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것들은 나를 닮아 슬프다”
세계와 나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격렬한 내분
후회하는 시, 고백하는 시, 대답할 수 없어 쓰는 시
김수영문학상, 대산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수상 시인 서효인 신작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171번 시집으로 서효인 시인의 네번째 시집을 펴낸다.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들을 경유하는 시간에 대해 쓴 시편들의 모음 『여수』로 대산문학상과 천상병시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신뢰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입증한 이후 5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시집이다. 첫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에서 분노를 통해 도시의 들끓는 삶을 생생히 그려내고,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두번째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에서 세계의 폭력을 구조적으로 형상화했다면,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에서는 세계와 충돌한 나의 내부에서 발생한 격렬한 내분을 거침없는 시적 언어로 담아냈다. “지껄이고 후회하고 고백하는 삶에 시가 끼어들어 자꾸 묻는”데 “대답할 수 없어 썼다”는 시인의 말은 그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설득하고자 했던 치열한 난전의 시간을 짐작케 한다. 발문을 쓴 소설가 정용준의 말처럼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응시하며 모든 분노를 자기 쪽으로 끌고 와 샤워하듯 끼얹은” 시편들. 차마 받아들일 수 없던 외부 세계를 향하던 분노를, 이제는 자신에게 향함으로써 시인은 한 발 더 깊이 나아간다. 동시에 그는 쉽사리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각자의 자기 자신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가 내밀한 진심을 담아 써내려간 50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슬프게도 서로 조금은 닮았다는 사실, 그리고 또한 그게 아주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를 닮은 것이 태어나는 날에 나는
그녀의 머리맡에 있었다 포도껍질처럼
쭈그러진 모습으로 벌레가
꼬이듯 지은 죄들이 떠올라 무서워 허공을
휘저어보았다
_「버건디」 부분
시집의 문을 여는 시는 「서른 몇번째 아이스크림」이다. 동료의 조모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은 뒤 자신의 아이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사며 시인은 이렇게 독백한다. “내가 좋은 아빠다 죽지 않는 아빠다”. “남의 삶 전반이 가늠되지 않는/ 나이”에 접어든 화자는 “삼가,/ 열심히 녹”는 드라이아이스를 바라본다. 이제 막 세계에 발을 들인 아이를 기쁘게 할 아이스크림을 온전히 유지하게 하는 것이 “30년의 장례를 준비”하듯 녹아가는 드라이아이스이며, 그것을 바라보며 ‘녹지 않음’이 아니라 ‘죽지 않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인의 모습은 이 시집을 관통하는 결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 「버건디」에서는 ‘나를 닮은 것’이 태어난 날 맞닥뜨려야 했던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그리고 있다. 나를 닮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기도를 하고 누굴 때리기도 하던 손에 단지 포도의 과즙이 묻은 것만으로 “용서를 빌며 싹싹/ 물티슈로/ 손을 모아” 죄를 닦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이 시집에는 나를 닮은 많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나’의 자식들이기도 하고(“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는데 내가/ 아비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고기국숫집에서 꿍얼꿍얼대는 딸에게/ 화는 나는데 화를 못 내고/ 끙끙 앓았다”, 「휴가지에서의 아버지」), 같은 고향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하며(“죽이고 죽여도/ 되살아나는 빌어먹을 사투리여/ 염병할 뉘앙스여 괘씸한 톤이여 공동체여”, 「고등학교 동창들을 서울에서 만나면」),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하다(“나랑 같은 성씨의 인간들의 김치 씹는 턱을 생각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고”, 「김치 담그는 노인」). 그들은 마치 존재의 스펙트럼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해체시키고 가시화한다. 시인은 그러한 자신을 닮은 사람들, 또는 자신이 닮은 사람들을 통해 도망치고 싶었던 자기 자신을 목격하고, 결국 피하지 못한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사랑하던 날도
있었다 친족의 울음이 귀 뒤로
떨어진다
(……)
이 자리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사랑하던 날이
있던 적도 있어서 덜덜덜 몸을 떨며
울었다
_「부음 2」 부분
그런데 과거에는 사랑했지만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이 떨리는 슬픔을 느낀다면 거기에 사랑이 완전히 부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의 부재에 강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아마 사랑일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안 그런 척하는데 나는/ 나 때문에 괴롭고 나는/ 나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로맨스」)다고 말하는 시인의 말이 이해가 되는 듯도 하다. 내가 ‘나’를 사랑해서 혐오하듯, ‘나를 닮은 것’들을 사랑하기에 분노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해버려서 누군가를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는 마음을 우리는 한 번쯤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서효인의 시를 읽는 일은 어쩌면 견딜 수 없는 무언가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내밀하게 적힌 마음들이기에, 이토록 선명하게 잘라 내보인 인간의 단면이기에. 물론 거기에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리고 ‘당신을 닮은 것’들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실패하는 마음의 한가운데에서”(‘시인의 말’)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벽에 머리를 찧으며 모순을 이겨내는 일상의 한 시절처럼 시가 나를, 내가 시를, 적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정용준)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닮은 또다른 존재들과의 만남을 예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