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토론토를 자유롭게 누비며 새로운 여행 스타일을 제시했던 그래픽 디자이너 부부, UGUF. 서울에 정착해 고양이(쇼콜라, 봉봉)들과 함께 평온한 일상을 꾸리던 두 사람에게, 절대군주가 나타난다. 어느 날 갑자기, 아기가 생긴 것. 아기는 천사처럼 예뻤지만, 정작 키우는 일은 전쟁이었다. 날마다 허둥지둥 안절부절못하던 초보 엄마아빠는, 아이의 세상에서 한 철을 보내며 조금씩 깨닫는다. 육아는 전쟁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는 행복한 선물이라는 걸. 날마다 신기술을 익히고, 눈을 맞추며 웃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관찰일기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아기와 나, 한 뼘씩 자란 500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어느새 백일이 오고, 훌쩍 자라 돌을 맞이하는 것 같지만, 아이의 세상 속 시간은 어른의 것과 밀도와 속도 모두 다르다. 느릿느릿 거북이걸음 같은 아이의 속도에 발맞추고 있노라면, 엄마는 불쑥불쑥 조급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동시에 매순간이 낯설고, 육아 책을 읽으면 신생아 패혈증이니 배꼽탈장이니 하는 단어들만 눈에 들어와 겁도 나고, 모든 걸 알아야 할 것 같고, 아기가 조금만 울어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초보 엄마가 진짜 엄마가 되는 건 얼마간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일이다. 동동거리며 아이의 세상을 오가면서 엄마는 차차 알게 된다. 하루가 즐겁고 평화롭기까지 긴 시간, 노력하고 기다리는 건 엄마가 아니라 아이라는 걸. 백지상태로 세상에 태어나, 누워만 지내다가, 조금씩 뒤집고, 앉고, 기고, 마침내 걷고, 드디어 달리면서 느끼는 아기의 환희를 함께 맛보면서, 엄마는 인생의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비길 데 없이 근면하고 성실하게 성장을 거듭하고, 땀과 노력의 결과로 오늘의 영광을 맞이하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도 인생을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면한 육아라는 현실에 엄마만의 로망도 조금씩 곁들이는 여유도 생긴다.
<UGUF 매일이 반짝반짝>은 영아에서 유아로 성장하는 단계인 18개월, 즉 500일 동안 아이가 이뤄낸 눈부신 성장을 흥미롭게 관찰한 기록과 더불어 일상을 가꾸는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다. 아이를 위해 물건을 고르고, 손수 인형을 만들고, 방을 꾸미는 소소한 즐거움이 하루하루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이토록 깊이 몰두하고, 진지하게 관찰하고,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일생에 딱 한 번 맛볼 수 있는 존재 가치의 발견,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행복감을 맛보며 난 아이의 세상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매우 즐겼다. 아이 키우는 일엔 끝이 없다. 언제나 다음 편이 기다릴 뿐. 그래서 ‘To be continued’이다.” (본문 중에서)
아이의 세상에서 보낸 한 철
아이의 세상에서 한 철을 보낸 엄마는 깨달음을 얻는다.
하루가 즐겁고 평화롭기까지 긴 시간,
참고 기다린 건 엄마가 아니라 아이라는 걸.
1.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는 본능적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다지만, 젖을 먹이고, 울면 달래주고, 때 되면 씻겨주고 하는 일이 지금껏 내겐 너무 힘겨웠던 게 사실이다. 초점 없이 멍한 눈으로 날 보는 아기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고, 어떤 교감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둘이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이 생긴 건 지유가 나와 눈을 맞추면서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어보인 순간부터다. 아무 의미 없는 웃음인 건 알지만 그 순간 마음이 흔들리면서 아기가 깨어 있는 시간이 몹시 흥미롭게 다가왔다. 울음소리를 주의 깊게 들어보면 아기가 뭘 원하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이젠 아기의 울음이 해독 가능한 언어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본문 중에서)
2.
“7개월 차로 접어들면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아기는 주기적으로 더는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엄마를 힘들게 하는데, 그 생각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180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순식간에 평화로워진다.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새로운 능력을 분출하면서 엄마를 놀라움과 기쁨에 젖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유난히 힘들게 하거나 보챌 때면 곧 또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버티게 된다.” (본문 중에서)
3.
“이제 곧 지유는 장난감을 살아 있는 대상인 양 대할 것이다.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줄거리를 지으며 인형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도 할 것이다.
그 모양을 보면 난 아마 침대에 쓰러져 얼굴을 파묻은 채 소리 죽여 웃겠지.
시간감각이 생기면 엄마가 약속을 어긴다고 뾰로통하게 화도 낼 테고,
또 동그랗게 엄마 아빠 얼굴을 그려내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게 만들 테지.
언젠가 이토록 큰 기쁨을 주어서, 너를 키울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지유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본문 중에서)
TIP: 엄마에겐 취미가 필요해
아이의 세상을 지배하는 리듬은 ‘슬로우슬로우 퀵퀵’의 반복이다. 천천히 흐르지만, 그 안에서 엄마는 동분서주, 쉴 틈이 없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무한반복, 그 쳇바퀴를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선 취미가 필요한 법. UF 역시 태어날 아이가 딸이란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머리핀도 모으고, 인형을 만들기도 했지만, 출산 후 몇 달 동안 한 조각의 여유도 없이 폭풍처럼 보낸 후 물기 없이 팍팍해진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잠귀가 귀신같이 밝아지면서,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 나지막한 라디오 소리에도 깨어나 잠투정을 하는 아기를 볼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적막한 집안에, 아이와 둘이 있노라면 불쑥 우울해질 때도 있다. 이럴 때 엄마를 구원해주는 것 중 하나는 일상을 조금 더 충일하게 만들어주는 취미이다. 뭘 해도 상관은 없다. UF는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택했다. 곰 인형, 강아지 인형, 발도로프 인형, 패치워크 무릎 담요, 딸랑이 인형, 테이블 매트 등등 하나씩 물건이 늘어나고, 그걸 갖고 노는 아이를 볼 때면 기쁨도 두 배가 된다.
“육아와 살림에만 매달리다 보니 일상이 팍팍해진 것 같아 우울했는데, 뭔가를 만들면서 의욕이 되살아나 큰 힘을 얻은 기분이다. 몸은 힘들지만 만들기를 하면 집중력이 생기면서 정신이 명료해진다. 나를 다스리는 시간도 되고,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낸 듯한 뿌듯함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지유가 내가 만든 인형을 갖고 놀 생각을 하면 보람도 두 배로 늘어난다.”
TIP: 아기와 고양이
“아기가 있는데 고양이를 키우나요?”
파리에서부터 함께 지내온 고양이들 쇼콜라, 봉봉은 UGUF에겐 가족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이런 질문은 적잖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항상 강아지와 고양이를 길러온 두 사람의 가족들조차 아기가 태어나면 고양이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올 정도로 동물이, 특히 털이 아기에게 해롭다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가 집에 오자 할머니는 우선 고양이들이 아기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단속부터 하셨다. 그러나 UGUF는 아기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틈틈이 공부도 하고, 자료도 찾으면서 아기 때 흙장난을 많이 하며 자란 아이들이 면역력이 높은 것처럼, 두세 마리 이상의 고양이나 개를 키우는 가정에서 자란 아기들은 알레르기성 질환에 걸릴 확률이 오히려 적다는 연구 결과를 믿기로 했다. 무엇보다 고양이들이 아기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력은 대단하다. 쇼콜라와 봉봉은 아기의 배꼽친구이자,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다.
“지유의 몸놀림이 활발해지자 쇼콜라와 봉봉이 아이 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가끔 지유가 마구 끌어당기고 머리를 걸치고 괴롭혀도 녀석들은 발톱을 세우기는커녕 묵묵히 받아준다. 피하지도 않고 귀엽다는 듯(혹은 귀찮지만 참아준다는 듯) 골골골 소리를 낼 뿐이다. 긴장을 풀 순 없지만 꽤 흐뭇한 삼남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