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은 오랫동안 현대시사의 광상 속에 매몰되어 있다 뒤늦게 발굴된 보석 같은 시인이다. 현대시사의 광맥을 새롭게 탐색해들어가던 1980년대 초반에 비로소 온전히 채굴되기 시작한 그의 시는 지상의 진열대 위에 놓이면서 찬란한 빛깔과 광택을 지닌 보석으로 광채를 뿜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연구자들에 의해 발굴된 지 이십여 년, 그사이 백석에 관련된 논문, 연구서, 단행본 등은 이미 백여 편을 넘어섰고, 그사이 시집 또한 여러 권이 간행되어 백석 시를 감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표기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제 백석은 일반 독자들은 물론이고 전문연구자들에게도 가장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만큼 제대로 된 정본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이 책은 백석 시에 대한 논문을 학계 최초로 발표한 바 있는 고형진 교수가, 백석 연구 25년여 만에 펴낸 정본이다. 백석 시의 감상과 분석을 까다롭게 만드는 평안 방언과 조어를 상세히 풀이했으며 그가 남긴 아름다운 토속어와 방언을 최대한 살려낸 이 시집은 가히 이십여 년의 백석 연구가 빚어낸 완결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백석 시의 어떤 정본이 필요한가. 백석 시에서는 방언과 고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모두 표준어로 바꾸면 시의 맛이 사라지고 만다. 이상적인 것은 원본에서 오자와 탈자, 편집과정에서 일어난 착오만을 고치는 것인데, 그 밖에 백석이 당시 제정된 맞춤법 규정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아 일어난 표기의 혼란도 적지 않다. 이 문제는 당시에 활동했던 시인과 작가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백석 시의 원본에서 방언과 고어는 살리고 맞춤법 규정에 위배된 표기와 오·탈자를 바로잡은 정본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 책을 엮으며 편자는 백석 시 원본의 언어를 자세히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백석 시의 올바른 감상에 도움을 줄 정본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또한 정본에 덧붙여 원본도 함께 정리해 실었다. 이 책에 수록된 원본은 영인본이 아닌 실제 발표된 지면의 작품들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다만 책의 크기에 맞춰 편집 형태만이 조정됐을 뿐이다. 영인본은 말 그대로 원본을 복사한 것이지만, 복사 상태가 불량해 원본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는 글자가 누락된 경우도 있으며, 글자가 왜곡된 경우 또한 꽤 많다. 따라서 영인본을 원본으로 간주하여 백석 시를 연구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편자는 백석 시의 원본 확립을 위해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원본 잡지들을 일일이 살펴보았으며, 누락된 것은 연세대 도서관과 서강대 도서관의 원본 잡지들을 이용했다. 원본 잡지가 세 군데에 모두 소장되어 있는 경우에는 세 잡지들을 서로 비교해 작품의 원형을 찾아내고자 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종이가 낡았거나 인쇄가 바랬거나 잡티가 묻어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 그 잡지에 실린 다른 글자와 대조해 원래 글자를 확인했다.
백석의 유일한 시집인 『사슴』은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원본을 참고했다. 두 시집은 몇 군데서 약간의 표기 차이가 있어 서지학적으로 검토해볼 여지가 있는데, 아마도 인쇄 상태에 따른 차이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 책에서는 두 개의 판본 가운데 맞춤법에 더 근접한 것을 원본으로 정했으며, 서로 표기가 다른 부분은 따로 설명을 붙였다.
또한 백석 시의 낱말풀이를 새롭게 정리했다. 그 동안 김명인, 이동순, 송준, 이숭원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이 백석 시의 어휘를 연구해왔으며, 편자 역시 다른 책에서 이런 노력을 한 바 있는데, 이번에 그러한 선행 연구를 종합하고 관련 자료들을 보다 폭넓게 참고해 그 성과를 반영했다. 백석은 평안 방언 외에 다른 지역 언어들도 사용했고, 고어를 살려 쓰거나 말을 새로 만들어 쓰기도 했으며, 사전에서 잠자고 있는 아름다운 표준어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번에 낱말풀이를 하면서 이러한 사항까지 밝혀내 보다 구체적이고 엄밀한 어석(語釋)이 되도록 힘썼다. 낱말풀이에 참고한 문헌들은 뒤에 부기해놓았다.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오산고보와 일본의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했다.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했다. 해방 후 고향에 머물다 1995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초판발행 2007년 2월 12일
* ISBN 978-89-546-0272-3 03810
* 140*195 양장 | 352쪽 | 15,000원
* 책임편집 | 조연주(031-955-8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