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 윤진화의 첫 시집을, 이처럼 짙은 붉음으로 선보인다. 등단 시 문학평론가 유종호와 시인 신경림이 입을 모아 “윤진화의 시가 가진 분방하고 건강한 상상력은 우리 시의 지평을 크게 확대할 것”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이제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첫 시집이 왔다.
문학동네시인선에 붉은 표지는 이미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짙은 붉음은 처음이다. 이 붉음을 특별히 윤진화를 위해 아껴왔다. 다른 누구도 이런 붉음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더 밝거나 더 맑거나 한 레드라면 몰라도, 흐르는 피의 색깔은 윤진화만이 지닐 수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하면, 데뷔 시 「모녀의 저녁 식사」에서 알 수 있듯이 윤진화의 여자들은 가슴 하나를 도려낸 아마존들이기 때문이다. 대지를 식탁 삼아 만찬을 즐기는 그녀들의 날카로움, 날렵함, 날것의 에너지는 붉다. 누군가의 입가로 붉디붉은 즙이 흐른다.
어쩔 수 없이 암컷, 여자, 그리고 여자 사냥꾼
아무리 달리 읽으려 해도 윤진화의 여성성은 만천하에 드러나버린다. 마치 “시장 좌판에 배 보이며 누운 암게”(「천수관음」) 같다.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계산하지 않아도 의도하지 않아도 두드러지는 모계의 진한 핏줄, 그 흔적들이 곳곳에 선하다. 세대를 거쳐 증폭되는 여성성은 종종 여전사, 마녀, 이브의 얼굴을 한다.
어머니, 유방암에 걸린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여
듣고 계신가요?
전사들이
우리의 밀림으로 몰려오는 소리
그 침묵의 소리들이요
……히잉! 어머니(「모녀의 저녁 식사」)
어머니의 꿈속에서 나는 참외다. 동그랗게 부풀어 터질 것 같은 참외다. (중략) 태몽을 펼치고 다시 들어오라 손 흔드는 어머니.(「두 개의 꿈」)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까마득한 어머니가,
일제히 팔 벌리고 나를 붙들었다
경계 없고 한갓지다(「천수관음」부분)
13층 아파트 난간에서 튕겨나간 계집, 두둥실 검은 하늘을 난다. 노란 보름달에 걸린 계집. 보습학원에서 돌아온 옆집 꼬마가 112에 전화를 한다. 우리 아파트에 마녀가 살아요. 우리 엄마가 마녀였어요. 그 찰나! 잘못했어요, 라는 주문이 틀렸는지 이내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마녀와 빗자루.(「21세기 마녀 되는 법」부분)
그러나 원래 있는 흔한 말들로 윤진화의 여성성을 설명하려든다면 부질없을 것이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원시에 가까운 에너지는 한 번도 재단된 적이 없다. 타자에게 왜곡된 적이 없다. 원형의 것 그대로 편견을 뛰어넘었다. 이것은 새로운 대안, 제3의 성이다.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이를 두고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중의 부정으로 다시 태어나는 소녀의 이미지”라며 “여자 사냥꾼”이라는 신선한 규정을 내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자 사냥꾼들은 존재의 정원을 가꾸기보다 숲과 들판으로 나가 무엇인가를 붙잡아 찌르고 찢고 죽이지만 그녀들이 단지 ‘남성화된 여성’인 것만은 아니”며, “마치 자기 자신을 찌르고 찢고 죽이면서 ‘새로운 여성’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맹수와의 공격적인 애무, 우주적 반죽을 다루는 리듬감
그렇다면 여자 사냥꾼들은 무엇을 사냥하는가? 사냥이 사라진 시대에 그들이 사냥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신화적 존재가 된 맹수다. 한때는 실체를 가진 두려움이었으나 이제는 희미해진 상징이다. 여자 사냥꾼들은 그런 맹수들의 살을 찔러 상처 입히고 피 흘리게 하여 다시 육체화시킨다. 맹수도 가만 있지 않고 여자 사냥꾼들에게 발톱을 세운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 찢고 물어뜯으며 한 피를 흘리는 것이다. 파괴적인 남성적 공격성과는 달리 윤진화의 공격성은 연금술적이다. 깊은 곳에 감추어진 것들을 갈고리처럼 끄집어낸다. 어느 순간 공격의 몸짓이 애무가 된다. 거듭되는 애무는 이내 출산의 파열로 치닫는다.
허공에서 휘이익, 한 바퀴 돌던 달이 날개를 펼친 매 대가리에 꽂힌다 깃털이 소녀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숲속 마을까지 비릿한 사냥꾼의 냄새가 술렁인다 허리춤에 사냥한 매를 단단히 꿰는 소녀, 매의 피가 소녀의 가랑이를 타고 흐른다(「초경(初經)」 부분)
당신의 몸에 내 꼬리를 잠시 박아두고 싶을 뿐이다. 오랫동안 정착하지 못할 빛이 어둠을 갉아먹는 방에서, 시시각각 당신의 눈빛에 의해 변하는 몸. 내 푸른 몸. 내 짙은 몸. (중략) 굽은 갈고리에 당신의 목을 꿰어 살고 싶지만 내 스스로 당신을 죽이지 못할 것 알기에 간다. 나는, 내 독은, 내 사랑은 당신을 죽일 만큼 강하지 못하다. 당신이 뒤척이는 것을 멈춘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다. 아무렇지도 않게 모래알 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기어간다. 당신의 살점이 붙은 꼬리가 천형(天刑)처럼 내 머리를 향해 점점 굽는다.(「초야(初夜)—전갈」 부분)
내 아버지는 호랑이다. —사냥꾼의 너덜해진 살점에서 붉은 피가 솟아난다. 피를 할짝할짝 핥으며 살점을 씹는다. 몸속 가득히 들어온다. 오지의 산맥을 뛰어다니던 젊은 사내가 들어온다.(「초야(初夜)—호랑이」 부분)
혈맹(血盟)이라는 말이 있다. 몸의 일부를 갈라 피를 섞으며 맹세한 굳은 관계, 그런 되돌릴 수 없는 관계를 맹수들과 맺고 있다. 엎치락뒤치락하다보니, 한 몸이 되었다. 이 돌연하고 아름다운 합체는 「동충하초」라는 시에서 “내 속으로 네가 조용히 들어오는 거야/ 달콤하게 웃으며 내 속으로 들어왔지 (중략) 완벽한 변이!/ 이 엄마는 할머니처럼/ 네게 나비의 날개 따위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데”라는 구절을 통해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여자 사냥꾼의 거친 동시에 농염한 손길은 잠들어 있던 것들을 깨우는데, 바나나 껍질을 벗기면 윙크하는 뱀이 나올 정도다. (「어느 날 바나나를 벗기는데」) 터치만으로 씨앗을 심고 잉태시킬 정도의 에너지에 홀리고 마는 것이다. 두려울 정도로 유혹적이다.
그녀가 내 붕알을 스치듯 건드렸어요
붕알이 갈라지며 호두나무가 쑥쑥 잎을 밀어내며 자랐거든요 (중략)
내 이불에서 마술처럼 여물지 않은 호두알 냄새 났잖아요
둥근 붕알을, 짙은 구름이 면도날처럼 가르던 밤(「원을 자르는 달 여인」 부분)
이 매혹적이고 강렬한 여자 사냥꾼들이 오늘날 어느 골목에 앉아 선지 해장국을 먹으며 “죽은피를 먹으며 맞는 아침은/ 생존의 아수라였으므로/ 울 만한 일은 아니었다”(「2005년 황혼에서 2012년 새벽까지」) 하고 읊조린다 해도, 그녀들 몸속의 피는 결코 굳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바람의 딸/ 사냥의 여신/ 그리고 당신의 목숨을 꿰어찬/ 검은 여자”이기 때문이다.(「새터 엘레지」) 눈물과 피로, 그것들이 굳지 않게 끊임없이 리듬을 타며, 여자 사냥꾼들은 반죽을 한다. 문학평론가 권희철이 “우주적 반죽”이라 말한, 새로운 존재들을 잉태시키는 이 꿈틀대는 반죽 속에 우리도 섞여들고 만다.
윤진화의 시집을 읽으면 독자들 역시 애무를 받는다. 간질간질하게 뭔가 움트는 느낌이 난다. 시집을 덮고 나면 뱀이, 매가, 호랑이가, 전갈이, 그 가죽을 모두 걸친 여자 사냥꾼이 눈을 맞춰올지도 모른다. 이 붉은 첫 시집에서 어떤 맹수가 깨어날지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시인의 말
누군가
이 시집을
볕 좋은 곳에 묻어주세요.
꼭 나처럼,
윤진화
책 속에서
초경(初經)
검은 숲에서 북소리 들려온다 짐승의 정강이뼈를 들고 북치는 봉두난발 소녀가 나온다 벗겨 말린 털로 버찌 같은 젖꼭지 가리고 솜털 솟은 아랫도리 숨겼다 소녀의 목에는 송곳니로 엮은 목걸이 걸려 있다 머리 위로 초생달이 떠 있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매 한 마리, 설화 가득 핀 나뭇가지의 잔설(殘雪) 떨구며 날아오른다 멀리 별똥별이 밤공기를 세차게 가른다 소녀가 달을 꺾어 손에 쥔다 둥 두둥 붉은 달이 떠오른다 유년의 숲속에선 사라진 달을 찾는 장작불이 타오른다 밤하늘을 숨죽이며 날고 있는 매가 머리 위에서 춤춘다 허공에서 휘이익, 한 바퀴 돌던 달이 날개를 펼친 매 대가리에 꽂힌다 깃털이 소녀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숲속 마을까지 비릿한 사냥꾼의 냄새가 술렁인다 허리춤에 사냥한 매를 단단히 꿰는 소녀, 매의 피가 소녀의 가랑이를 타고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