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이십칠 년 전이 있었듯이,
누군가 이 책을 읽으며 이십칠 년 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기쁨이겠다.”
등단 27년, 여섯 권의 소설집, 일곱 권의 장편소설, 그리고 짧은 소설과 산문집. 그사이 전 세계 독자들과 함께 읽게 된 신경숙의 소설. 그 첫 시작인 『겨울 우화』가 새 장정으로 선보인다.(고려원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이 책은1998년, 문학동네에서 『강물이 될 때까지』로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그 첫 이름을 얻었다.)
이제는 한국문단을 넘어 해외에서도 널리 읽혀지는 작가 신경숙의 첫 소설집 『겨울 우화』는, 작가의 도저한 문학세계의 뿌리이지 원류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책이다. 삶의 밑바닥까지 맑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여린 감수성과 서정적인 문체, 가슴 속살 깊이 박아두려는 애절한 사랑의 무늬들, 시적인 문체로 문체 미학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끌어올린 작가, 신경숙.
쓸쓸하고 애잔한 삶의 밑그림을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이며, 시리도록 아름다운 문체로 표현하면서 시적 상징으로 가득 찬 언어 구사를 통해 일상의 결핍을 극복할 수 있는 문학적 풍요의 공간을 제시하고 있는 신경숙 소설은 우리 문학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 할 것이다.
『겨울 우화』는 이와 같은 신경숙 소설의 특징이 모두 담겨 있는 그녀의 첫 소설집으로, 책 속에는 소설 장르에 새로운 예술성을 부여함으로써 단편 미학의 전범을 낳았다고 평가받은 초기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1990년 그 가을, 신경숙을 처음 만난 독자들은, 그사이 이십여 년을 그녀와 함께해왔다. 소녀는 아주머니가 되었을 테고, 그때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 다시 처음부터 그녀를 읽어 앞으로 또 그녀와 함께할 것이다. 이제, 또다시, 그녀를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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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은 흔히 그 서정적인 문체로 ‘시적’인 소설가라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실은 어느 특정 대목이나 묘사의 서정성보다 ‘상징’의 신축 섬세한 구사를 포함하여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마치 시인이 단순히 ‘산문적인 의미’뿐 아니라 연과 행의 구조, 운율, 비유, 상징 등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듯이―최대한으로 활용한다는 뜻으로 ‘시의 경지’를 추구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_백낙청(문학평론가)
신경숙에게 있어서 글쓰기라는 ‘보루’는 흘러가는 시간의 위협 속에 놓인 ‘나’를 담는 장소 혹은 숨기는 장소이다. 신경숙만큼 작가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깊고 넓게, 그리고 빈번히 작품 속에 수용, 용해, 변용식키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작가와 체험 사이의 관계는 “보바리 부인은 나 자신이다”라고 강조한 플로베르의 경우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다.
_김화영(문학평론가,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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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우화」는 내 등단작품이다. 85년 겨울의 일이니 27년 전의 일이다. 1985년 가을에 광화문 우체국에서 펀치를 빌려 원고지의 구멍을 뚫던 생각이 난다. 그 시간에 누군가 태어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스물둘이었고 지금은 오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쓰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두렵다. 하지만 어느 상황에서나 쓸 수 있었으므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를 ‘저기’까지 가게 할 것 또한 내가 글을 쓴다, 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안도한다. (……)
누군가 이 책을 읽으며 27년 전이 있었듯이 27년 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기쁨이겠다.
_3판 작가의 말 중에서
■ 차 례 ■
● 겨울 우화 ‥‥‥‥‥‥‥‥‥‥‥‥‥‥‥‥007
● 강물이 될 때까지 ‥‥‥‥‥‥‥‥‥‥‥‥077
● 밤길 ‥‥‥‥‥‥‥‥‥‥‥‥‥‥‥‥‥‥ 111
● 조용한 비명 ‥‥‥‥‥‥‥‥‥‥‥‥‥‥‥145
● 聖日 ‥‥‥‥‥‥‥‥‥‥‥‥‥‥‥‥‥‥ 173
● 初經 ‥‥‥‥‥‥‥‥‥‥‥‥‥‥‥‥‥ ‥201
● 황성옛터 ‥‥‥‥‥‥‥‥‥‥‥‥‥‥‥‥ 267
● 지붕‥‥‥‥‥‥‥‥‥‥‥‥‥‥‥‥‥‥‥295
● 등대댁 ‥‥‥‥‥‥‥‥‥‥‥‥‥‥‥‥‥ 323
● 어떤 실종 ‥‥‥‥‥‥‥‥‥‥‥‥‥‥‥‥353
● 외딴 방‥‥‥‥‥‥‥‥‥‥‥‥‥‥‥‥‥‥379
● 해설 |황종연 _현대적 실존과의 접촉‥‥‥‥ 407
● 작가의 말 ‥‥‥‥‥‥‥‥‥‥‥‥‥‥‥ 432
▶ 신경숙 |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스물두 살 되던 해인 1985년 중편 「겨울 우화」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받았다.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방』 등을 잇달아 출간하며 신경숙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리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모르는 여인들』을 출간하며 작품세계를 넓혀왔다. 33개국에 판권이 계약된 밀리언셀러 『엄마를 부탁해』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마존닷컴의 ‘올해의 책 베스트 10’(문학 부문)에 선정되었고, 각국 언론의 호평 속에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이외에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 『딸기밭』 『종소리』,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짧은 소설을 모은 『J 이야기』,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네 슬픔아』, 일본 작가 쓰시마 유코와의 서간집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받았고, 『외딴방』이 프랑스의 비평가와 문학기자 들이 선정하는 ‘리나페르쉬 상(Prix de l´inaperçu)’을, 『엄마를 부탁해』가 한국문학 최초로 ‘맨 아시아 문학상(Man Asian Literary Prize)’를 수상했으며, 2012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임명되었다.
* 초판 발행 | 2012년 12월 20일
* ISBN 978-89-546-1995-0 03810
* 145*210 | 436쪽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