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느린 기다림을, 더 나은 삶을 가리킨다
1부 ‘썩음에 대하여’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일상 속에서 맞닥뜨린 사회문제를 이야기한다. 점점 비가 내리지 않는 장마, 자본주의적 가치만을 따지는 부동산, 고층화되고 있는 건물, 일상을 망가뜨린 바이러스 등 현대인이 진실을 외면한 결과로 마주치게 된 여러 문제들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인식하려 하지도 않았던 사회 곳곳의 병폐를 포착한 날카로운 관찰력이 돋보인다.
2부 ‘문학을 해야 하는 시절’은 자본주의가 은폐하고 있는 진실을 인식하기 위해 문학은 필요하며, 지금-여기에 갇혀 있는 현대인의 자아를 깨우기 위해 시적 언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일그러진 사회를 직시하고 비판했던 김종철, 김수영과 같은 시인들을 통해 현대 시인들이 갖춰야 할 자세를 제시한다. 이때 시는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문제를 인식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상상하는 것은 현대인의 책무이기도 하다. 또한 눈앞의 편의에 안주하며 불안한 미래를 애써 외면하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시적 언어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썩을 줄 모르는, 그러니까 방부제 처리를 해서 그런지 겉이 번쩍번쩍한 언어들을 보면서 혹여 썩는 능력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썩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대립물이 아니라 다른 살아 있음으로의 이행일 텐데, 이는 꼭 물질 상태의 변화만을 가리키는 건 아닐 것이다.” _「썩음에 대하여」에서
시인은 어릴 적 늦겨울이면 논밭에 뿌리던 두엄을 생각한다. 일 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짚과 소의 배설물이 차츰 썩어 두엄이 된다. 두엄은 논밭에 뿌려지고 봄이면 더 싱싱한 새싹을 틔운다. 시인이 겪은 ‘썩는 일’은 기다림이 필요한 일, 기다림이 끝나면 더 나은 것을 마주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속도를 절대적으로 숭상”하며 기다릴 줄 모르는 우리 사회는 썩을 줄 모르는 사회이다. “신생의 시간에 대한 상상과 꿈”이 좌절된 사회이다.
“‘시적 언어’라는 것은 테크놀로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을 거부하는 언어다. 일반화되고 납작해진 언어를 벗어던진 언어이고, 상투적인 유행어를 신경질적으로 배격하는 언어이다. 그것은 정파적 입장이나 정치 이념의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을 각자의 몸에 새긴 언어이며, 그래서 시야를 뿌옇게 가리는 미디어의 언어를 걷어내고 삶의 심장이 펄떡대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언어이다.” _「속도의 언어와 시적 언어」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언어를 접하지만 그것은 충분히 썩지 않은 언어일 가능성이 크다. SNS에서 ‘좋아요’를 받기 위해 혹은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신속하고 자극적으로 쓰인 글, 범람하는 혐오 콘텐츠 등의 언어는 “사나워지고 획일화되고 있”는 언어, 혐오의 언어, 속도의 언어로 시인이 경계하는 대상이다. 우리가 진정 좇아야 하는 언어는 시적 언어로 “현실의 소용돌이 안으로 무책임하게 휩쓸려 들어가는” 언어가 아니라 충분히 썩어 우리 사회의 거름이 되는 언어이다.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여 경제발전을 꾀하는 현대 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은 어떠한가.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끊임없이 ‘상상’하는 일, 문학이 필요한 시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