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030
정영문 장편소설 달에 홀린 광대
1996년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삼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창작과 번역 작업을 유연하게 오가며 우리에게 낯설고 매력적인 독서 체험을 선사한 작가 정영문의 세번째 장편소설 『달에 홀린 광대』(2004)를 한국문학전집 제30권으로 선보인다.
정영문의 시그니처인 만연체 문장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화자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가 알맞게 어우러져 “그의 소설세계에서 전환점에 해당”(문학평론가 손정수)되는 소설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달에 홀린 광대」 「산책」 「숲에서 길을 잃다」 「양떼 목장」 「배추벌레」 「횡설수설」 등 여섯 편의 이야기를 느슨하게 연결하면서도 각각이 독립된 별개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공통의 연결점을 마련하여 기존의 장편소설 문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 모델을 제시한다. 이 여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불안과 권태와 냉소와 유머로써 삶을 바라보는 정영문 소설의 독특한 시각이다. 『달에 홀린 광대』는 목적지를 향해 직진하지 않고 끊임없이 샛길로 빠져드는 화자를 내세움으로써 천천히 에둘러 가는 산책의 시간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삶의 풍경을 매력적으로 담아낸다.
『달에 홀린 광대』는 다만, 쉴새없이, 중얼거린다. (…) 이 중얼거림을 듣고 나면, 어느 한순간에 현존재들이 떠받드는 진리는 비본래적인 가치로 뒤바뀌고, 현존재들의 진리를 향한 실천은 소음과 소란으로 전도된다. 그리고 대신 ‘달에 홀린 광대’와 같은 현존재로부터 버려진 것들과 침묵을 강요당했던 것들이 찰나적으로 사유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빛과 그 빛이 빚어내는 경이는 곧 사라지고 그 경이가 떠난 자리는 불안과 권태와 냉소가 채운다. 『달에 홀린 광대』는 이처럼 아무런 화학적 변화도 없이 빛이 어둠으로, 어둠이 빛으로 전화하는 마법으로 가득찬 소설이거니와, 이로써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해체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_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국문과 교수)
정영문의 소설은 세상의 변화에 무감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반응의 변화조차 크게 의식하지 않는 글쓰기가 그려낼 수 있는 투명하고 일관된 궤적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경향의 이야기들은 대체로 주관적 의식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다소 고압적인 성향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정영문의 소설은 이례적으로 유머를 간직하고 있다. (…) 정영문이 베케트의 소설로부터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은 자연주의에 갇히지 않는 서사의 가능성,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 극적 성격,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바로 이 유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영문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문학 그 자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_손정수(문학평론가,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수)
■ 책 속에서
나는 끝없는 생각에 잠길 수 있게 해주는 질문을 던지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무익한 것일수록 더 만족스러웠다.(33쪽)
나는 잠시 내가 한 얘기가 사실인지 자문해본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사실만을 말하는 데 흥미를 잃었으며, 또한 내게는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 간의 차이란 없다.(96쪽)
왜 남자들은 싸움을 할 때면 웃통을 벗는 경향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해답은 구하지 못했다. 일단 웃통부터 벗고 보는 남자들도 있었는데 그것은 남자인 나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 맨살을 최대한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 대한 도전을, 적의를 드러내는 것인가?(121~122쪽)
괜히 심술이 나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괜한 심술이 나게 내버려두는 게 최선이었다. 나의 심술이 뭔가를, 또는 누군가를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끝내는 뭔가를, 또는 누군가를 향해 발산되어야 하는 데 내 심술의 문제점이 있었다.(127~128쪽)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소의 낡은 푯말 아래 가만히 서 있자 문득 내가 그곳에 버려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느낌을 차단했다. 나는 나의 느낌들이 비약을 일삼는 것을 두고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냥 어느 시골의 버스 정류소에 가만히 서 있는 것뿐이야, 하는 생각을 했다.(183쪽)
신발로 흙먼지를 일으켜 먼지가 조용히 이는 것을 보며, 조용히 이는 먼지의 무기력한 힘을 느끼며 내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한 바에야 실제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내게는 실천보다는 실천에 옮기지 않는, 끝내 옮겨지지 않는 생각이 중요했다.(183~184쪽)
어디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나의 얘기, 나의 얘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얘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편리하게도 어디에서 끝내도 좋은 얘기이다. 거기에 나의 얘기의, 내가 나의 얘기라고 생각하는 얘기의, 그리고 지금부터 나의 얘기로 만들 생각인 얘기의 특징이 있다.(2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