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찌하여 이, 뵈지도 않는 길을 택하여 가는가?
-장석남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김종삼 선생님이 딸의 소풍을 따라갔다가 어느 무덤가에서 가슴에 돌을 얹고
누워 있었다던, 날아갈까봐 그랬다던 향기로운 에피소드가 문득, 생각나는
-「하문(下問)·2」 중에서
애초에 시로 태어난 자를 고르라 할 때, 아주 오래전 사람이 아닌 근래 다국적 말의 홍수 속에서 그 허우적거림을 실로 맵게 겪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 할 때, 단연코 맨 앞자리에 앉고 또 앉혀야 할 그이라면 일단은 장석남 시인이지 않을까 싶다. 연탄에 집게를 꽂아 연탄을 갈고 연탄불을 살릴 때의 그 조심스러움으로 일상에서 시를 살릴 때 후후, 그가 일으키는 불씨는 제 입김을 통한 것이 대부분이니 지금껏 우리말의 단련이란 그로 하여금 얼마나 달궈져왔겠는가.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스물다섯 해, 스물셋 말갛던 청년이 마흔여덟 ‘어둡는’ 중년이 되기까지 시를 모아 집을 삼은 것이 도합 일곱번째니 평균 3년하고도 절반마다 그는 시로 분한 저 자신의 분가를 지켜봤으렷다. 선 하나를 느끼는 데서 시작된 시가 곧 선 하나를 느끼는 데서 마무리됨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탓에 흔하디흔한 막대기조차 쓰다 버릴 일이 아니라 쓰다 심을 일로 몸을 써온 그, 라는 시의 타고남을 익히 알아온 까닭에 나는 그에게 먼저 고요와 도망에 대하여 ‘여쭙느니’,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를 앞에 두고 서다.
저물면 아무도 없는 데로 가자
가도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고요의 눈망울 속에 묻어둔
보석의 살들-이마 눈 코
깨물던 어깨,
점이 번진 젖, 따뜻한 꽃까지 다 어루어서
잠시 골라 앉은 바윗돌아 좀 무겁느냐?
그렇게 청매빛으로다가 저문다
결국 모과는 상해버렸다
-「저물녘-모과의 일」 전문
버릴수록 가져지고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게 세상살이의 이치라면 장석남의 시는 이미 그 일가를 이루었을 터, 이번 그의 시집은 작고 더 작아져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고요’라는 구멍 속에서 홀로이 노는 한 사내를 만나게끔 한다. 무쇠 솥을 사 몰고 올 때, 그것을 꽃처럼 무겁다 할 때, 그 속에 쌀과 수수와 보리를 섞어 안친 밥을 지어 우리들을 부를 때, 그를 어찌 시라 아니할까. 시로 그리 생겨먹은 것을.
그가 가진 특유의 섬세함과 유연성을 가장 정점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감히 자부하는 60편의 시가 3부로 나누어 담긴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강박적이리만치 열과 행을 꽤나 조여서는 더는 뺄 것도, 더는 넣을 것도 없이 콤팩트한 시를 우리 앞에 선보이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서 여서 일굽 일굽 일굽” 하듯 그만의 특유한 말법도 살아 있으려니와 두 줄 할 것을 한 줄로, 한 줄 할 것을 한 단어로 찍어버리는 데 선수가 되어버린 그는 말을 지우는 데 더 큰 말의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것을 알아버린 연유로 이렇게 씨 뿌리듯 툭툭 시를 뱉는다. 손으로 쓰는 시 그 너머에 입으로 부는 시라니. “아무 보는 이 없이 피는 꽃이 더 짙은 까닭은 아무 보는 이 없기 때문”(「물과 빛과 집을 짓는다」)이란 말인가.
이른바 더, 더, 가 아니라 덜, 덜, 을 향해 가는 비움과 침묵 속 여백과 공기의 팽팽함, 그로 풍만해지는 마음의 빈자리에 더욱이 아무나 앉히는 것은 결코 아닌 채로 시인은 빈 의자를 내놓는다. 그 일에 한생을 내걸 정도로 의자 따위에 작심을 하기도 한다.
어둡는데
의자를 하나 내놓으면
어둠 속으로 의자는 가겠지
어둡는데
꽃 핀 화분도 하나 내놓으면
어둠 속으로 잠겨가겠지
발걸음도 내놓으면 가져가겠지
-「망명」 부분
그래, 의자 따위라 함은 그가 눈으로 집고 손으로 들어올리는 ‘돌멕’과도 같이 흔하디흔한 것, 그만큼 사사로운 것. 의자는 따뜻하거나 찰 테고 의자는 단단하거나 부서지겠지만 의자만이 가진 의자만의 예민함을 감지하는 시인은 의자만이 내는 의자만의 소리를 받아낼 수 있는 고도의 청력으로 세상 만물의 들숨과 날숨을 엿들을 줄 알게 된 터, 예를 들어 “때 까만 메밀껍질 베개의 서걱임”(「가난을 모시고」)을, “옥수수밭의 수런거림과 두런거리는 살림을”(「옥수수밭의 살림」), “한밤 물미역 씻는 소리”(「물미역 씻던 손」)를, 그리하여 “흰 돌멩이 하나 들어다가 갓 풀린 개울물에 넣어”두고 “귀도 하나는 그 곁에 벗어”(「생일」)놓는 일 등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법문’ 아닌 소리가 또 어디 있으랴. 세상 모든 소리가 ‘법문’이 아니고 또한 무엇이랴. 결국 시인이 말하고자 함은 아마도 세상을 맞닥뜨리는 자의 어떤 자세란 데 있을 것이다.
수로에 외발로 서서 고개 움츠리고 비 맞는 왜가리
어떤 기다림도 잊고 다만 기다림의 자세만으로 생을 채우려 용맹정진하는 왜가리
나는 늦도록 깊고 습한 터널을 뚫는다
시큼하고 외로운 수로(水路)
-「수로(水路)에서」 부분
무심이라는 유심, 그 할 수 없음이라는 할 수 있음에 대하여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부드러운 완력 틈틈이 늘어진 미주알처럼 어쩔 수 없이 들키고 마는 무언가가 있다. 어머니, 늙은 어머니이자 아픈 어머니와 더불어 늙어가는 중년의 그에게서 언뜻언뜻 비치는 죽음의 잔상. 그러나 그는 이 또한 제 손에서 쥐었다 놓는 혼자만의 놀이로 다스릴 것이다. 그 안에서 충분히 돌려 빚은 경단처럼 말캉해진 시인은 그러려고 이토록 오래도록 품을 격으로 삼은 것이 분명하므로.
책 속에서
막대기로 연못 물을 때렸습니다
축대 돌을 때렸습니다
웃자란 엉겅퀴를 때렸습니다
말벌 집을 때렸습니다
사랑을 때리듯이 때렸습니다
헌 신발도 신은 채로 때렸습니다
밥솥도 밥그릇도 때렸습니다
어둠이 오면 어둠도 때릴 것이고
새벽도 소쩍새도 때릴 겁니다
하루를 다 때렸습니다
긴 하루 지나고 노을 물들면* 오늘도
아무 지나는 이 없는 이 외진 산길을
늦봄인 양 걸어내려가며
길에, 하늘에, 민들레 노란 꽃을 총총히 피워두면
이쁘다 이쁘다 하면서 올라오는 이 있겠지
그 말이 누군가를 막 때리는 말인 줄은 까맣게 모를 테지
여전히 나는 민들레 노란 꽃을 남기면서 내려가고 있을 거야
민들레 노란 꽃을 여럿 때렸습니다
* 전인권 노래에서.
-「어찌하여 민들레 노란 꽃은 이리 많은가?」 전문
작가의 말
마침 몸살이 와서 발은 만져보니 차디찬데 이마는 뜨겁다. 그 사이 몸뚱어리 전체는 속닥거린다. 지치긴 했어도 아픈 지경까진 오래간만이어서 찡그린 채 껌뻑거리며 누워 있으려니 회고의 길목이다. 아픔은 회고주의자로 몰게 마련이고 병은 때아닌 종교를 붙들게도 하는 게 이치라면 이치겠다.
뭐니 뭐니 해도 내 생에서 시경(詩境)으로 출타한 것이 인생의 큰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뭉뚱그려 제쳐놓는다. 하, 그게 스물다섯 해가 되었다니! 뭐 밥그릇 수를 밝혀서 미담 제조를 하려는 맘은 추호도 없으나 그간 건너온 징검돌들의 면모가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간신히 바닥에 발붙인 돌멕들이 지금껏 내 걸음걸이의 무게는 겨우 견뎠으나 다시금 되돌아가자면 그만 부스러지고 말 것만 같다. 천상 저편으로나 하나씩 더 놓으며 가야 하리. 만해가 한겨울 널따란 냇물을 맨발로 건너며 중간에서 이도 저도 할 수 없었다던 고초 이야기도 생각난다.
다 몸뚱어리가 쑥떡거리는 내용들이다.
나는 아직 어느 경계 안으로도 들어서지 못했다.
하긴, 출타는 들어서는 게 아니니까.
다행이다. 아프다.
2.
이렇게, 선(線) 하나를
긋고,
나는…… 나를…… 느끼고 싶다.
-인제 만해마을 서창(西窓) 아래 엎드려,
장석남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