으로 촉발된 경제난으로 급격한 가족의 붕괴를 겪은 것과 달리, 그리스는 우리보다 더 안 좋은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평온한 이유가 그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보다 가난하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은 그 어떤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가 걸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마무리하며」중에서)
다시금 소설을 생각합니다. 작가가 말하고픈 그리스의 다름은 무엇일까, 이를 유추해봅니다. "떠나왔지만 돌아왔다, 돌아왔지만 떠날 것이다" 내내 생각하며 5년을 주기로 두 차례에 걸쳐 방문했던 그리스의 다름은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어떤 ´태도´에 대해 ´정신´에 대해 빗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였습니다. 물론 이는 우리가 잃고 사는, 그래서 간절히 지금이라도 챙겨야만 하는 참으로 중요한 덕목이라 하겠지요. 그리하여 걷는다는 일의 귀함을 이 소설을 통해서도 다시금 재확인하는 바입니다. 걷지 않으면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 만나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을 이야기들, 머리가 복잡하면 나가 좀 걷다 오렴, 심사가 답답하면 나가 좀 걷다 오렴…… 왜들 그렇게 충고해왔는지 알게도 하는 소설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