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문명과 미래와의 불화에 바쳐진 우리 시대의 복음
『산책시편』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이문재 시인의 세번째 시집 『마음의 오지』는 ‘미래’에 대한 복음서이다. 그 미래는 ‘지나간(혹은 오래된) 미래’이다. 단지 흘러가는 시간으로서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영토에서 훌쩍 날아올라”간 미래이다. 시인은 그 미래를 근심하고 불안해한다. 이문재 시인의 이번 시집은 그 미래와의 불화에 바쳐진 복음이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미래는, 삶의 근본이었고 풍경이었던, 그리하여 삶 그 자체였던 ‘농업’이 박물관에 처박히는 신세가 돼버린 미래다. 그것은 거대한 자본의 논리에 대한, 산업사회의 금속성의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다. 「농업박물관 소식」 연작시 5편은 이번 시집의 중심에 가로놓여 시집 전체를 끌어당기고 풀어놓는다. 세속도시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농업박물관’, 이름조차 생소한 그것이 아버지와 나의 삶을 ‘오래된 미래’로 감금시켜버리고, 시인으로 하여금 문명의 가속도에 전율하게 한다. 그 전율에 온몸으로 떨고 있는 시인은 현재의 삶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농업(땅, 고향)을 ‘지나간 미래’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미래를 원환적 시간 안으로 복귀시키고자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내 시가 내 삶을 이끌어간다면, 아니면 내 삶이 내 시를 데리고 간다면, 내 시와 삶이 마침내 가 닿아야 할 ‘고향’은 흙에 바탕한 그 무엇, 농업에 가까운 그 무엇”이라고 선언한다. 그것을 시인은 “농경공동체에 대한 유전자적인 그리움”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자연의 온전한 일부가 되기를 꿈꾸는 시인은, 그리하여 ‘바깥’을 향해 간절한 손짓을 내뻗는다. 문명의 바깥, 도시의 바깥, 현재의 바깥을 향해…… 53편의 시를 수록한 이번 시집의 제목 ‘마음의 오지’는 그 바깥의 극지이다. 시인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그곳이다. 왜냐하면 마음의 안쪽에는 “또다른 마음들”(「마음의 오지」)이 “거대한 식물 줄기들”(「내 안의 식물」)처럼 자라고 있는 “끔찍한 지옥”이자 “가장 큰 감옥”(「내 안의 감옥」)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와 무수한 나의 불화”(「겨울 부석사」)를 야기하고 문명과의 불화, 미래와의 불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문재 시인의 『마음의 오지』는 현재의 시간 위에 고통스럽게 발딛고 선 우리 모두의 처연한 자화상이다. 동시에 삶과 존재의 어긋남과 문명 사회의 냉혹함에 대한 시인 자신의 극렬한 고뇌와 자기 성찰의 산물이며, 농업으로 상징되는 ‘저 희미한 미래의 빛’에 대한 갈급한 희구의 표현이다. ‘시의 미래가 곧 마음의 바깥이고, 거기가 곧 삶의 미래’가 되는 곳에 『마음의 오지』는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