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물던 놈 진옥섭, 딴따라의 괴수 진옥섭,
20여 년에 걸친 그의 사무침이
우리 예술사를 다시 쓰게 하다!
여러분들 가운데 ‘노름마치’란 말의 정확한 뜻을 아시는 분이 쉬이 계실까 모르겠네요. 뉘앙스로 보건대 우리말 같기는 한데 도통 무슨 뜻인지 감이 안 잡히실 분들이 대부분일 거라 짐작해요. 이 책을 만든 저 역시도 맨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어라, 뭐지? 한참을 그랬었거든요. 참 묘하죠. 낯선 영어 단어 앞에서는 뜻 모르는 것이 부끄러워 쥐구멍이나 찾으면서 우리말 앞에서라면 그러거나 말거나 무지 앞에 어찌나 뻔뻔하고 당당한지.
‘노름마치’는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라지요. 곧 그가 나와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맺어야 하는데, 이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노름마치’라고 한대요.
자자, 서두가 좀 길었습니다만 제가 앞서부터 요란하게 ‘노름마치’ 타령을 해댈 수밖에 없는 연유에는 일생동안 ‘藝’를 향한 어떠한 간절함으로 삶을 지탱해온 우리네 진짜배기 예술가들을 이제는 좀 알아봐줘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사명감 같은 것이 이 책으로부터 생겨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것을 얼마나 모른 척했으면 우리의 것이 소중하다고 말한 한 명창의 말이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어로 남았을까요.
당연지사 그러할진대 각설하고, 이제부터 『노름마치』라는 책으로 여러분을 안내해볼까 해요. 참고로 이 책은 앞서 2007년도에 출간된 적이 있는데요, 2013년 6월에 다시금 펴내고자 계획하면서 전면적으로 증보를 하게 되었어요. 이 책에는 모두 열여덟 명의 우리 명인들이 등장하는데요, 지난 6년 사이 평균 나이 여든에 육박했던 어르신들에게 생과 사를 넘나드는 큰 삶의 변화들이 무쌍했던 까닭에 아니 그러할 수가 없었지요.
이 책의 저자 진옥섭 선생에게는 분명 지난한 작업이었을 겁니다. 말이야 전통예술을 기획․연출하면서 공연 홍보를 위해 쓴 보도자료를 고쳐 묶은 것이라지만,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무대 위에서 “기별 없이 치러버리는 굿판이나 춤판” 위의 삶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너머 안방 건넌방 부엌 밥상머리 삶까지 죄다 불러서는 저마다 한 맺힌 울음의 그 마지막 토막까지 토하게 했으니, 이는 전통의 가장 맛있는 부위를 찾아 나선 한 사내의 사무침이 진실하고 신실하지 않았다면 불가했을 터.
『노름마치』는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산 한 사내의 집념이며 사무침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무(武)와 무(舞)와 무(巫)와 무(無), 이 4무를 굳이 사무침과 맞장단치려 한 애초의 의도 같은 건 없었습니다만, 종래에 우리가 돌아갈 그 ‘무(無)’의 ‘텅 빔’과 ‘사무침’이라는 감정의 ‘작정 모름’이 암수한몸처럼 닮아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삶이, 예술이, 죽음의 그 본디란 것이 뭐 그리 다르겠습니까. 다 ‘절로’인 것을.
“뭘 봤으니까 저 수선을 떨겠지.”
진옥섭의 사무침은 ‘케케묵은 것’이 아니라 ‘켜켜이 묵힌 것’이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각 장의 구성으로 보자면 개론적 이야기인 서설과 각각 세 사람의 삶과 예술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페이지마다 ‘2013년 오늘’ 그들의 근황에 가까운 후기를 실었습니다. 이들 명인들이 어떠한 분야에서 각각 어떤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는지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보시면 편하실 겁니다.
예기(藝妓)에 소개된 셋은 춤추는 슬픈 어미, 장금도. 춤을 부르는 여인, 유금선. 중고제의 마지막 소리, 심화영. 남무(男舞)에 소개된 셋은 춤으로 생을 지샌 마지막 동래 한량, 문장원. 밀양강변 춤의 종손, 하용부. 우조 타는 ‘무학도인’, 김명덕. 득음(得音)에 소개된 셋은 백 년의 가객, 정광수. “적벽강에 불 지르러 가요”, 한승호. 초야에 묻힌 초당의 소리, 한애순. 유랑(流浪)에 소개된 셋은 포장극장의 소년 신동, 김운태. 흰옷 입은 심청 엄니, 공옥진. 마지막 유랑광대, 강준섭. 강신(降神)에 소개된 셋은 아직도 ‘왕십리 개미’라오, 김유감. 본향 꽃밭의 길라잡이, 이상순. 작두 타는 비단 꽃 그 여자, 김금화. 풍류(風流)에 소개된 셋은 춤을 일구는 농사꾼, 이윤석. 한려수도의 마지막 대사산이, 정영만. 진주라 천리에 제일무, 김수악.
대부분 기녀, 무당, 광대 등 순탄치 못한 삶을 산 사람들이라지만 이들의 피와 살과 뼈는 감히 신에 견줄 만큼 비교할 수 없이 남다른 예술 앞에 다다른 것에 다름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순간이 영원으로 통할 때의 그 가벼움을 이미 겪은 몸들이라고나 할까요. 무대 위에서 만난 열여덟 명인들이 무대에서 내려온 뒤에는, 그렇게 너나 나나 다 같이 늙어가는 몸뚱이로 범상할 때는, 노인정과 다방, 시장의 국밥집에서 마주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길 사람 속’을 물어 그들 스스로 삶에 대한 이력서를 쓰게 했던 거지요.
지금은 고인이 된 공옥진 선생이나, 그 가계가 워낙 유명해 심수봉의 집안 어른이라고도 알려진 심화영 선생이나, 온갖 데서 호들갑스럽게 불러낸 큰무당 김금화 선생이나, 그 이름이 대중적인 이들은 이들인 대로, 아직도 건재한 ‘판의 사람들’인데 ‘초야에 묻힌’이란 수사로 통째로 묻어버린 듯했던 이들은 또 이들인 대로, 『노름마치』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채 오로지 한 목표를 가지고 우리들에게 호소하고 있음을 압니다. “위대한 현존을 그대 생애에 한 번이라도 스치고 싶다면, 보시오! 우리 예술사가 결코 이분을 비켜갈 수 없습니다!”라지 않았을까요.
일어나 몇 차례의 소리판을 가졌으나 다시 쓰러졌다. 2010년 1월 28일, 문상객의 화제는 선생의 극진한 애주에 맞춰졌다. 한번은 심청가를 부르다 소반 위 물병에 술을 넣어두고 간간히 마신 모양이었다. 심청이가 인당수로 뛰어들 때 “풍덩”하고는 그대로 주저앉아 잠들어버렸다. 사태를 알아챈 고수가 북채로 옆구리를 찌르니, 번쩍 깨어 “인당수가 얼마나 깊던지 여태 빠지던 것이었다!”하며 태연히 소리를 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상가에 웃음꽃 퍼질 때 누가 내게 귓속말을 했다. 말년에 이제 한국은 판소리가 안 먹히니 LA를 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영어를 배워야겠다. 네가 나를 도와라!”말하는 그도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p208~209 「한승호」편에서
2010년 5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일인 창무극 심청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계보가 중한데, 창작의 창무극이 지정된 것은, 전 국민의 존경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달 6월,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며 “죽지 않으면 또 오겠습니다”고 했는데, 2012년 7월 9일 새벽에 전남 영광기독병원에서 타계했다.
빈소에 두레극장의 공연 장면이 영정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그 공연 때, 가수 박진영을 불러냈었다. 뽕짝도 한 소절하고 막춤을 맛나게 추어 기억에 생생하다. 만능엔터테이너가 된 그가 상찬의 추모글을 올리며 공옥진이 자신의 멘토임을 고백했다. 절정기였던 그 공연을 본 사람들은 두말없이 안다. 일인 창무극, 가장 완벽한 관객 장악이었다.
7월 12일 아침 영결식을 마치고 영광예술연구소 앞에서 노제를 지낼 때, 교촌리의 할머니들이 “공옥진이 간다”고 모두 모여들었었다. 무용인도 국악인도 아니었다. 그냥 동네 공옥진이었다. 이렇게 유명인과 마을의 이웃을 겸하긴 힘들다. 공옥진, 무대 밖의 삶도 예술이었고 베풂이라는 종교였다.
-p270~271 「공옥진」편에서
2006년 추석 무렵에 선영의 산소 벌초를 하다가 제초기에 오른손 검지를 잘렸다. “조상들이 사람들 손가락질하지 말라고 가져갔다”고 웃는다. 문제는 고성춤이 양반들을 조롱하면서 발전한지라 손가락질이 중요한 거다. 잘린 오른손 검지가 기하학적 기울기의 최종 꼭짓점인 것이다. 결국 고무 검지를 만들어 끼고 춘다. 춤판이 늘어 몽골, 중국, 동남아며 유럽까지 가서 춤을 춘다. 전에는 고성오광대놀이만 초청하였는데, 지금은 막간에 그의 <덧배기춤>까지 원한다. 무명옷 한 벌로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공연 후 몰려온 사람들이 큼직한 농사꾼의 손에 눈길이 멈춘다. 그러면 공연이 끝나 분장을 지우듯 검지를 쑥 뽑아 주머니에 넣으며 씩 웃는다.
-p381 「이윤석」편에서
무대란 모든 치레를 버리고 몸으로만 올라선 저울이라지.
멋으로 꽉꽉 찬 우리네 노름마치들, 한평생 거기서 놀았다.
한 사람의 집요한 그 ‘좋음’이 없었다면 곧 죽어도 만나보기 힘들었을 우리 예인들의 생과 사, 그 신과 명을 저 또한 집요하게 읽어나가면서요, 저자 진옥섭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들의 삶을 작금의 시대에 선보이고 싶은 욕망으로 간질거려 혼났더랬습니다. 기생, 광대, 무당이라는 직업적 특성을 달리하고서라도 몸으로 밀고 온 삶의 구절구절을 찬찬히 들여다보자면 평범하다 싶을 그 어느 가계 하나라도 범상치 않음으로 눈앞에 그려지더군요. 영화가 별거인가 이런 인생살이를 굽이굽이 풀어낸 것이 영화이지 싶은 확신 속에서요.
본디 우리의 것이라는 게 우리 역사의 흐름과 그 궤를 함께하지 않을 수 없던 장르적 특성이다 보니 천대가 환대로, 우대가 괄시로 일순 뒤집히는 배처럼 뒤바뀌는 형국을 한두 차례 맞닥뜨린 것이 아니었지요. 허나 이제 와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춤이면 춤, 소리면 소리, 악이면 악, 이 숙명의 예술이 귀하디귀하게만 전수되어 왔다면 이렇듯 뿌리 깊은 생명력을 유지해왔을까, 어쩌면 이 ‘못 가짐과 덜 누림’의 과정 속에 그네들의 피눈물이 예를 더욱 바닥 깊숙이 끌어내려 만물의 본바탕인 ‘흙’이 되게 한 것은 아닌가 하고요.
『노름마치』는 한번 손에 쥐면 도저히 놓을 수가 없는, 그런 무시무시한 운명을 타고난 책입니다. 저자의 문장들을 한번 보세요. 뼈는 뼈대로 살은 살대로 제각각 움직여야 할 그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뻗어갑니다. 힘이 있어요. 읽는 이들은 그대로 그렇게 복종할 수밖에 없어요. 바른 말만 가지가지 골라서 하거든요.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아슬아슬 찰랑찰랑 그는 종이 위에서 그가 그토록 뒤따르려마지않았던 춤으로 소리로 악으로 글을 씁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그 고독을 탐하”는 건 비단 그가 예찬한 ‘춤’의 증거만은 아닐 테지요. 책을 읽고 시간을 내어 진옥섭, 그가 기획하는 공연들을 자주 봐둘 일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그 순리에 제 숨을 다해가는 우리 예인들 하나둘 늘고 있는 요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