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든, 언젠가, 사랑에 빠진다. 그 순간, 生은 중첩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여러 생을 사는 존재들이다. 현생 속에 전생(前生)의 나와 더 먼 생애의 내가 동시하고, 한 존재는 수많은 생애와 우주적 형상이 얽힌 운명이고, 그런 채로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회귀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 우리는 그런 존재이지만, 그런 줄도 모르던 것을 돌연 깨닫게 하는 게 사랑이다. 우리는 누구든, 언젠가 사랑에 빠지는데, 그 순간 생은 중첩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생과 사랑하는 사람의 생을 함께 겪기 마련이니까. 그것이 이 생에서 우리가 기억 못 할 전생을 겪는 방식이다. 세계의 틈에 놓인 존재를 사려하는 목소리로 작가는 기나긴 전생(全生)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끝없이 회귀하는 유랑의 일부인 동시에 전부인 이 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진심 어린 기도를 하고, 머뭇거리지 않고 누군가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라고.
_편혜영(소설가)
당신을 죽이고도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군요.
나는 죽지 않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시간이라는 강물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다. 물 위에 떠 있는 배는 한 자리에 머물고 있는 듯해도, 끊임없이 그 아래를 스쳐 흘러가는 강물은 붙잡아둘 수도, 더 빨리 당겨올 수도 없다. 언제나 같은 속도로 이 생을 지나쳐간다.
등단 삼십 년차, 길지 않은 시간, 인간의 편에 서서 그들의 고통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는 작가 정찬이 2004년 『빌라도의 예수』 이후 8년 만에 펴낸 새 장편소설 『유랑자』는 환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며, 영원을 견디지 못하는 형상에 대한 이야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결국 그래도 견뎌내야 할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1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지키러 예루살렘에서 서울로 가게 된다. 내겐 어머니가 두 명이다. ‘나’를 낳은 한국인 어머니와 네 살 때 헤어졌다.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된 어머니는 나에게 추억을 남기지 않았다. 덤덤히 짐을 챙기던 중 이브라힘의 이야기가 담긴 녹음기를 발견한다. 자신은 죽지 않는 존재라던, 하지만 이라크전쟁 속에서 죽어가던 아랍인 청년 이브라힘. 그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전생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그를 창으로 찔러 죽인 사람이 바로 ‘나’였다고.
#2
이브라힘의 이야기에는 십자군전쟁 시대의 생애가 담겨 있다. ‘나’는 십자군 사제였으며 이브라힘은 이집트 와지르의 기록관이었다. 그와 ‘나’의 운명이 이렇듯 휘감긴 것은 바로 예수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브라힘은 예수 시대에도 살았고, 십자군전쟁 시대에도 살았다는 것인가. 십자군 사제인 ‘나’는 그가 기록한 젊은 목수에 대한 이야기에 집착한다. 그가 평범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그의 기록은 과연 진실인가. ‘나’는 기록과 연관된 장소를 그와 함께 추적한다. 추적을 멈추면 생애가 곧 무너질 것처럼. ‘나’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그를 죽여야 했다. 진실을 위해 그가 ‘나’를 죽일 수 없다면, ‘나’가 그를 죽여야 했다.
#3
예수 시대의 이브라힘은 예수의 아이를 낳아 길렀던 여인이었다. 여인은 알았다. 그가 하느님에게서 온 분임을. 사람들은 예수의 정체를 기적을 통해 확인하려 했고 그를 향한 기대와 열광은 곧 멸시와 증오로 뒤바꼈다. 유랑자였던 예수는 거처 없이 떠돌다가 어느 과부의 헛간에서 지내게 되고, 곧 여인과 그는 서로의 일부가 된다. 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 평범한 목수로 살고 싶었다던 예수. 나병환자의 시신을 씻는 일로 제자들을 먹였던 예수. 그는 곧 부활 없는 죽음을 맞는다.
#4
무(巫)의 세계는 죽음을 그리워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나를 떨어뜨려놓을 수밖에 없었다던, 샤먼이었던 어머니.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는 넋굿을 통해 나는 혼령이 아닌 진짜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무당의 몸을 빌린 어머니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나’는 비로소 눈물을 흘린다. ‘나’ 안에서 홀로 울고 있던 아이와, 어머니의 빈자리와, ‘나’는 비로소 작별한다.
지금 여기에 내가 있는 것은…… 당신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내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랑자』는 환생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 저는 환생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저에게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환생입니다. 『유랑자』의 주인공도 환생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전생에서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유랑자』는 ‘현생의 시간’과 ‘전생의 시간’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니까 『유랑자』는 ‘삶의 유랑’에 대한 입체적 이야기입니다. 이 입체적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질문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죽음에 대해 질문을 품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유랑자』는 저의 작품집 『희고 둥근 달』에 수록된 단편 「낙타의 길」에서 발아한 작품입니다. 새롭게 발아한 작품이 새로운 독자와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유랑자』를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유랑자’가 되어 삶의 새로운 풍경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시기를, 기원합니다._‘작가의 말’ 중에서
모두가 유랑하는 자들이다. 0년대의 세계, 메시아라 불린 자의 유랑이 있고, 1000년대의 세계, 그의 흔적을 좇는 사제와 역사가의 유랑이 있으며, 2000년대의 세계, 제 목숨의 뿌리를 더듬는 한 혼혈아의 유랑이 있다. ‘환생’이라는 장치로 이 셋을 연결한 것이 이 소설 득의의 발상이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시공을 초월하는 근본물음이라는 뜻이리라.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유랑의 서사에 내장돼 있는 실천적 의의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무속신앙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각 종교가 내놓은 가치 있는 지혜들을 하나의 근본물음 속으로 끌어안으면서 인류가 2천년 동안 저지른 최악의 종교 전쟁들에 통렬한 항의를 제기할 때, 이 소설의 비교종교학은 국제정치학이 된다. 이런 일을 이만한 규모와 심도로 해낼 수 있게 되기까지 이 작가에게는 또 얼마나 많은 지적 유랑이 필요했을까. 삶의 의미를 어떻게든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이 무서운 의지 앞에서 나는 소설이 여전히 사유의 가장 뜨거운 형식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안도한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 145×210 | 344쪽
* 값 12,000원
* 초판 발행 | 2012년 3월 10일
* ISBN 978-89-546-1728-4 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