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여중 황매화 울타리 속에
도둑고양이 몇 마리 산다
남은 밥 갖다주고
생선 대가리도 갖다주었다
나만 나타나면 여기저기서
야웅야웅 새끼 고양이들
두 눈 반짝이며 기어 나온다
_「고양이 엄마」 전문
손녀손자와 함께 찾아온 시의 씨앗
고희에 이르러 펴낸 첫 동시집
시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고희를 지난 시인의 눈은 아빠를 기다리는 땅속 아기개미에게로 닿고, 귀는 환히 열려 잘생긴 애 앞에 서면 가슴이 뛰는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송홧가루로부터 100년 뒤의 소나무를 내다보는 혜안과, 사랑하는 대상을 저만치 놓고 바라보는 여유로움이 있다. 인자한 미소를 띤 시인의 시라서일까. 아니면, 일흔에 닿아 쓴 시라서일까. 시의 품이 다정하면서 든든하다.
강정규 작가는 시보다 먼저 동화와 소설로 이름을 알렸다. 74년 『소년』에 동화, 75년『현대문학』에 소설을 추천받아 등단했고, 대한민국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십오 년 넘게 문예잡지 『시와 동화』의 발행인으로 문학텃밭을 일궈 왔고, 젊어서는 야학 운동을, 지금은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문학 담당 이사로 봉사하며 인사동 인문학 교실에서 매주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다. 실천하는 삶을 살아오며 수십 편의 소설과 동화, 번역서를 냈지만 동시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늦깎이 데뷔인 셈. 오래 흠모해 온 ‘시’가 느닷없이 작가를 찾아온 것은, 첫 손녀를 보고 눈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전철 안에서 작가는 그 순간의 감응을 적었고 그것이 바로 「갓난아기」다.
어제까지
없었는데
오늘
있다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손톱도
작다
_「갓난아기」 전문
이 동시집의 출발이 된 시다. 갓 태어난 생명을 대면하고 “숨이 턱 막힐 지경”을 경험한 이의 경외와 감격이 짧지만 강렬하게 시에 묻어난다. 느지막이 그러나 절정의 순간에 찾아온 시의 씨앗. 시인은 그 씨앗을 한 톨 한 톨 모았고, 그중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을 가려 한 권으로 묶었다.
“동심을 깊이 품어 안은 종심의” 시
무구한 눈빛과 연륜의 향기가 건네는 건강한 이야기
동심(童心)보다 한참 나중에나 지니게 될 종심(從心)은 동심을 깊이 품어 안으면서도 그것을 삶의 폭넓은 경륜과 깊이와 지혜로써 무르익힌 마음의 어떤 상태를 말함일 터이다. 종심이야말로 동시를 쓰기에 최적의 조건일 수 있고, 인생의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복되게 얻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바라봄의 눈이라고 하겠다._이안(시인)
이안 시인은, 『목욕탕에서 선생님을 만났다』에 실린 시들을 ‘종심의 시’라고 했다. 종심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독자에게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을 먼저 경험한 이들이 흔히 하기 쉬운 잔소리와 교훈조의 훈계가 없고 힘주어 메시지와 감동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70년 세월의 터널을 지나온 건강한 시선은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과 지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과 격려, 자성과 일상의 웃음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ㅂ
ㅈ
ㅆ !
국어사전을
뒤적이는데,
엄마가 문을 열었다
얼른 감췄다
_「사춘기 1」 전문
어른들은 지나온 사춘기를 떠올리며, 아이들은 지금의 제 모습을 떠올리며 입꼬리에 미소를 걸고 갖가지 재미있는 상황과 단어를 머릿속에 그려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물질과 인간 위주, 획일화되고 자기중심적인 세태, 파괴되는 환경과 공동체를 예민하게 바라보고 환기하는 시선이 있다. 그 시선은 공생과 공존의 길을 묻는다.
며칠째비내려먹이를구하지못해굶주리다허기진몸으로모처럼누군가에게밟혀죽은벌레한마리힘겹게물고가다가내발에밟혀죽으면집에서기다리는아기개미는어떻게하나……발조심!
_「개미」 전문
아무도 살피지 않는 저편의 존재들을 향한 시인의 시선이 사려 깊다. 시어의 배치에도 공을 들였다. 띄어쓰기, 문장부호 하나에도 의미를 얹어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고 행간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한다.
시인의 시는 간결하다. 간결한데 읽는 이가 들어앉을 자리는 많다. 어제는 하늘로 읽은 시어가 오늘은 바다로 읽힌다. 시가 여러 갈래의 목소리를 품고 그때그때 발아하며 새로운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시인은 손바닥 한 장 크기의 종이에 하늘을 끌어들이고, 파리와 나비를 불러 모으고, 등 돌려 앉은 이웃과 소외된 생명들을 둘러앉혔다. 그리하여 어린 독자들이 시를 통해 만나게 될 세계는 따뜻하고 다채로우며, 반성에서 긍정을 이끌어 내는 세상이다. 위기를 헤쳐 나갈 동력을 주고, 단단했던 마음을 풀어 주며, 호기심을 채워 줄 발견으로 차 있다. 그것은 손자손녀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할아버지의 소망, 모두와 함께 살아갈 앞날을 응원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은 그림책 『지옥탕』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손지희 화가가 맡았다. 재치 있는 그림에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여백이 있어 독자로 하여금 더 많이 상상하게 한다. 더불어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한 그림체가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