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동아시아의 신들,
오랜 유폐의 사슬을 끊고 생생한 모습을 드러내다
유구한 세월 이어져왔지만 한동안 우리 가운데서 잊혔던 동아시아의 신화. 그 낯설고 기이한, 그러나 무척이나 매혹적인 세계로 이끄는 책,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봇물같이 터져 나온 서양 신화 관련 텍스트에 식상해져버린 오늘,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동아시아 신화의 모티프들은 우리 문화를 새롭게 조망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최초로 시도된, 동아시아 상상력과 전통 문학이론에 의한 우리 문학, 문화 읽기의 산물이자 신화비평서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간 꾸준히 주장해온 한국 동양학의 정체성 그리고 그 힘을 글쓰기로 실천하고자 했다.
저자 정재서 교수(이화여대 중문과)는 『산해경』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 1, 2』 『동양적인 것의 슬픔』 등을 통해 많은 독자를 깊고 넓은 동양학의 세계로 안내한 신화학자이자 중국문학자. 그는 동아시아 신화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용되어왔는지 살피는 이번 작업을 통해, 그 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동아시아 신화의 풍부한 상징성과 무한한 상상력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세계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탐측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오늘, 바로 우리 곁의 문화 속에서,
동아시아 신화의 깊고 진한 결을 발견하다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는,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역의 신화적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산해경』의 변용 사례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저자는 동아시아 신화를 작품으로 체현한 중국 전통문학 및 환상문학 작품들을 우리의 언어로 풀어 소개하면서, 그 원전들이 이후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제1부 동아시아 이미지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동아시아 상상력에 의거해 한국·중국·서구 작가들의 문학작품에 접근한다. 도연명과 황지우, 루쉰과 이문열, 황순원과 서머싯 몸, 가오싱젠과 최인훈, 진홍과 이광수, 송영 등의 작품을 동아시아 신화·전설 등을 바탕으로 비교학적 차원에서 논의함으로써 동아시아 상상력의 보편적 힘을 웅변한다.
제2부 중국문학의 고위금용古爲今用을 위하여
김용택, 이문열의 작품을 각각 동아시아 전통시학과 전통소설론적 입장에서 분석함으로써, 동아시아 전통 문학이론의 현대적 적용 가능성을 타진한다.
제3부 상상력의 제국주의를 넘어서
동아시아 상상력에 의거한 문화 읽기로, 최근의 화두인 환상·몸·사이보그·문화콘텐츠 등을 동아시아 상상력의 견지에서 살펴봄으로써 전지구화 시대 상상력의 정체성 문제를 숙고한다.
저자는 위에서 언급한 한국·중국·서구 문인들의 문학작품뿐 아니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음양사> 등 일본 애니메이션과 영화, <매트릭스> <바이센테니얼 맨> <블레이드 러너> 등 할리우드 영화에까지 분석의 손을 뻗고 있다.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학작품은 물론, 오늘의 문화 현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각종 문화콘텐츠에서도 동아시아 신화의 모티프와 이미지를 탐측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서양의 각종 문화콘텐츠에 차용된 동아시아 신화 모티프를 하나하나 짚어가다보면, 독자는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동아시아 신화가 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지를 속속 깨닫게 된다.
이미지의 세계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신비롭고 기이한 동아시아 신들의 향연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에서 마주하는 기이한 이미지의 도판과 한문 고전들은 언뜻 낯선 느낌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동아시아 신화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이끌려 책장을 넘기다보면, 우리가 여태껏 발견하지 못한 신비롭고 풍부한 동아시아 신화의 세계를 제대로 맛보게 된다.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넓은 진폭을 갖고 변용되어온 동아시아 신화의 모티프들은, 동아시아 신화의 상상력이 갖는 은밀한 자기생산적 저력을 확인케 한다. 그 속에서 독자는, 동아시아 문화 텍스트에 깃든 원형적 이미지들이 현대의 문화 생산 현장에서 발휘할 무한한 창조력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라는 커다란 시공의 차이를 두고 각기 만들어진 작품들이 서로 이끌려와 충돌하는 풍경은, 우리에게는 낯선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동서양의 문화적 산물들이 알게 모르게 동아시아의 신화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놀랍고도 기분 좋은 일이다. 독자는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를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동아시아 신화의 넓고 깊은 사유와 상징의 세계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 제강이여,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서양 신화의 제국으로부터 유배당했던 동아시아의 신들
오늘 그들이, 얼어붙은 문화의 문을 녹이고 생생한 모습을 드러낸다!
정재서 교수의 노작으로 인해 우리는 오늘의 문학과 문화를 읽어낼 새로운 지평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동양의 ‘사라진 신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지금도 살아 있음을, 그리고 그 신들이 우리 자신임을 발견할 수 있는 자, 행복하리라!
_진형준(문학평론가, 홍익대 불문과 교수)
정재서 교수는 11년 전 『동양적인 것의 슬픔』에서 한 약속을 이 역작에서 어김없이 이행하였다. 동양 고전과 신화의 힘이 글쓰기를 통해 어떻게 예증될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정 교수는 한국 동양학의 경계를 한 걸음 더 밀고 나아갔다.
_김근(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 2007년 12월 7일 발행
* 164*210 | 304쪽 | 값 18,000원
* ISBN 978-89-546-0440-6 03810
* 책임편집 | 장영선(031-955-8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