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콜렉터라고 하면 특정한 한두 가지 사물에 집착한다. 앤티크 가구라든가 미술품, 희귀우표, 오디오, 카메라, 공구 등등 저마다 ‘전문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매사에 폭은 넓지만 깊이는 한없이 얕기만 한 만화가 이우일의 수집에는 계통이나 원칙 따위는 없다. 그가 모으는 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딱지, 구슬, 미니카, 프라모델, 액션피겨, 레고, 장난감 인형들, 만화책, 만화잡지, 영화잡지, 각종 잡지, LP, CD, 비디오테이프, DVD, 영화음악 OST, 영화 포스터, 소설책, 그림책, 사진집, 각종 사인본, 그림, 똑딱이 카메라, 폴라로이드, 가방, 도끼, 펜, 포스트잇, 스케치북, 티셔츠, 핀버튼, 그림엽서, 책 띠지, 영화 포스터, 스티커, 특이한 가게 명함, 뉴스 기사 잘라둔 것, 옷에 붙었던 태그, 기타 온갖 예쁜 것들, 그리고 버리기엔 어쩐지 애매한 모든 것들. 그러니까 이우일이 모으는 것들은 사실상 ‘모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2. 언제부터 모았나?
원래 일단 손안에 들어온 물건은 무엇이든 버리거나 잃어버리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구슬이나 장난감 등 딴에는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데 매우 열성적이었다. 내복 상자, 옷장 서랍, 부엌 찬장, 전축의 레코드 장에 이르기까지 집안 곳곳에 자신의 물건을 숨겨두곤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음반과 영화잡지를 열성적으로 모았는데, 그것들을 할머니가 쓰시던 나무 상자에 담아 붙박이장에 넣고 자물쇠까지 채워 보관했다. 수집에 관한 그의 집요한 성격은 유전일 가능성이 높다. 할머니는 자식들의 어린 시절 교과서, 편지, 엽서, 일기장, 성적표는 물론이고 신문에 끼어 들어오는 광고지까지 한 장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분이셨다. 할머니 댁 다락에는 미국에서 도서관학을 공부한 큰고모의 문고판 책들이 몇 박스나 있었다. 또 막내고모는 레코드 수집광이었다. 그러니 유전이 아니더라도 보고 배우며 자란 게 모으는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3. 가장 기억에 남는 수집품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77년 키너 사에서 만든 스타워즈 액션 피겨 시리즈. 당시 용산 근처 아파트에 살았는데 미군 부대가 가까워서 외국인들이 많았고 외국인을 위한 상점도 여럿 있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스타워즈 액션 피겨를 보았다. 어느 날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자 어머니가 스타워즈 피겨 몇 개를 사주셨다. 삼형제가 고른 것은 죽음의 별 보병, 망치머리 외계인, 바다코끼리 인간, 그리도 외계인 등등. 루크나 다스베이더, 레아 공주 피겨가 아니라 왜 하필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조연 피겨들을 골랐냐 하면, 아직 영화를 보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스타워즈는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주연이고 누고 조연인지 몰랐다. 그런데 최초로 만들어진 스타워즈 액션 피겨의 주인공 캐릭터들은 대부분 만듦새가 조악했던 반면, 조연 캐릭터들은 그나마 번쩍거리는 로봇들이라 어린아이의 눈에는 더 근사해 보였던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가장 존경하는 카투니스트 솔 스타인버그의 그림이다. 스위스 바젤의 카툰 뮤지엄에서 그의 실제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언젠가 그의 그림 한 점을 꼭 소장하겠다고.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인터넷으로 중고 책을 뒤지다가 스타인버그의 그림을 보았다. 그 순간, 그의 그림을 소유하고 싶었던 과거의 욕망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경매에 나온 작품들은 전부 판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매우 비쌌다. 일개 만화가의 경제능력으론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아직 때가 아닌가보다 하고 포기하려는 순간, 눈을 의심하는 그림 한 점이 화면에 떠올랐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갤러리아 쇼핑몰을 그린 판화였는데 경매 시작 가격이 1달러였다.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싼 데엔 이유가 있는 법. 그림 상태가 매우 나빴다. 하지만 그런 것쯤 문제되지 않았다. 그것은 스타인버그의 그림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지금 그 그림은 액자에 고이 담겨 이우일 씨 댁 거실에 걸려 있다.
4. 가장 후회하는 수집품은?
한때 SX-70 기종의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십여 년 전 도쿄 시부야의 중고 숍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는데,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는 모습에 한순간에 매료되어 그 자리에서 구입해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폴라로이드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SX-70 전용 필름인 타임제로의 생산 중단이 발표되었다.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여인과 헤어져야 하는 듯한 심정이 되어 서서히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는 타임제로 필름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엔 500원쯤 오르다가 나중에는 몇천 원씩 올랐다. 국내에서 타임제로 필름이 완전히 품절된 뒤로도 이베이로 계속 필름을 사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타임제로 필름 한 상자를 사서 뜯어보니 몽땅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세관에 걸려 세금도 엄청 낸 뒤였다. 그 후로 타임제로 필름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다. 앞으로 뻗은 길이 끝없이 보이는데 언제까지고 뒤돌아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5. 어떻게 모으나?
예전에는 책이나 장난감 등은 그 물건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에서 사는 것이 당연했다. 또 여행지에 가면 꼭 벼룩시장에 들러 빈티지 물건들을 뒤적이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물건을 인터넷으로 구한다. 특히 이베이는 수집가들에겐 블랙홀과 같다. 원하는 것이면 뭐든 구할 수 있고, 알면 알수록 갖고 싶은 것이 더 많아지는 곳이다. 현재 갖고 있는 빈티지 프라모델이나 희귀 음반, 로버트 프랭크 유르겐 텔러 스테판 쇼어 등 유명 작가의 사진집, 록밴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사인이 들어간 포스터, 데이비드 린치가 사인한 서류, <스타워즈> <인디아니 존스> <육백만불의 사나이> <마징가제트> 등의 액션 피겨, 솔 스타인버그의 펜선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한정판 종이접시, 앤디 워홀의 연필 드로잉 등등은 모두 이베이에서 구한 것들이다.
6. 수집품을 관리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
사실상 관리를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두 달에 한 번씩 울며 겨자 먹기로 방 정리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물건들이 쌓여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릴 물건과 보관할 물건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쓸모’나 ‘가치’라는 분류 기준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어서, 그의 기준에선 모두 다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결국 거의 대부분의 물건들은 버려지는 대신 어떻게든 집 안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는다. 그런 다음엔 잊어버린다.
7. 수집의 단점은?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안절부절못한다.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으려고 늘 신경을 곤두세우다보니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원하는 걸 손에 넣어도 갖고 싶은 게 또 생긴다. 절대 만족을 못한다. 결국 또 사게 된다. 나날이 돈 걱정이 는다. 결국 아내 눈치를 엄청 보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단점은 수집한 물건을 둘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다. 분명 갖고 있는 책인데도 필요한 순간에 찾지 못해 다시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중한 수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상자에 담아 지하실에 쌓아둘 수밖에 없다. 견적이 너무 많이 나와서 함부로 이사도 할 수 없다. 그 밖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단점들이 있을 것이다.
8. 그럼 수집의 장점은?
장점은, 딱 하나다. 간절히 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는 순간 천상의 행복을, 신이 된 것 같은 쾌감을 느낀다. 콜렉터라면, 오직 콜렉터들만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9. 왜 모은다고 생각하는가?
마감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그의 아내 선현경 씨는 진단했다. 마감에 몰릴수록 택배가 더 많이 온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냥 버리지 못해서 모인 것들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수집이란 추억을, 시간을, 기억을 모으는 방법이다.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사이보그009 피겨를 삼십 년이 지나 이베이를 통해 구하고 그것을 들여다보며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한다. 딸내미와 머리를 맞대고 스타워즈 <죽음의 별> 시리즈 레고를 조립하고 캐릭터들에 대해 수다를 떨면서 부녀 사이가 더 가까워진다. 프라모델을 사서는 조립하지 않고 꽁꽁 싸서 책장 맨 위에 올려두는 이유는, 나중에 나이 들어 할 일이 없어졌을 때 그것들을 조립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집은 초라한 인간의 삶에 활력을 주는 에너지이자 매 순간순간 소소한 것들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므로 그 수집품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것이든, 모으는 사람에게는 객관적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의 조각들이 되는 것이다.
10. 선현경, 수집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한때는 그녀 역시 플라스틱과 장난감을 좋아했다. 처녀 시절엔 장난감을 사랑하는 남자 이우일과 레고 에 관해 꿈결 같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프로’ 주부가 된 선현경은 이제 ‘수집’이라면 질색이다. 더 이상 집 안에 물건을 들일 공간이 없다. 책을 사려면 책장부터 사야 하고, 장난감을 사려면 진열장부터 마련해야 한다. 소소한 물건에 행복해하고 주식이나 부동산은 거들떠도 안 보고 사람보다 물건과 노는 걸 더 좋아하는 히키코모리 풍의 남자를 선택한 이상, 하는 수 없다. 어차피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