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는 목소리가 ‘우리’를 발견해낼 때,
희망은 자라나기도” 한다.
2004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면서 시단에 나온 조영석 시인의 두번째 시집 『토이 크레인』이 출간되었다. 첫 시집 이후 7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라 더욱 기대를 모은다.
2004년 당시 등단 심사평에서, “참신한 상상력이 가벼운 재치나 산만한 진술로 추락하지 않고 미적인 합리성을 가진 구조를 얻고 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는 시인은, 2006년 출간한 첫 시집 『선명한 유령』을 통해 동시대 몇몇 시인들이 보여주었던 난해함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그의 시적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시인은 그 첫 시집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을 정글로 바라보며, ‘육식성’의 사회 속에서 ‘초식’의 삶을 꿈꾸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적 현실과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일상잡사의 이면에 감춰진 전혀 평범하지 않은 비밀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형안은 이번 시집에도 그대로 이어져 다시 한번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사내는 소주의 목뼈를 움켜쥐고 있었다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 몇 닢을
얼어 터진 손바닥 위에 펼쳐보았다
녹슨 입술을 굳게 다문 구멍가게 앞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앉은뱅이 크레인 앞에서
사내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눈꺼풀 없는 인형들이 크레인의 뱃속에서
불면의 눈알들을 치뜨고 있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거스름의 날들
사내는 단 한 번도 등 푸른 지폐였던 시절이
없었다 동전 속에 입김을 불어넣고
크레인의 몸속으로 몸소 들어가는 사내
허공을 향해 허깨비를 잡으려 손을 허우적거렸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 것이
어디 쓸모없는 것들뿐이었겠는가
사내는 크레인 몸속으로 들어가
푹신한 인형들 속에서 잠이 들었다
크레인의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목뼈가 부러진 소주 한 병이
조용히 맑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_「토이 크레인」 전문
표제작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시집에서 현실은 ‘토이 크레인’ 앞에서 “허공을 향해 허깨비를 잡으려 손을 허우적 거”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거스름의 날들”에서 시인이 꾸는 꿈은 무엇일까.
거대한 세계에 대한 사유에 앞서 이번 시집에서 주목되는 것은 시적 자아가 자신의 내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근원, 나의 뿌리가 깊이 뻗어내린 그 대지에 대한 부정이 이 시집의 주된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 대지는 바로 가족, 그리고 아버지이다.
처음에 그것은
젖니도 채 안 빠진 입속의
붉은 혀였다
삼촌이 달려들어
반달을 만들어주마고
덥석 물더니
어머니 아버지 형 사촌까지
한입만 한입만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고
물어뜯었다
그것이 손톱처럼 작아졌을 때
나는 뒤늦게 그것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영영
벙어리가 되었다. _「꿈」 전문
서시인 「꿈」을 보면, 삼촌으로 시작해서 어머니 아버지 형 사촌까지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들이 시적 화자의 말을, 곧 꿈을 모두 물어뜯었고, 그래서 시적 화자는 벙어리가 되었다. 가족에 의해 꿈을 물어뜯긴 그가 써내려가는 시는, 그리하여 ‘말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 된다. 혀가 잘리고, 작아진 그것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던 벙어리의 나. 소리 나지 않는 그의 목소리가 담담하지만 더욱 절박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집에 들어오는 건/ 뭐든 병이”(「가족사진」) 들어버리는 황폐한 가족. 그 안에서 “늘 바깥만 그리워하였”(「외탁」)던 화자는 물위에서 사는 부초가 되기를 희망한다(「호적」). 자신의 뿌리를 뽑아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살고자 하는 그의 애틋한 희망 때문에, 다음의 「부부」라는 시가 그토록 아름답게 들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요한 밤
무거운 밤
당신의 머리 무게를 재는
나의 팔이 잠들지 못하는 밤
고된 하루의 노동이
꽁꽁 얼어 있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
파르르 떨리는 당신의 목이 안쓰러워
생침을 삼키는 당신의 침묵에
내 혀는 그동안 배운 모든 말을 잃어버리고
살며시 당신 이마에 손을 얹을 뿐
내 핏속으로 점점 침몰하는
당신의 머릿속 비린 하루를 느끼며
나도 그대의 머릿속에서
멀고먼 아침까지 숨을 참는다
고요한 밤 무거운 밤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두 사람의 줄기찬 불면(不眠). _「부부」 전문
시적 자아는 가족이라는 땅에서 뿌리를 거둬들이고, 자신의 의지로 새롭게 뿌리를 내리며 ‘우리’라는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 시 속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고된 하루 노동”으로 “파르르 떨리는 당신의 목”과 “당신의 머릿속 비린 하루를 느끼며” “멀고먼 아침까지 숨을 참는” ‘나’의 모습이다.
뿌리를 옮겨도 남루한 현실은 다를 바 없다는 비극의 확인. 하지만 말을 잃고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말이 아닌/ 이 세상 모든 것으로 노래하”(「순례자 2」)게 될 수 있음을 시인은 동시에 알게 된 것이 아닐까.
그가 새로이 내리려는 뿌리가 닿아 있는 곳은 바로 ‘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게는 ‘시’가 곧 ‘우리’이리라. 때문에 그 ‘시’ 안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이토록 남루하고 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이 노래를 읽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즉 “당신의 머릿속 비린 하루를 느끼”는 일, 당신과 세계의 비림이 실은 ‘나’의 것이기도 함을 절감하는 일, 그렇게 세계에 대해 ‘나’의 입장을 세워가는 일을 하는 것이겠다. 그러므로 이제 이 시들을 통해 눈을 뜨고도 어둠을 보게 되는 불행에 처했더라도, 함께 어둠을 보는 일은 그 어둠을 조금 밝게 만들기도 한다는 익숙한 말을 건네고 싶다. 온전한 꿈과 말을 잃게 하는 ‘우리’의 세계에서, ‘시’라는 목소리가 ‘우리’를 발견해낼 때, 어떤 희망은 자라나기도 하니 말이다._이재원(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오래 묵은 시들을 내보낸다.
더이상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웃고 있는
구한말 흑백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있어야 할 일들은 생기지 않았다.
사랑하던 사람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떴고
좋아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미쳐갔다.
그사이 이 땅의 대기(大氣)가 달라졌다.
팽팽하던 마음의 현(絃)이 꼬일 대로 꼬여서
끊어지기 직전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모진 삶을 쳐다보며
그래도 깔깔거릴 수 있는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하여 가장 소중한 나의 가족
봉순과 니체,
풀냄새 나는 것들 앞에선
여지없이 녹아내리고 마는
아내 덕분이다.
사랑한다.
2013년 9월
조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