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를 읽고 쓰는 것은 제 안의 어린아이와 만나는 일
동시집『돌멩이가 따뜻해졌다』를 출간한 오인태 시인은 새 책을 내는 소감이 남다르다. 그는 교대 졸업 후 발령을 받기 전 임시 교사로 떠돌아다닐 때 동시와 동화 창작에 몰두한 이후, 한동안 어른을 위한 시 외에는 작품을 쓰지 못한 채 지냈다. 어린이문학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오랫동안 살아왔음에도 어린이들의 마음을 잘 몰랐다고 고백하는 시인은, 대학원에서 어린이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처음으로 저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맨 ‘어린이’와 ‘동심’이 바로 자신 안에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때부터 오인태 시인은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어린아이를 불러내어 그와 자주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울고 웃었다. 그리고 비로소 즐거운 마음으로 동시를 하나하나 적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돌멩이가 따뜻해졌다』는 어른이 된 시인과 그 안의 변함없는 어린아이와의 만남과 화해의 기록인 셈이다.
어린이들의 감정과 상황을 대변하는 동시
『돌멩이가 따뜻해졌다』는 일상에서 아이들이 느낄 법한 희로애락을 그들의 눈높이와 입장에서 표현하고 있다. 슬픔이나 어두움처럼 부정적인 감정들을 결여한 표백된 동심이 아닌, 비록 어리지만 엄연한 한 인격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심정이 담겨 있다.
엄만 내가 동생과 다툴 때는
“언니가 돼 가지고 싸다 싸.”
오빠와 싸우다 쥐어박혀 울 때는
“오빠한테 대들기나 하고 맞아도 싸다 싸.”
이래도 싸고 저래도 싸고
나는 어찌하면 좀 비싸지나?
-「싸다 싸」 전문
오인태 시인의 동시 속 아이들은 착하고 순하기만 한 아이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반항하거나 체념하지만도 않는다. 어른들의 허점을 짚으면서 모난 상황을 유쾌하게 해소할 수 있는 탄력성을 지닌 아이들이다. 관찰용 풍뎅이 날려 보낸 일로 벌을 세우거나, 뚱딴지같다고 면박을 주기 일쑤인 선생님들에 대한 “째려봄”과 “유머”도 잊지 않는다(「풍뎅이처럼」,「뚱딴지꽃」).
선 자세도 앉은 자세도 아닌
일곱 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학교엘 간다.
(중략)
일곱 시에 집에 돌아와
선 자세도 앉은 자세도 아닌
일곱 시 시침의 자세로
아무도 없는 식탁에서
엄마가 아침 일곱 시에 차려 놓은
저녁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식구들이 오기 전에 잠이 든다.
(중략)
선 자세도 앉은 자세도 아닌
어정쩡한 일곱 시
내게는 일곱 시밖에 없다.
-「일곱 시」 부분
『돌멩이가 따뜻해졌다』를 읽다 보면 요즘 아이들의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처럼 생긴 일곱 시의 시곗바늘 모양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부유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보여 준다. 꽉 짜인 숨 막히는 일과 속에서 느끼는 “학교 갈 때는 집을 메고 가고” “집에 올 때는 학교를 메고 오는” 듯한 부담감을 표현하는 동시도 눈에 띈다(「달팽이」). 아이들의 외로움이 도시 생활 속에서 더욱 강화되어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도 아파트 “열쇠를 넣기 전에 초인종부터 누르”고 보는(「아파트 문 열기」)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오인태 시인은 아이들이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머릿속 관념으로서의 어린이가 아닌 살아 있는 아이들의 삶을 지켜본 덕분일 것이다.
‘현실’이나 ‘삶’이라는 단어는 언뜻 ‘동심’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동심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 세계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인태 시인은 현실과 동심을 분리시키지 않고, 아이가 처해 있는 상황을 그리면서 자연히 그 안에 담긴 어린이들의 마음을 보게 이끈다.
백화점 종이가방은
백화점을 나와서도
뻐기면서 걸어 다니고
재래시장 까만 비닐봉지는
집에 와서도
얼른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래도 오늘 저녁
전등도 없는 우리 집
녹슨 가스버너엔
일 마친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싸온
고등어가 환하게 끓고 있다.
-「검은 비닐봉지 속」 전문
그러면서도 어두운 방을 밝히는 “환하게 끓고 있”는 “고등어”의 미덕처럼, 무채색의 현실을 밝히는 작은 희망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는 장마가 끝난 후 집집마다 접시를 햇볕에 내놓고 말리는 광경을 보고 마치 ‘접시꽃’이 핀 것 같다고 말한다. (「접시꽃과 해바라기」) 자신은 매일 양은냄비에 라면만 끓여 먹었지만 아이에겐 이 상황이 슬픔이나 서러움의 감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노란 양은냄비는 접시꽃밭 사이의 ‘해바라기’라고 생각하는 순수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인은 작은 생명체와도 마음을 나누면서 어린이들의 괴로운 마음을 달래 주기도 한다. 화자가 학교 연못가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소금쟁이 한 마리에게서 다리가 불편해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보는가 하면(「소금쟁이 한 마리」) “시험 못 쳤다고 내쫓”긴 어린이가 “쥐 못 잡는다고 집에서 쫓겨”난 고양이와 교감을 나누며 상처받은 마음을 서로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야옹」) .
자연과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은 동심과 닮아 있다
햐,
요것 좀 봐라.
조그만 돌멩이 밑에
지렁이 한 마리
노란 새싹 하나
몰래 살림을 차렸다.
누가 볼까 봐
얼른
돌멩이를 닫았다.
-「돌멩이 밑」 전문
오인태 시인은 제 안의 아이와 대화하며 한껏 자유롭게 들과 산을 누빈 모양이다. 세상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낯설게 보는 것을 즐기는 시인들은 호기심 넘친다는 면에서 본질적으로 아이들과 닮았다. 어쩌면 동심은 나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존재들에게도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와 세밀한 눈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규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심결에 지나치기 쉬운, 길가에 놓인 돌멩이 속을 궁금해하며 슬쩍 한번 들어 보는 것, 그러고는 그 속에 있는 지렁이가 불편해할까 봐 얼른 돌멩이를 닫는 귀여운 행동은 읽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썩어 가면서
후끈후끈 뜨겁다.
지푸라기들끼리 끌어안고
더운 김을 낸다.
저 힘으로
나무와 풀들을 밀어 올리겠지.
-「거름의 힘」 전문
풀이 썩으면 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오인태 시인은 지푸라기들이 서로 끌어안고 더운 김을 내고 있다고 상상하고 그것이 결국 나무와 풀들을 밀어 올리는 원동력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연의 조화를 좀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자연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길 바라는 시인의 바람이 이런 시들을 낳았다. 한편 나는 아파트 위층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데 아버지는 죽은 고향 사람들 무덤까지 전부 헤아림을 신기해하는 「성묘」등과 같은 시에는, 선조들의 정(情)의 문화를 어린 세대에게 전하고픈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동심을 살찌우는 정직하고 건강한 밥상
『돌멩이가 따뜻해졌다』의 해설을 쓴 김은영 시인은 혹시 우리 동시계가 새로운 감각과 소재를 찾는 노력에 비해 정작 어린이들의 생활 정서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녹여내려는 고민은 부족하지는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