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유령들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애도
그리고 따뜻한 호명
『문학동네』 편집위원이자 군산대학교 교수인 류보선의 네번째 평론집이 출간되었다. 2006년 출간된 『또다른 목소리들』 이후 6년 만에 펴낸 이번 평론집에는 2006년부터 2012년 올해까지 저자가 발표한 평론 25편이 묶였다. 1989년 데뷔 이래 현장비평가로 활발한 활동을 해온 류보선은 당대의 주요한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신인과 주목해야 할 문제적인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게 읽고 애정 어린 글을 쓴다. 또한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하게 짚어봐야 할 지점들과 새롭게 형성되는 지형도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서 지젝이 라캉에 기대어 “당신은 항상 두 번 죽는다”라고 말한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상징적인 죽음과 실제적인 죽음 사이에 있는 유령의 존재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저자는, 뒤늦게 도착한 편지처럼 도처에서 유령들의 출몰을 경험한다고 고백한다. “상징적으로는 죽었는데 실제적으로 살아 있는 현존재들, 실제적으로는 죽었건만 아직 상징적으로 죽지 못한 실존들, 상징적으론 살아 있으나 상징적 질서 그것대로의 삶이어서 실제적인 삶이 무의미한 속물들, 그것도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도 인정받지 못한 유령들”의 방문은 저자에게 “때로는 살아 있는 과거를 되짚어주기도 했고, 처참한 현재의 ‘오감도’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그것이 아니면 살아 있는 미래를 증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만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라는 유령을 만난 저자는 뒤이어 한국문학의 유령들과 차례로 만나게 된다. 이를테면 “저 멀리는 『탁류』의 유령적 주체들로부터 박범신, 편혜영, 이기호, 김언수 등의 비존재들을 거쳐 윤성희의 유령들” 같은. “어떤 것들은 분노하고 있었고, 또 어떤 것들은 즐겁게 놀고 있기도 했”으며 “또 어떤 것들은 살아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기도 했다.” 이 평론집에 실린 글들은 어떻게 보면 “이 여러 유령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그들을 애도하거나 문맥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제1부 근대 이후와 유령들의 도래>에서는 김훈 소설 전반을 아우르는 글을 시작으로 윤성희 장편 『구경꾼들』, 박범신 장편 『고산자』, 신경숙 장편 『엄마를 부탁해』, 김영하의 작품들, 이응준 소설집 『약혼』, 이기호와 편혜영의 소설, 천운영 장편 『잘 가라, 서커스』에 대한 심도 있는 작품론을 만날 수 있다.
<제2부 힌국소설의 새로운 발명품들>에서는 한국소설사의 또다른 변종으로 배명훈을 호명하고 2010년의 한국소설 전반을 짚어볼 뿐 아니라, 배지영 소설집 『오란씨』, 정철훈 장편 『카인의 정원』, 김언수 장편 『캐비닛』, 윤영수 연작장편 『소설 쓰는 밤』가 한국소설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되새긴다.
<제3부 한국소설의 정점들>에서는 한국소설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들을 만날 수 있다. 최인훈의 수필, 이청준 소설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박완서의 「엄마의 말둑 1」, 채만식의 『탁류』론이 그것이다.
<제4부> 또다른 근대와 한국문학의 유령성>은 한국문학의 민족 로망스에 대해 살펴보고, 최근의 친일문학과 한국계 미국 작가들의 소설, 1970~80년대 자유주의 소설, 그리고 『현대문학 수상작품집』의 의미를 탐색하는 글들로 이루어졌다.
여기 이 책에 묶인 대부분의 글들은 한국문학에 도래한 유령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그 각각의 유령들 속에 담긴 진리 내용들을 맥락화하고자 씌어진 것들이다. 나름대로 한국문학의 유령들을 계열화하거나 한국문학의 자체의 유령성을 규명하려 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러한 의도가 이 책 구석구석까지 관통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의 유령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한국문학의 유령들에 대한 관심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생긴 까닭이다. 여행이 끝나자 뒤늦게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였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이 책은 아쉽게도 한국문학의 유령들에 관한 완성된 책이 아니라 그것을 위한 서론 성격의 책이 되는 셈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한편으로 아쉬워서 힘이 나기도 하고 의지가 솟기도 한다. 빠른 시간 안에 한국문학의 모든 유령들을 계열화되고 계보화한 상태에서 만날 수 있기를!
_「책 머리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