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정겨운 말, “밥 한번 먹자!”
우리는 최근 어느 전기밥솥 CF 속에서 유명 연예인이 외치는 이 소리를 이미 여러 번 들은 바 있다. 때로는 지키지 못하는 기약 없는 약속처럼 지나가버리는 인사가 되어버리기 일쑤이지만, 한국인이라면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함께 밥을 먹으며 쌓는 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친해지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선 밥상에 마주앉아 한 끼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을 꼽는, 우리의 오래된 사고의 습관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여기, 소중한 사람을 위해 밥을 짓는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유지나. 밥을 짓는 일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프랑스 파리, 일본 홋카이도, 그리고 우리나라 제주 등에 장기간 머물며 타국 생활의 낯섦과 외로움을 즐기고, 또 그것을 글로 옮기는 동안에도, 늘 부엌을 떠나지 않았다. 파스타와 김밥, 샐러드와 타르트, 샌드위치와 생선구이 등 그녀의 식탁 위의 메뉴에는 국경도 없고 한계도 없다. 그저, 보다 맛있게, 그리고 먹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해 만들 뿐이다.
이 책에는 무려 60여 가지 음식이 등장한다. 빵이나 초콜릿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들도 있는 반면, 라따뚜이나 감자포타주와 같이 영화나 소설 속에서 들어봤음직한 다소 생소한 음식들도 등장한다. 그밖에도 오니기리, 굴라쉬 등 그녀가 머물던 나라의 고유 음식들도 빠질 수 없다. 그 음식들을 만들며 있었던 일들이나 함께 먹었던 사람들에 대하여, 즉, 그녀와 그녀의 음식, 그리고 그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맛깔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 버무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포함한 총 90여 가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놀라울 정도로 흥미롭다. 비행기 이륙을 기다린다는 벗의 전화를 받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며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묘사나 어느 골목길 모퉁이에 직접 카페를 차리고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만들던 한 시절에 관한 에피소드, 그밖에도 어린 시절 이모가 타주던 부드럽고 달콤했던 밀크커피의 추억이나 소풍날 아침 엄마가 정성스레 싸주던 도시락 속의 김밥, 그밖에도 프랑스 파리 11구 어딘가의 빵집에서 살구타르트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던 날의 기억 등등……. 마치 동화 <헨젤과 그레텔>처럼 그녀가 떠난 여행의 궤적마다 음식의 온기가 남아 그 흔적을 기억한다.
혀는 음식뿐만 아니라 마음도 맛본다. 접시 위의 요리와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맛본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행복하고 먹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한동안 먹지 못했던,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나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져 오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엄마의 음식은 엄마의 또 다른 사랑이니 우리는 사랑을 맛보고 행복해한다. 그리고 사랑을 받아먹고 자란 유년의 시간을, 엄마의 젖무덤 근처에서 자라던 때를 그리워하며 인생의 가장 순진한 시간 근처로 다가가 앉아보는 것. 그녀는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접시 위의 사랑을 맛본 그가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 혀도 마음처럼 사랑을 안다.
_ 본문 중에서
그밖에도, 여기에는 단순히 지은이의 개인적 경험이나 감상만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때로는 어른을 위한 아름답고도 슬픈 동화를, 때로는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소설을, 그녀의 무한한 상상력은 이렇듯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로 발전되어, 결국은 ‘너와 내가 마주 앉아 함께 먹는 식사’라는 큰 주제 아래 자연스럽게 얽히고 있다. 그 이야기들 하나하나에 가만히 집중하다보면 오래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고즈넉한 집에서 벽난로 근처에 둘러앉아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만큼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녀가 만들어 차리는 음식이 ‘따뜻한 사람들의 소담한 식사’라는 반증일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면, 정갈한 에이프런을 두른 그녀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언제 우리 식사 한번 하지요.”
나도 모르게 대답하고 싶어진다.
“네, 그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