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디까지가 너야?
난 꼬리 같은 건 없어
잘리면 그게 꼬리지
알고 보면 전부 꼬리지
알고 보면 전부 머리지
난 어디까지 나인지 궁금하지 않아
_「도마뱀은 도마뱀」 전문
‘나’라는 미지를 탐험하기 시작한 어린이 여러분,
여성 동시인 5인방이 꾸린 아지트로 초대합니다
김개미, 송선미, 임복순, 임수현, 정유경. 이름만으로 동시 독자들을 설레게 하는 시인 다섯 명이 모여 한 권의 동시집을 펴냈다. 미지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여자아이들에게 건네는 동시집, 『미지의 아이』다. 시인들이 기획 단계부터 의기투합하여 함께 책을 펴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고, 다가갈 독자의 상을 구체적으로 그린 뒤 줄곧 염두에 둔 채로 쓰는 것 또한 유례없이 특별한 일이다. 동료 시인에 대한 신뢰와 우정이 이미 단단했고 무엇보다 새로운 동시집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섯 시인이 처음 마음을 모은 것은 2019년 여름, 권태응 어린이 시인학교에서였다. 단짝 친구처럼 지내는 여성 시인들이 다 함께 아지트 같은 동시집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또래보다 조금 일찍 마음이 자란 여자아이들을 위한 동시집을 쓰자는 데 목소리가 모였다. 본격적으로 자아를 형성해 가는 시기에 다다른 아이들은 보다 섬세하게 자신과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예민하다는 건 자세히 느낀다는 것”이므로. 시인들은 그 시기를 지나올 때의 “외롭고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을 떠올리며 이 동시집을 준비했다. 같은 마음으로 그 시기를 지나고 있을 아이들이 “살짝 낯설지만 또 비슷한 자신의 모습”을 만나기를 바랐다. “자신과 주변을 이해하고 통찰하고 사랑하는 동시집”은 그렇게 탄생했다. 골똘하게 자신을 탐색하고 씩씩하게 세상을 누비는 여자아이는 “진희” 또는 “지니”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소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를 만난다.
“조금 성숙한 여자아이들을 위한 동시집을 써 보고 싶었어요. 동료 여성 시인들과 함께요.” _김개미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물결이 이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잘 가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죠.” _임수현
“독자분들이 살짝 낯설지만 또 비슷한 자신의 모습을 만나면 좋겠어요.” _송선미
“다양한 ‘나’의 모습을 담으려 했거든요. 내가 알고 있는 나도 있고, 내가 모르는 나도 있고.” _임복순
“미지의 아이는 우리 모두의 I(나)입니다. 모두가 하나하나의 신비로운 우주니까요.” _정유경
이런 나도 있고 저런 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내 생각을 존중한다
‘나’라는 아이, 그 미지의 세계를 이제 막 탐험하기 시작한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된 『미지의 아이』라는 아지트에는 탐험의 열쇳말이 되어 줄 문장들이 가득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 내가 몰랐던 나, 내가 숨기고 싶은 나와 드러내고 싶은 나, 누군가를 만나 조금 변화한 나까지, 한 존재의 자아를 이루는 다양한 모습이 마흔일곱 편의 작품에 담겼다.
1부 〈나의 비밀 스타〉는 제9회 창원아동문학상 수상 시인 정유경의 시들로 꾸려졌다. 숨기고 싶으면서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건네지기를 기다리는 비밀들이 타인과 변별되는 존재로서의 나를 이룬다. 머리를 짧게 싹뚝 자르고 온 진희, 공을 차며 운동장을 달리는 그 애, 우주만물 열쇠 집의 언니를 향해 피어나는 마음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영영 모를” 비밀이고, 그래서 오직 ‘너’에게만 속삭여진다. 혼자만의 비밀이 우리끼리의 비밀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의 테두리는 은밀하게 또 한 번 또렷해진다.
2부 〈나는 내 생각을 존중한다〉에 그려진 아이는 배짱이 두둑하다. 싫은 것은 싫다고, 좋은 것은 좋다고 군더더기 없는 직구를 던진다. 이토록 솔직하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김개미 시인이 아니면 또 누가 들려줄 수 있을까. “나는 내 가슴의 생각을 존중한다”라고 선언하는 이 아이에게는 “나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용감함”과 “자신의 내면을 보살피는 힘”이 있다. 제1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어이없는 놈』의 당돌함과 맹랑함, 제1회 권태응문학상 수상작인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의 유쾌함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견되어 독자를 기쁘게 한다.
3부 〈넌 어디까지가 너야?〉에는 미지의 고양이가 등장한다. 남들 다 듣는 “냐옹” 소리 같은 거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말하는 고양이다.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고등어를 먹지 않는 유일무이한 고양이이기도 하다. 제7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을 받은 『외톨이 왕』에서 환상성을 도구 삼아 존재의 기원을 파고들었던 임수현 시인이 그려 낸 미지의 아이는, 제약 없는 상상 속 세계에서 존재의 고유성을 노래한다. “난 어디까지 나인지 궁금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이 아이는 수많은 ‘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 않고 도리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해 낸다.
4부 〈이름을 좀 날려 볼까〉는 일상 속에서 펄떡이는 나만의 보물들을 건져 올려 보여 준다. 이를테면 제5회 동시마중 작품상을 받은 「빙수의 발전」에 그려진, 새로운 맛의 빙수 한 그릇이라거나 월요일 아침마다 만들어 내는 작은 거짓말 하나, 눈앞에 아른거리는 몽골몽골한 구름 한 덩이, 공원에서 우진이가 던진 말 한마디 같은 것들. 나를 설레게 하는 사소한 무언가들을 임복순 시인의 촘촘한 그물망은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는다. 내가 보고 듣고 만지는 것들이 곧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 된다는 단순한 진실이 하늘을 가르는 배드민턴 셔틀콕처럼 경쾌하다.
5부 〈나, 미지의 이름〉은 지금껏 그려 온 ‘나’라는 그림을 새삼스레 들여다본다. 어디서부터가 나일까? 어디까지가 나일까? 근원을 파고들고 경계를 해체하며 존재를 다시 낯설게 하는 질문은 나 자신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소이”로 지칭되는 누군가에게까지 닿기에 이른다. “너,/ 미지의 소이” “소이,// 너는 누구니?” 자아에의 탐구와 탐색이 세계에 대한 이해로 번져 가는 순간이 눈부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금 느리더라도 그만큼 단단하게 동시 언어의 땅을 다져 온,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의 발행인인 송선미 시인의 작품들은 『미지의 아이』의 세계를 한없이 넓혀 주는 우아한 마침표의 역할을 해낸다.
할머니가 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쪼글쪼글 희끗희끗해도 나는 언제나 나일 거야
히히 작가의 그림 또한 ‘나’를 탐색하는 여정에서 든든한 동료가 되어 준다. 아지트에서 머리를 흔들며 격렬한 춤을 추고, 강아지 “멍구”와 닮은 얼굴로 납작 엎드려 뒹굴고, 공터에서 농구하는 걸 좋아하는 단발머리의 여자아이는 상상 속에서 “쪼글쪼글 희끗희끗”한 단발머리 할머니가 되어 큼지막한 링 귀걸이를 하고 새빨간 칵테일을 즐기기도 한다. 다섯 시인이 그리고자 한 미지의 아이, 꼭 그 모습이다.
히히 작가는 이 동시집만의 특별함이 한층 돋보일 수 있도록, 다섯 시인 각각의 테마 컬러를 잡고 작업했다. 정유경 시인의 소곤거리는 비밀은 보라색, 김개미 시인의 배포와 배짱은 노란색, 임수현 시인의 환상 세계는 연녹색, 임복순 시인의 일상 속 자그마한 보물들은 하늘색, 송선미 시인의 마음 깊은 곳 풍경은 빨간색이다. 각 부의 고유한 색깔을 널따란 면적으로 과감하게 올린 그림에서 힘이 느껴진다.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님, 아주 훌륭하십니다!”
옷을 멋지게 입으셨네요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으셨나 봐요
좋은 냄새가 나요
걸음은 또 어쩜 그리 경쾌하신가요
당신은 오늘 아침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매력적이에요
오늘 즐거운 일이 있을 거예요
아무도 이런 말을 안 해 줘서
내가 가끔 나에게 해 준다
나님, 아주 훌륭하십니다!
_「나님」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