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상대와 마주하여 서로를
더듬고 만지는 행위로부터 가능해진다”
섬세한 비평의 손끝으로 길어올린 사랑에 대한 집요한 탐구
‘만짐’의 사랑 안에서 신비롭게 퍼지는 비평의 뉴에이지!
그 특별한 시간으로 초대하는 조연정의 첫 평론집
젊은 문학평론가 조연정은 「’유령’ 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라는 글로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는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평론가들이 최종심에 오른 것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는데, 심사위원들은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된다며 조연정의 편에 섰다. 그녀는 당선 소감에서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라는 말로 조심스러우면서도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소설 비평으로 데뷔한 조연정은 그 비평의 시선을 시에까지 뻗어나가며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올해부터 『문학과사회』 편집위원으로 합류, 더욱 풍성한 활동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기대를 향한 기분 좋은 첫인사를 건네듯, 데뷔 후 8년 만에 그녀의 첫 평론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제목에서부터 문학 작품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느껴지는 『만짐의 시간』이다. 이 제목에서 우리는 “작품의 안쪽을 오래도록 더듬으며 가능한 한 텍스트와 한마음이 되고자 애”쓰는 조연정의 비평이 가진 특색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자는, 이것이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비평가가 자신의 글쓰기를 ‘공감’ 혹은 ‘진심’이라는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해내는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신의 고민을, 이 제목에서는 또한 담아내고 있다고 이 글의 「책머리에」에서 겸손하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비평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애정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어가고 있”으며, “애써 사랑해온 그 대상이 바로 문학이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고백하는 비평가가 아닌가. 우리는 여시서 다시 한번 그녀의 글이 가진 힘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밀고 나가는 안간힘으로부터 세계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적 차원의 사랑과 ‘만짐’의 사랑 안에서 신비롭게 가능해진다. 결국 사랑은 우리의 이 초라하고 연약한 몸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 (32쪽)
애무는 최종의 완벽한 만족을 위해 거쳐야 할 단계는 아니다. 애무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결코 자기 수중에 거머쥘 수 없다는 사실을 은연중 감지했지만 쉽사리 그 불가능을 수용할 수 없는 자의 절절한 몸짓이다.
끊임없이 그저 상대를 더듬을 뿐인 이러한 애무는 그래서 윤리적이다. 그것은 전적인 이타성에 대한 체험이며 목적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애무의 진심은 멈출 수 없다는 행위의 속성 그 자체로부터 찾아야 한다. (529~530쪽)
위의 글은 신경숙과 한강의 작품론을 마무리하는 글이며, 아래 글은 강정의 시집 『키스』의 해설 도입 부분이다. 각각 소설과 시라는 다른 장르에 대한 비평의 글이지만, 이것은 또한 조연정의 비평의 색을 확인하게 해주기도 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가 추천사에서 “텍스트의 질감은 시선을 통해서는 찾아낼 수 없으며, 비평가의 손이 텍스트의 피부와 만나는 떨림을 통해 감지된다. 비평이 애무의 사건이라면, 우리는 이제 젊은 비평가 조연정이 텍스트를 만지는 저 손가락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했거니와,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 애무의 진심은 멈출 수 없다는 행위의 속성 그 자체로부터 찾아야” 함을 아는 비평가 조연정은 “‘만짐’의 사랑 안에서” 텍스트의 질감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비평의 새로움을 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총 4부로 이루어진 이번 평론집은 600쪽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만으로도 저자의 그간의 활발했던 활동을 짐작해볼 수 있다.
<1부 당신의 사랑>은 8편의 소설론을 모았다. 신경숙과 한강, 황정은과 김애란, 김영하와 김연수의 장편, 황정은과 김사과, 이홍과 노희준, 백가흠과 이기호 등 때로는 비슷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2부 우울의 연대>는 시론의 장이다. ‘시’와 ‘정치’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심보선과 진은영, 미래파의 두 번째 시집과 김경주, 김행숙, 이민하, 김선우, 이원, 김행숙, 이제니, 유희경, 박희수, 주하림 등 2000년대 이후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시인들을 따로 혹은 함께 조망한다.
<3부 마음의 풍경>에서는 김사과, 김유진, 정한아, 정이현, 하성란, 박민규, 김연수, 김태용 등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친 젊은 작가들을 짚어본다.
<4부 최초의 감정>은 일곱 명의 시인을 섬세하게 분석한 시인론이다. 2008년 등단한 유희경에서 심보선, 강정, 권혁웅, 허연으로 거슬러 올라가 김혜순, 김승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비평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문학을 사랑한다고 진심을 다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지만 물론 동시에 그 마음을 언제나 의심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는 그녀이기에 그의 행보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
애정 어린 손길로 더듬어 섬세한 비평의 손끝으로 길어올린 ‘사랑’의 텍스트 속으로 걸어가는 시간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어떤 비평가는 텍스트를 장악하려 하지만, 어떤 비평가는 텍스트를 애무한다. 텍스트의 질감은 시선을 통해서는 찾아낼 수 없으며, 비평가의 손이 텍스트의 피부와 만나는 떨림을 통해 감지된다. 비평이 애무의 사건이라면, 우리는 이제 젊은 비평가 조연정이 텍스트를 만지는 저 손가락을 발견할 수 있다. 비평가의 손은 텍스트의 표면들로부터, 그 피부를 타고 넘어, 마침내 텍스트 안의 어떤 소용돌이와 어떤 울음을 듣는다. 그가 시의 정치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인의 얼굴과 그 얼굴로 향하는 독자의 손길이 시와 정치의 매개를 증명하고 약속한다”라고 쓰고, 한강의 소설에 대해 “‘만짐’이라는 사랑의 감각을 동원하여, 세계로부터 비극적으로 거절당한 인물들을 세계로 활짝 열어 보인다”라고 쓸 때, 비평가는 이미 만짐의 세계로서의 텍스트의 얼굴을 더듬고 있다. 그 속에서 비평은 논리와 감성 이전의 윤리적인 몸의 사건이 된다. 비평가의 손길에 대해 텍스트가 진동하며 반응하는 순간, 비평가는 텍스트를 소유하지 않는 방식으로, 비평의 이타성을 조용히 실현한다. 조연정의 비평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미세하고 신비한 텍스트의 진동이다.
_이광호(문학평론가)
견고하다, 그러나 더없이 민감하다. 조연정은 과장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비평은 엄밀함으로 충만한 무엇이다. 과장하고 싶은 순간, 그녀는 다시 한번 개념을 확인하고 그 외연을 한정한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비평 전통의 맥을 잇는 클래식의 수호자에 가깝다. 그런데, 그런데, 조연정의 글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이 단단함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정념에 깜짝 놀라게 된다. 사랑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시작으로 조연정의 비평은 멜랑콜리, 고독, 우울, 애무, 욕망 등 마음의 풍경에 혼을 빼앗긴 자의 에스프리로 가득하다. 그녀의 비평적 촉수가 언제나 한 시대의 심상 구조, 그 미묘하고 말랑말랑하며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개념을 향해 뻗어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실은 자유분방한 재즈 아티스트였다는 것을. 이렇게 비평의 뉴에이지가 시작된다. 두렵다. _신수정(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