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들은 유연하고 처연하며 거침없는 언어로
청춘의 연대기를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현대의 소설’입니다.”
_이장욱(소설가)
“대상에 대한 장악이나 통제를 놓을 때만이 가닿을 수 있는
가장 선선하고 날카로운 이해가 여기에는 있다.”
_김금희(소설가)
한 해의 끝에서 만나는 올해의 휴먼-청춘 소설집!
담백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오늘날 이삼십대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작가 송지현의 두번째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이 출간되었다. “송지현의 소설들은 불안하고 유약한 마음을 치료해주는 가장 간편하고 신속한 레시피”라는 소설가 박상영의 말처럼, 손쉬운 낙관이나 무관심한 냉소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적절한 온도로 오늘날 청년 세대의 현실을 포착한 첫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문학과지성사, 2019) 이후 이 년 만에 펴내는 소설집이다. 9편의 수록작 대부분이 최근 이삼 년간 집중적으로 여러 지면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듯,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은 그를 향한 문단의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자 송지현이라는 젊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열성적으로 가꾸어가는 과정이 담긴 기록이기도 하다.
특히 수록작「손바닥으로 검지를 감싸는」은 월간 『현대문학』이 신년을 맞아 기획한 특별 코너 ‘내가 기대하는 작가’에서 소설가 정이현이 “어떤 상황에서든 소소하고 다정한 농담을 사용하여 주변의 공기를 따듯하게 데우는 성정의 소유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라는 평과 함께 송지현을 추천한 것을 계기로 발표한 작품으로, 송지현이 펼쳐갈 작품세계에 대한 동료 작가들의 신뢰를 짐작하게 한다. 현대문학상 후보작에 이름을 올리며 독자들에게 널리 읽힌 표제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포함한 이번 소설집을 읽으며 우리는 ‘휴먼-청춘 소설’이라는 세계의 매력을 한껏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빼. 실이 네 손에서 빠져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쥐어.
꼭 쥐면 오히려 놓치는 거야. 대충 해.”
엉킨 매듭을 풀어 새롭게 뜨개질을 이어가듯이
실패와 헤어짐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풍성해지는,
먹고 싸우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현재
송지현 소설의 화자들은 대개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등 예술 계통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이다. 미래가 낙관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지만 인물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유연하게 넘길 줄 안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의 ‘나’는 인디 밴드 활동을 하다 앨범이 망하고 고시원에서 지내던 중 이모에게서 연락을 받는다. 한 달 뒤에 유럽 여행을 갈 예정인데 그동안 자신이 운영하는 뜨개방을 봐달라는 이모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잠시 망설이지만 이내 고시원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할일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던 어느 날, ‘나’는 한 상가에 자리한 핫도그가게에 들어선다. 또래로 보이는 사장이 튀겨준 핫도그는 그저 그런 맛이어서 ‘나’는 가게가 곧 망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상하게 그가 신경 쓰인다. 그리고 그가 뜨개질을 배우고 싶다고 뜨개방을 방문해오면서 ‘나’의 귀향 생활은 예상치 못한 생기를 머금고 흘러간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의 인물이 인상적인 점은 스스로가 망했다고 생각할 때조차 자신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나간다는 것이다. 특히 직계가족이 아닌 이모나 삼촌 등과 쌓아가는 친밀한 관계는 송지현의 소설을 다른 가족 소설과 구분 짓게 하는 특징이다. 「손바닥으로 검지를 감싸는」의 ‘나’는 지금 숙취에 시달리며 운전대를 잡고 외삼촌과 동생과 함께 경주로 향하는 중이다. 원래는 동생과 둘이 가기로 했는데, 간밤에 같이 술을 마신 외삼촌이 자신도 여행에 껴주면 백만원을 주겠다고 해서 함께 가게 된 것. 그렇게 도착한 불국사에서 ‘나’는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쥔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보고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술에 자주 취하던 엄마를 견디며 살아야 했던 지난날의 ‘나’의 마음을 ‘진리의 부처’라는 비로나자불이 묘하게 건드린 것이다. 예약한 숙소는 인터넷에 등록된 것과 영 딴판이고 계획했던 바비큐 파티도 실패로 돌아가지만, ‘나’는 외삼촌과 동생과 함께한 이번 여행이 완전히 실패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송지현의 소설이 축소된 가족의 역할을 부각하며 가족 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가족을 둘러싼 기존의 의미와 역할이 깨어지는 자리이다. 「오늘의 가족」의 ‘미주’는 친구들과 놀던 중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는다. 그간 몇 번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별일은 없었기에 미주는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데, 엄마에게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부랴부랴 장례식장에 도착한 미주의 눈에 들어오는 건 괴상한 복장을 한 가족의 모습이다. 이어지는 상황도 장례식장 특유의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가족들은 곡소리를 냈다가 직원의 주의를 받기도 하고, 사촌오빠는 “마귀를 쫓는다는 교회에 심취”(76쪽)해 있다는 이유로 빈소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란한 슬픔과 잊을 수 없는 추억, 그리고 작은 소동이 함께하는 장례식이 미주의 눈에는 마치 ‘사이버 펑크’처럼 보이고, 가족들은 저마다 슬픔에 잠겨 있으면서도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점차 활기를 찾는다.
제대로 된 부모 역할을 하지 않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해 살고 있는 ‘나’가 가족의 존재를 어느 때보다 상기시키는 명절을 하루 앞두고 보낸 날을 담은 「명절 전야」, 부모가 이혼한 후 엄마와 살고 있던 ‘나’가 언니의 이혼을 계기로 엄마와 언니와 함께 아빠의 집을 방문하면서 펼쳐지는 한 편의 소동극과도 같은 이야기인 「사진의 미래」 모두 혈연으로 서로를 옭아매는 가족이 아닌 “가족이라는 것도 시작과 끝이 있다”(「사진의 미래」, 203쪽)는 사실을 인정할 때 새로이 확장될 가능성을 지닌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는 회사원이 돼서 퇴근하고 시원한 맥주를
매일 한 캔씩 마시고 자는 게 장래희망이에요.”
송지현식 청춘 소설의 면모를 살피기 위해 ‘가족’에게서 ‘나’로 다시 방향을 돌려보자. 「진강이의 엑센트」의 ‘나’는 게이 친구 ‘진강이’의 제안으로 진강이의 바람난 아버지를 만나러 고향에 함께 가게 된다. 이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는 ‘불륜 현장을 잡으러’ 온 자식에게 되레 남은 생을 애인과 함께하고 싶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하는 한편, 그런 아버지를 만나고 온 진강이가 ‘나’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이는 모습 또한 보게 된다. 이처럼 소설은 갈등이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웃음이 고여들 구멍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마냥 대책 없는 낙관이나 손쉬운 체념으로 보이지 않는 까닭은 ‘나’와 진강이의 이 동행이 자기 존재를 마주하는 여정과 겹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에 내려가는 차 안에서 ‘나’는 “어떤 사건에서든 나를 피해자의 위치”(133쪽)에 두며 위악적으로 굴었던 지난날을 몹시 부끄러워하며 되돌아보고, 진강이는 고향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창에게 ‘나’를 여자친구로 소개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 여정이 뜻밖의 웃음기를 띠고 마무리될 수 있는 건 삶을 대하는 송지현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회사에서 더이상 계약이 연장되지 않은 ‘나’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되는 「삼십 분 속성 플라멩코」는 이를 가장 선명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불안해할 법도 한데 이 상황을 위기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긴 휴식’으로 여기며 유럽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나’는 “플라멩코의 절정 부분만 삼십 분 분량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157쪽) 한 공연을 보며 모두가 감동받은 듯 보이는 가운데 자신만 “이 무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한 어떤 이질감”(159쪽)을 느낀다. 자신에게는 ‘플라멩코의 삼십 분’으로 압축되는 어떤 격정이 부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를 보며 우리가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은 삶은 하이라이트로만 이루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친구와 농담을 나누고, 별다른 취미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장래희망이 매일 맥주를 마시는 회사원이 되는 것이라는, 누군가에게는 소박해 보이거나 미래가 없는 듯 여겨지는 삶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삶 그 자체이리라는 사실 말이다. 언젠가는 절정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지금의 ‘무난한’ 삶이 그 절정을 위한 예비 과정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절정 없이 흘러가는 삶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던지는 유머는 단순한 웃음거리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인물들의 자세를 반영하는 것일 테다. 인물들의 유머에 마냥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문득 아득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는 농담에는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지난날이 압축돼 있고, 내일에 대한 뚜렷한 계획 없이 지내는 듯 보이는 인물의 마음 안에는 전망 없는 미래를 회피하지 않고 그와 마주보려는 안간힘이 담겨 있는 것이다. 쉽게 포기하며 끈기가 없다고 여겨지곤 하는 오늘날의 세대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지,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다른 인물들과 어떻게 관계를 쌓아가는지, 그에 대한 솔직하고 믿음직한 시각을 송지현은 이번 소설집을 통해 성공적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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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요. 인물도 사건도 문장도 유쾌하고 웃기고 거침이 없는데 읽다보면 불쑥불쑥 슬픔이 느껴집니다. 시트콤처럼 진행되다가 문득 뒤통수를 치는 우울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뿐일까요. 비관적 상황 속에 이상한 낙관이 배어 있고, 일상적 풍경에서 끝내 일상 너머의 그리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주제의식에 짓눌리지도 않고 서사에 강박되지도 않으며 문장의 아름다운 세공 같은 것은 관심 밖이라는 투인데도, 이 소설들은 유연하고 처연하며 거침없는 언어로 청춘의 연대기를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시대의 문화적 풍경을 관통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현대의 소설’입니다. _이장욱(소설가)
때로 어떤 소설은 다만 네 곁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쓰인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삶이라는 고정된 부피를 고집하는 인간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과거이면서 동시에 미래가 되”어 “흐르는” 시간적 존재이기를 받아들인다. 송지현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듯 그의 소설이 길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삶에 관계하는 인간들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가나 분석 같은 손쉬운 도구가 아니라 ‘사슬뜨기’를 하듯 대상에 대한 장악이나 통제를 놓을 때만이 가닿을 수 있는 가장 선선하고 날카로운 이해가 여기에는 있다. 위트와 “폐허” 같은 농담 그리고 다채로운 페이소스 속에서 펼쳐지는 송지현의 이 소설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을 향한 응답으로, “싱크홀”처럼 막막한 겨울의 분수대를 들여다보며 상실을 앓는 이들을 위한 축원으로, 최종으로는 우리의 수치와 실패, 그리고 불행을 감싸안는 혜안의 연대기로 기억되기를. _김금희(소설가)
열심히 살면 좋은 삶이 보장될 것이라는 허황된 위로가 가득한 지금, 불우함을 극복하고 상처를 자원화하라는 아리송한 격려가 넘쳐나는 여기, 송지현의 소설은 일관성 없는 세계와 그저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임을 받아들인다면 이윽고 우리는 그 어떤 규범적 선험성에 저항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한 철학자는 행복이 의무로 강제되는 사회에선 불행이 권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사라 아메드, 『행복의 약속』, 성정혜·이경란 옮김, 후마니타스, 2021) 규범과 불화하는 불행의 감각은 불쾌감 이상의 정치적 감정으로 급진화될 수 있다. 무엇도 될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책에 그려진 많은 감정들을 그저 미워하고 사랑하며 느껴보기를 바란다. 이것들이 무엇을 일으키는지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실수를 답습하고, 약속을 미루고, 결심을 번복하는 우리 취약한 신체들과 함께. _오은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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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곳으로, 농담이 넘치는 곳으로, 이윽고 상처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이 책이 그곳을 바라보면서 쓰였다고 믿고 싶다.
이번에도 많은 이들에게 기대어 글을 썼다.
혹시나 그들이 준 마음에 비해 나의 글이 가벼울까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일이라는 시간이 다시 오늘이 된다는 걸 믿는다고,
믿는 동안 우리는 또 만나게 될 거라고 전하고 싶다. _‘작가의 말’에서
■ 책 속에서
이모의 딸은 나보다 세 살이 어린데, 이모는 자신의 딸과 나를 자매처럼 키웠다. 사촌동생과 나도 자매처럼 지냈다. 우리는 경쟁하고 싸우고 사랑했다. 하지만 우리가 자매처럼 지낸 것과 달리, 이모에게 나는 남의 자식이라서 이모는 좀처럼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연약하게 자라게 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한다. 나는 너무 잘 운다. 작은 비난도 참을 수가 없다.(「손바닥으로 검지를 감싸는」, 44쪽)
슈퍼집 손녀가 예쁜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길래 어디서 샀느냐고 물었더니, 돈을 주면 집으로 배송해주겠다고 했다. 미주는 엄마가 시골에 있는 동안 쓰라고 준 용돈을 몽땅 털어 그녀에게 주었다. 그러고 연락은 끊겼다. 지금은 그 다이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미주가 가지고 싶었던 많은 것이 그랬다. 지금 간절히 바라는 것들도 그렇게 되는 걸까.(「오늘의 가족」, 91~92쪽)
하지만 진부한 것들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가 있었다. 언제나 잘 먹히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이었다.(「명절 전야」, 112쪽)
—요즘 내가 자꾸 과거로 끌어당겨지는 것 같아. 과거가 선명하게 보여.
—왜 그래. 누구보다 미래를 살 사람이.
—맞아, 맞는데, 내가 미래를 모르고 살잖아.
—그래서 미래를 사는 거야, 언니.(「명절 전야」, 120쪽)
나는 이상하게 굴기 위해 했던 일들을 진강이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내가 얼마나 최악의 인간인지 알게 될 테니까. 그때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주기 위해 나를 괴롭혔다. 그러면서 은근히 주변 사람들을 무시했다. 나를 봐, 너희는 이렇게까지 자신을 망칠 용기가 없지. 그리고 특별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뭐든 했다. 정말 무엇이든…… 나는 어떤 사건에서든 나를 피해자의 위치에 두었다.(「진강이의 엑센트」, 132~133쪽)
아까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너무 풍족해서 사람도 물건도 막 남기고 다니면 좋겠다. 그리고 뭘 남겼는지 기억도 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진강이의 엑센트」, 139~140쪽)
어쨌든 그 일은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의 상처를 쥐고 흔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곤 한다. 무거워 보이는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를 도와드리려 할 때나, 티브이에 나오는 후원금 계좌의 번호를 누르려 할 때, 어디선가 거미의 형체 같은 것이 스윽 지나가는 식이다. 그러면 나는 내가 어릴 때부터 못돼먹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 행동이 위선은 아닐지를 의식하게 된다. 위선이 위악보다 나은 거 아닌가, 하는 고민에도 빠진다. 그러다보면 할머니는 이미 계단을 올라 사라지고, 후원금 계좌의 화면은 넘어가고 난 뒤인 것이다.(「사진의 미래」, 184쪽)
나는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오래 바라보았다. 사진은 앞으로도 과거로 남을 거였다. 앞으로도…… 그러니까 사진은 과거이면서 동시에 미래가 되는데 그것이 어떤 순간에는 현재였다는 사실이 이상했다.(「사진의 미래」, 202쪽)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거절한 것도 아니어서 벌어지는 상황, 그런 것들도 자꾸만 많아진다고 j는 생각했다.(「나이트클럽 연대기」, 207쪽)
나는 가만히 p의 오른손을 잡았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p를 닮은 못생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여러 도시를 오가며 살다가, 나를 닮은 사람을 만나서, 언젠가 누군가와 이런 차를 타고 가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쓰지 않을 이야기」, 2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