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기에 서로 애쓰며 살아야 한다”
무대에서는 음악가로서 교실에서는 교사로서
노래하고 가르치고 흔들린 일상 뒤에 고요히 써내려간 균형 있는 독백
맑고 단정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음악가 권나무가 첫 산문집 『다정하다고 말해주세요』를 출간한다. 이 책에는 무대에서는 음악가로서 교실에서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살고 있는 저자가 노래하고 가르치고 흔들린 일상 뒤에 고요히 써내려간 글들이 담겨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써온 글들인 만큼 더욱 섬세하게 고르고 다듬어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외롭고 슬픈 마음이 들 때 읽었다면, 복잡하고 무거울 때는 무엇이든 썼다”는 고백처럼 그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텅 빈 마음을 채우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들을 비우고 풀어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책과 메모들이 나름의 규칙으로 널브러져 있는 곳에서 그는 글을 쓴다. 또 글쓰는 행위를 통해 홀로 깊어지고 더욱 몰입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는 교육자로서의 고민과 창작자로서의 성찰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자주 하는 일상의 생각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신의 역할들을 하나하나 진지하게 마주한 채 깊이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은 때로는 해답을 찾아가고 때로는 진행형인 채로 남는다. 애써 정답을 찾으려 하지는 않지만, 질문을 저편에 방치해두지도 않는다. 이렇듯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사회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과도 번번이 맞닿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살면서 한 번씩 해봄직한 것들이지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저자의 말들을 통해 독자 또한 새삼스럽게 골몰하고 생각을 나누게 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꺼내놓으며 끊임없이 독자에게 말을 건다. 이는 그가 “글과 노래에 진짜 나를 감추어두었기 때문”이고 또 “오직 당신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숨겨둔 것들”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숨겨둔 말들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따뜻하게 감싸는 조용하고 긴 포옹
‘다정’이 아우르는 것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어서 어느 날 무심히 건네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우리는 금세 ‘다정’이라는 명사에 물든다. 때로 “밥 먹었어?” “잘 지내지?” 같은 일상적인 안부 인사에도 큰 힘을 얻는 것처럼, 그의 글 속에는 평소에 내보이지 못해서 건네지 못한 다정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그렇다면 이 책 《다정하다고 말해주세요》 앞에는 어떤 말이 들어갈 수 있을까. 책을 읽을 누군가에게 ‘나에게 다정하다고 말해주세요’ 하는 바람이 담겨 있을 수도 있고, 호기심 가득히 질문하는 제자들과 그의 노래를 환하게 들어준 사람들에게 오늘 하루도 다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날들이 되기를 염원하는 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아직은 다정하다고 말해달라는 당부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엔 모든 것을 품은 채 흐르는 강의 물결이 떠오를 것이다. 고요하고 잔잔하게 그저 일렁이는 물결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흐르면서도 따듯한 온기를 품은 저자의 마음과 닮았다. 입안에 고여 있는 다정을 채 건네지 못해서 아직 잔잔하기만 한 맑은 마음들. 그러다 문득 품고 있던 진심을 누군가에게 아주 조금씩 표현해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것들은 늘 그렇게 조용히 반짝”이므로, 불현듯 멀어졌다가도 다시 조심스레 다가올 것이다. 조금은 돌려서 말하더라도 오롯이 전해질 오늘 건네는 부드러운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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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나무. 맑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겹이 많다. 한없이 투명하고 맑은 것이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한때 그의 인상이 나에겐 그랬다. 몇몇 계절을 기다려 글을 받았다. 입에 돌을 물고 먼 비행을 하는 큰 새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의 삶은 여태껏 그런 새의 묵직하고도 아름다운 비행 같은 것으로 지켜졌는지도 모르겠다. 문장을 뿜어 발산하는 힘. 왜 자기에게 싸움을 걸고 왜 자신에게 한없이 속닥여야 하는지 그 엄연함이 그의 글 커튼 안에 숨겨져 있다. 권나무의 발견. 또 발견. 글을 읽다가 속이 시원하고, 글을 읽다가 나도 따라 울컥하고……. ‘우리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기에 서로 애쓰며 살아야 한다’는 벅찬 문장 앞에서는 주먹으로 벽을 치고만 싶다. 권나무는 잘 벼린 칼로 우리에게 도대체 왜 살고 있는지를 강렬하게 물어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무책임한 삶의 사실들을 심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태어나 왜 예술을 하고, 왜 철학을 하는지를 권나무라는 유적을 발굴하다가 그만 그 근원까지 알아버린 것이다.
이병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