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와 비극에 대한 한 편의 트로이메라이
정철훈의 이력은 독특하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고, 오랜 기간 러시아에서 유학하며 외무성 외교아카데미 역사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러다 1997년에 『창작과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와 네 권의 시집을 펴내면서 시인으로 살았으며, 세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문학기자로 활동중이다. 조금 바꿔 말하면 그는 다방면으로 문학에 몸담은 사람이고, 러시아에서의 유학 생활과 역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그의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네번째 장편소설 『모든 복은 소년에게』는 그러한 그의 특장이 고스란히 담겼다.
정철훈 작가는 분단과 이산이라는 주제를 정통 리얼리즘으로 다룬 첫 장편소설 『인간의 악보』을 시작으로 전쟁의 상처와 주둔한 외국 군대의 폭력성 속에서 희망의 길을 제시하는 『카인의 정원』을 거쳐 한국 여성으로 러시아혁명의 한가운데서 활동했던 김알렉산드라의 열정적인 삶을 그린 『김알렉산드라』까지, 주로 역사 속에서 상처 입은 개인의 존엄성과 이념이 빚어내는 갈등에 천착해왔다. 재소한인 강제이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모든 복은 소년에게』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이 작품은 단순히 역사의 사실을 기록한 것 이상의 특별함을 가진다.
『모든 복은 소년에게』는 강제이주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시간의 비가역성에 대한 소설이다. 시간의 여러 지층에 깔린 존재들을 현재로 불러내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사라진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시간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이 빚어낸 부조리와 비애만이 남는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1937년 재소한인 강제이주에 대한 연구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통과하여 타이핑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아들을 찾기 위해서 이주비용 500루블을 줄 것을 청하는 한 아버지의 청원서를 발견한다. 이후 이주 과정에서 사라진 그 소년 이미지는 주인공을 떠나지 않는다. 급기야 주인공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함께해달라는 지도교수의 제안을 뿌리치고 학술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소년의 이주 경로를 따라 떠날 것을 결심한다. 그 여정에서 몸에 자력이 생겨 모든 쇠붙이가 달라붙게 된 알마티의 재소한인 빅토르, 우연한 만남으로 짧지만 불꽃같은 사랑을 나눈 타슈켄트의 타냐와 아브람체보에 사는 타냐의 할아버지를 만나는데, 이들은 모두 살던 곳에서 내쫓겨 강제로 옮겨진 이주민이자 그들의 후손들이다. 그들과의 만남 속에서 주인공이 가졌던 소년에 대한 강박증적인 집착은 서서히 사라진다.
나는 모스크바의 낯선 곳에서나마 멀쩡히 숨을 쉬고 있고, 세월의 저편에서는 김씨의 세 살 난 딸 올가가 강제이주 열차에 실려 화물칸의 차디찬 마루짝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랄 해 구역으로 갔다는 아들이 살아 있다면 지금쯤 팔순에 이르렀을 것이고 편지를 쓴 김이라는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을 것이며 이주용 자금 500루블은 결코 지불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건들을 넘기면 강제이주 열차가 지금도 중앙아시아 어느 불모지를 향해 달리고 있고 철도 연변에 피어난 잡풀더미가 기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김씨의 아들은 생명을 부지했다 해도 사막에 피어난 잡초처럼 평생 동안 굶주리고 목말랐을 것이며 직사광선이 그 아이의 머리 위에 쏟아지면서 피부는 검게 타들어갔을 것이고 사막의 인종처럼 거칠게 변해갔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목이 메어왔다. 소년의 졸린 듯 감기는 두 눈과 낡은 옷에 감싸인 연약한 두 어깨와 몸속에서 일렁이는 피 묻은 절규 같은 게 문서를 읽는 행간 사이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소년의 그을리고 지친 얼굴과 세 살 때 죽은 아이의 이미지가 아무리 내 시선에 와 매달리고 있다고 한들,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밀해제문서들은 내게 과거는 결코 바로잡을 수 없다는 좌절감과 무력감을 안겨주었다. (pp. 30~31)
처음엔 내 슬픔의 연원을 찾아간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명분은 퇴색했지요. 나는 역사의 희생자에 대해 기록하지 않는 현실이 가증스러웠어요. 그러다 할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나의 소년은 내가 찾은 문서 위에서 성장을 멈추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년은 아랄 해에서 살인자가 됐을 수도,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서 여생을 보냈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더라도 그건 내가 찾는 나의 소년임에 분명할 겁니다. 나에게 있어 소년은 성장하지 않는 하나의 그리움과 같았는데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내가 찾는 건 결국 소년의 후생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p. 194)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현실에서 과거를 좇는다. 이 소설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바깥에서 떠도는 억눌린 그림자들이 있을 뿐이다. 정철훈의 서정적인 문체와 탄탄한 서사 속에서 이러한 역사의 비극과 그 안의 멜랑콜리가 생생하게 와닿는다. 정철훈이 가진 힘이다.
이 작품이 특히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이야기가 작가가 실제로 경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러시아에서의 오랜 유학 시절의 경험이 고스란히 작품 안에 녹아 있어 생기를 부여한다. 독자들은 소련 해체 이후 변혁이 느린 러시아 학계를 반영하며 가장 보수적인 인물로 상징되는 견유학파와 블라디미르 교수를 통해 1990년대 러시아 모스크바 학계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고, 시트에 피와 고름이 그대로 묻어 있는 등 열악하기 짝이 없는 모스크바의 병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독서 경험은 작품 속으로 몰입을 높이는 데 한몫한다. 하여 소년의 모습을 좇아 알마티와 타슈켄트를 다니며 역사강박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독자들도 어느새 혹독한 추위 속에 어딘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기차에 실려 러시아를 떠도는 강제이주 열차에 몸을 실은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를 알고 있는 독자라면, 정철훈의 이 작품을 읽는 내내 - 정확히는 그 첫번째 문장에서부터 - 강하게 드리워진 제발트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작가 자신도 제발트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실을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정철훈, 그도 또 한 명의 알려지지 않은 제발디언이란 말인가?) 모든 독자는 소설을 읽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모든 독자는 소설을 선택하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아름다운 아포리즘이 필요하다거나 작가의 자의식 가득한 문장의 향연에 감동받고 싶다거나…… 하지만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스토리를 따라가는 즐거움을 제외할 수는 없으리라. 제발트의 경우 나에게 그것은 『제발트의 길Sebald-Weg』이었고, 정철훈의 『모든 복은 소년에게』를 읽을 때는 -독자에 따라서는 이 책을 강한 역사의식의 문학적 발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 중앙아시아 스텝 평원의 지도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도가 필요한 문학작품을 사랑하는 편이다. 구성은 의도된 듯이 단조롭지만, 풍부하고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진술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소설에 색채를 부여한다. 멜랑콜리와 비극에 대한 한편의 트로이메라이.
_배수아(소설가)
● 작가의 말
초고를 쓰는 데는 두 달 남짓이었다. 2011년 여름과 가을 사이. 나는 다른 시간대로 번져들고 있었다. 미래로는 갈 수 없되 과거로는 얼마든지 번져들 수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을 주었던 게 분명하다. 이상한 일은 내가 살아온 시간에 타인의 시간이 섞이면서 과거가 재구성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나섰는데 결과적으로 타인이 되어 살고 있는 나를 만난 격이다. ‘낯선 나’의 정체는 소설 속 소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 자신이면서 타인, 타인이면서 나 자신인 소년은 전존재가 되어 과거 속에 살고 있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과거로 유랑한다. 지난 9월, 나는 만주 일대를 다녀왔지만 만주에서 돌아온 내가 있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내가 있다. 삶이 계속될수록 유랑도 계속되고 낯선 타국, 낯선 거리에 버려두고 온 내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소년이 과거에서 정지 상태였다면 그것은 외부의 힘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의 힘이 가해질 경우 소년은 다시 유랑을 계속하게 된다. 문학이란 정지된 시간에 힘을 가해 운동성을 부여하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독일 작가 W. G. 제발트(1944∼2001)의 장편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역시 정지된 시간에 운동성을 부여한 작품이다. 소설엔 네 살 때 혼자 영국으로 보내진 프라하 출신 유대 소년이 등장한다. 제발트가 시간의 저편에 빛바랜 듯 남아 있는 역사의 심층을 오늘의 시간 위에 불쑥 올려놓았듯 나 역시 잃어버렸던 역사의 한 장면을 복원하고 싶었다. 소설의 첫 문장을 『아우스터리츠』의 첫 문장에서 따온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1990년대 모스크바 유학 시절에 찾아다니던 아르히프의 비밀해제문서에서 막 튀어나와 숨 쉬던 소년. 나는 소년을 떠올리며 시를 끼적이기도 했다.
모든 복은 당신께
타슈켄트 촐수 호텔 앞에서 어깨를 스치고 사라진 당신
곰삭은 젓갈 냄새를 풍기던 당신은 아랄 해의 늙은 뱃사람이었다
한번 나가면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돌아오지 않는 출항
우즈베크인 선장이 흔들어대는 뱃전의 종소리를 들으며
당신은 어깨에 그물을 짊어졌던 것이다
어촌계 게시판에 압정으로 박힌 전보엔 단 두 줄
1937년 11월 극동 조선인 728가구 아랄 해 도착
거주지가 전무하므로 확보된 모든 천막을 투입할 것
그날 이후 당신은 지상의 복을 찾아 헤매는 어린 어부였으며
그물을 끌어올리거나 생선을 궤짝에 주워 담던 더벅머리 소년이었다
당신은 사마르칸트에도 부하라에도 있었다
다락방에도 계단참에도 복도에도 호텔 앞 부랑자 무리 속에도 당신은 있었다
때때로 현관문을 열고 나서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몽당 빗자루에게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생기듯
신의 뜻으로 당신의 실체가 숨어 있다 해도
그 마음으로 우리는 어깨를 스쳤던 것이다
자오선도 타버릴 것 같은 아랄 해에서
당신이 평생 그물질로 건져낸 것은 오직 태양
뜨거운 철선 위에서 보면 태양도 녹슬고 있었다
발바닥이 벌겋게 익어가는 철선 위에서
그물코에 찢긴 손가락을 잘라내야 했을 때
당신은 붉은 초승달에 코란을 걸어놓고 기도했다
-바다가 다 증발해버렸으면
그렇게 당신은 늙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
고향을 만들기 위해 자식을 낳았다 해도
무참하고 허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걸 버렸어야 했다
피를 끊었어야 했다
뼈아픈 후회로 인해 당신에게서 짠 냄새가 나는 것이다
이제 늙은 당신
당신이 파란 눈의 손자가 갖고 놀던 실 꾸러미에 발목이 감긴 채
좁다란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져 임종을 맞는다 해도
당신은 아무도 원망할 수 없다
살아온 자취가 실타래처럼 당신 발목을 감은 것이니
아랄 해가 당신의 저주를 받아 사라지고 있다 해도
당신은 아랄 해의 또다른 현현이어서 언제나 바다 냄새를 풍긴다
오래전 타슈켄트에서 땟국물 도는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 곁을 스쳐가며 눈매를 번뜩였을 때 사막의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가 소설을 견인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시를 쓴 게 2011년 봄이었으니, 나는 시 한 편을 써놓고 소년이 내게 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소년과 마찬가지로 소설 속 블라디미르 교수 역시 실존 인물이다. 그는 내 지도교수였으며 2010년 말 모스크바에서 별세했다. 이래저래 20년 만에 꺼내든 유학 시절의 비밀해제문서엔 나와 토론을 벌이던 그의 필적이 남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하여 만약 역사라는 거인에게 남은 복이 있다면 비밀해제문서에서 튀어나온 불귀의 존재인 소년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다. 모든 복은 소년에게!
2012년 가을
정철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