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신이 왜 그렇게 사는지 아십니까?
있지도 않았던 기억, 기원되지도 않은 희구.
…… 도로 돌이었다!
세상을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보다 실천적 의미의 몸으로 부딪쳐 행동해온 작가 오수연의 장편소설 『돌의 말』을 펴낸다. ‘돌의 말’이라는 제목에서 짐작되는 바와 같이 이 소설은 불가(不可) 속에서 이른바 가(可)를 상정하고 가(可)를 두드려보는 과정을 안팎으로 다단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이 ‘말’이란 것을 가지고서 말이다.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 그러나 진정한 제 말, 제 목소리의 본질로부터 억눌려 있는 우리들…… 이 소설은 말의 무화, 말의 진공, 이로 인한 갑갑증으로부터 출발한다. 하여 끌어들인 것이 바로 신의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신의 의지로 인간을 구원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닌,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들어올리는 말을 지칭하는 상징이다. 고로 소설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표출되는 낯선 목소리인 ‘방언’은 일상의 시간에 균열을 가함으로써, “기나긴 시간의 틈을 넘어 지금 이곳에서 빙의의 형식으로 발화되는 말들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 그리고 단단한 듯 느껴지는 일상의 법칙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를 깨닫게”(장성규) 해주는 데 쓰이는 적절한 도구임이 분명하다.
이 소설은 언뜻 보기에 평범한 일상 속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의 수다처럼 너무나 만만하고 익숙한 듯하지만, 실로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으며 한편으로는 참 낯설기 그지없다. 이유는 빤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평생을 질문하는 과정 속에 살다 가는 것처럼 이 소설 또한 끊임없이 말, 그 말에 대해 묻고 따지고 외쳐 부르는 데서 그 몫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내뱉고 있는 말의 근원 속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향방, 그 끊임없는 엇갈림과 끊임없는 갈팡질팡……
그러나 그 가운데 작가 오수연이 바라고 말하려던 바가 있지 않았을까. 각자 ‘나’라고 믿는 ‘나’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비롯되어 “나는 내가 아닐 수 있었다”는 지점까지 가닿아보는 일, 그렇게 ‘신의 말’과 ‘인간의 말’ 사이의 간극을 포착하는 과정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고장 나고 상처 입은 제 말을 버리고 진정한 제 말을 찾아가보는 일. 구원과는 사뭇 다르게, ‘말’을 사유로 사람이 제 스스로 자신을 들어올려보는 바로 그 실천의 선두가 바로 이 소설이 놓일 지점이 아닌가 싶다.
책 속에서
꿈을 깨고 나서야 자신이 꿈을 지켜보고 있었음을 안다. 꿈속의 자기를 꿈을 꾸는 자신이 지켜보고 있었으나, 꿈을 꾸는 동안에는 후자가 없는 것 같다. 꿈에서 깨어 그 자신을 의식할 때는 꿈속의 자기는 이미 없어져서 기억 속에만 있다. 둘은 엇갈린다. 제가 꿈에서 보았던 대상이 현실에서 나타났다는 정숙의 전화를 받고 선미는 오싹했다. 기억 속에만 있는 자기, 죽은 자신이 돌아왔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많이 들은 얘기이기도 했다. 꿈에 뭔가 나타나서 어떤 장소로 안내하기에 깨어나 거기 가보니 산삼이나 돌부처가 있다던, 옛이야기들.
-p50, 본문 중에서
추천 글
난감하다. 내가 들을 수 없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전하던 오수연은, 이제 그 너머 ‘돌’의 말까지 듣고 전하려 한다. 내가 들을 수 없었던 것일까, 들을 수 있음에도 듣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나와 너, 현실과 무의식, 인간과 자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이 말들의 혼돈이 내게는 너무 버겁다. 그러나 그 혼돈의 말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오수연의 소설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 고통스런 난감함을 통해 애써 외면하던 다른 말들을 경청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몫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마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말이 더이상 내게 낯선 언어가 아닌 것처럼, 이 소설을 통해 비로소 돌의 말을 들으려는 의지가 생성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는지도 모른다. 고통스런 난감함을 우회하지 않도록 만드는 힘이 그녀의 소설에는 충만하기 때문이다. _장성규(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이 소설의 인물들은 현실에서 신비의 영역으로 탈출 혹은 도피를 시도하다 도로 현실로 처박히기를 반복한다. 폴짝폴짝 뛰듯이. 나는 신의 말과 인간의 말 사이의 간극에 포착했다. 이 우스꽝스러운 반복을 그들이 고장 난 말로 제 말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그리고자 했다. 개인적으로는 마늘 냄새처럼 어느새 내게 배어 있는 한국 문화를 해석해보는 과정이었다. 어느 한곳이라도 접점이 있어, 독자들이 함께해줬으면 좋겠다.
-p310,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