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 (문학동네시인선 049)
- 저자
- 박태일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13-12-27
- 사양
- 130*224 | 132쪽 | 무선
- ISBN
- 978-89-546-2364-3
- 분야
- 시, 문학동네시인선
- 수상내역
- 편운문학상
- 정가
- 8,000원
-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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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태일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가 문학동네 시인선 49번으로 출간되었다. 2006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한 해 동안 머물렀던 몽골에서의 나날살이를 총 5부, 60편의 시로 오롯이 담아내었다. "언어의 생김새와 색깔, 소리 등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것의 맛을 적절하게 살려"내었다는 평가를 받은 『풀나라』 이후 11년 만에 낸 시집이라 더욱 관심을 모은다.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말결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을 바탕으로 낯선 몽골이라는 공간을 우리말의 리듬 속에 함축적으로 녹여내어 시적 서정의 공감대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든다. 박태일 시인은 몽골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에 통용되는 영어식 표기보다는 실제로 생활하며 듣고 말했던 현지 발음에 가까운 살아 있는 표기를 사용하였다.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지역어와 고유어 등을 살리는 노력에 공들여온 그이기에 이번 작업이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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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주막』 『가을 악견산』 『약쑥 개쑥』 『풀나라』, 연구서로 『한국 근대시의 공간과 장소』 『한국 근대문학의 실증과 방법』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1』, 산문집으로 『몽골에서 보낸 네 철』 『시는 달린다』 『새벽빛에 서다』를 냈다. 『허민 전집』 『무궁화―근포 조순규 시조 전집』 『소년소설육인집』을 비롯한 여러 책을 엮기도 했다. 2006년 한 해 동안 몽골에 초빙교수로 머물렀다. 현재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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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1부
이별
낙타 새끼는 양 복숭뼈를 굴린다
레닌의 외투
외도
창밖의 여자
높이에 대하여
밤기차
동행
낙타 눈물
사이다
수흐바트르 광장에 앉아
2부
달래
여름
조아라를 기억해주셔요
새벽 화장을 하는 여자
다리강가
신기루
손장난
욜링암
사를어넌
올랑바트르
사막
헙스걸 달래
수흐바트르 광장
해당화
3부
고비알타이
타락을 마시는 저녁
울리아스태는 울지 않는다
밤차를 놓치고
타르왁은 잘 잔다
들
첫눈
어뜨겅텡게르를 향하여─황동규 시인
길
열쇠고리
장조림
가을은
4부
붉은 여우
그 겨울의 찻집
북두칠성과 다투지 마라
유비비디오에서 알려드립니다
겨울 날래흐
백야
강우물
얼음 연꽃
말
푸르공
초승달
장례미사
5부
봄
떠돌이 눈
오츨라레 오츨라레
바트졸은 힘이 세다
생배노 몽골
사막에 비
나릉톨 시장이 젖는다
들개 신공
숨흐흐부르드
만들고비 가는 길
시인과 코스모스
해설 | 몽골을 살다
| 이경수(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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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아흔여덟 개의 물줄기가 흘러드는 어머니의 바다
그 시원(始原)의 공간에서 노래하는 시(詩)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태일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가 문학동네 시인선 49번으로 출간되었다. 2006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한 해 동안 머물렀던 몽골에서의 나날살이를 총 5부, 60편의 시로 오롯이 담아내었다. “언어의 생김새와 색깔, 소리 등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것의 맛을 적절하게 살려”내었다는 평가를 받은 『풀나라』 이후 11년 만에 낸 시집이라 더욱 관심을 모은다.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말결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을 바탕으로 낯선 몽골이라는 공간을 우리말의 리듬 속에 함축적으로 녹여내어 시적 서정의 공감대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든다. 박태일 시인은 몽골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에 통용되는 영어식 표기보다는 실제로 생활하며 듣고 말했던 현지 발음에 가까운 살아 있는 표기를 사용하였다.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지역어와 고유어 등을 살리는 노력에 공들여온 그이기에 이번 작업이 더욱 의미가 깊다.
가을 가랑잎이 겨울까지 흘러왔다 얼음 속에 켜켜 한소끔 몰려 앉았다 호롱불 눈을 밝힌 소들이 강 위로 건너온다 어미소가 송아지를 기다려 돌아섰다 다시 걷는다 큰 키 버들숲이 이고 진 홍싯빛 노을 강우물 번지 위쪽에선 늙은 내외 기러기가 물을 긷는다 쩡 한 획 굽은 톨 강이 등짐 내려놓는다 쩡
어디선가 말 뼈다귀 찾아 문 검둥개가 지나다 그 소리에 놀라 선다.
―「강우물」전문
나무 장작 조개탄 장수 다 돌아간 골짝
버스도 사람을 내려놓고 문을 잠근다
흰 낙타 털 흩뿌리는 밤
기울어진 연통을 안고
아이들이 게르 위로 날아오른다
능선에는 큰 키 낙엽송이 서넛
텅 어느 눈벼랑이 갈라졌나
개가 짖는다
잠결에 젖을 물리는 어머니.
―「백야」전문
단음의 의성어들은 원시의 생명력을 드러내며 ‘도끼’처럼 강렬하게 시적 화자의 내면을 쪼갠다. 그와 함께 시인은, 강을 건너는 “어미소가 송아지를 기다려 돌아섰다 다시 걷는” 풍경이나 잠결에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모습 등, 자연의 위협적인 생명력 앞에 놓인 삶의 단면을 능숙하게 접고 펼치면서 특유의 회화적 이미지를 그려낸다. 그리하여 어느새 몽골은, 잃어버렸던 그리운 풍경이 되어 마음에 조용히 걸어들어온다.
오츨라레는 몽골 말로 미안합니다
톨 강가 이태준열사기념공원 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벅뜨항 산 인중까지 관광 게르 식당이 번져올라
봄부터 가을 양고기 반달 만두가 접시째 떠다니는데
오츨라레 허리 세게 눌러서 아픈 발가락 당겨서
당신 나라와 당신 말씨와 당신 복숭뼈를 밟아서
―「오츨라레 오츨라레」 부분
허나 몽골이 우리가 잃어버린 따뜻한 장면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경제가 도입된 몽골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대자연이나 아직 때묻지 않은 순박한 삶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왜곡에 그칠지 모른다. 문학평론가 이경수가 해설에서 지적한 대로 “어쩌면 몽골에서 본 사막보다 더 막막한 사막에서 살고 있는 시인과 우리에게 몽골의 슬픔과 쓸쓸함은 우리의 나날을 비춰보는 거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칭기스항 공항으로 나가는 길” “좁은 3층 21세기 마사지 가게”에서는 “칭기스항 어머니 허엘룬 아내 보르테”가 서툰 “전신 마사지 발 마사지”를 하고 있고(「오츨라레 오츨라레」) “칭기스항이 어릴 적 마신 달빛 어넌 강에서 자란 어넌”(「사를어넌」)은 “한국 노총각 몽골 처녀 짝짓는 일을 보는 언니”를 도와준다. 단지 “한국말이 너무 하고 싶어서” “다음주부터 한국 호텔 굿모닝”에서 일하기로 했다는 어넌의 기쁜 표정 앞에서 시적 화자는 우울한 결말이 다가올 것임을 느끼고 있다.
겨우내 낭떠러지 추위에 떠밀려
기우뚱 뒤뚱 기름 녹고 접힌 두 등봉
털 빠져 헐거운 뱃가죽
짝과 새끼가 죽었을 때 낙타는 운다지만
오늘은 주인이 켜는 마두금 소리에
소금보다 짠 눈물을 끓이며
새끼에게 물릴 젖을 내어준다
어리석음이 어찌 덕이랴
낙타구름 떠가는 봄날
낙타는 사람을 배워 사람처럼 흐느끼고
나는 낙타를 배워
무릎을 꿇는다.
―「낙타 눈물」 부분
몽골에 밀려든 자본의 물결에서 되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괴로움 탓일까? 외려 시인은 사람과 동물 사이의 교감에 주목한다. “성냥개비 불붙는 첫 순간/ 유황불 젊은 날 다 보내고” “기름 녹고 접힌 두 등봉”과 “털 빠져 헐거운 뱃가죽”으로 묘사된 이 낙타를 시인의 자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낙타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주인의 마두금 연주를 듣고 사람처럼 흐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박태일 시인의 시에서 “노래로서의 음악성”이 주요한 특징으로 지적되어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몽골에서의 마두금 연주, 그리고 그에 화답하는 낙타의 울음소리는 시인이 찾아 헤매는 ‘시’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
두 억 년 앞선 때는 바다였다는 고비알타이
소금 호수 천막 가게에서
달래 장아찔 카스 안주로 주던
달래는 열 살
아버지 어머니
달래 융단 아래 묻은.
―「달래」 부분
헙스걸이 누워 있다 빈 컨테이너 담장 따라
셀브 강 물소리도 지친 방둑
햇살 지린내 그늘에서 푸른 헙스걸이 출렁거린다
한때 암사슴이 손바닥 위로 달렸다
삼나무는 잣나무와 줄기를 나누었다
산에서 내려온 순록 일가는 엎드려 별자리를 익혔다
잉어가 송어를 업어 키우는 민물 바다
물안개 지붕 위로 걸어오르던 아침해
낮은 콧잔등을 웃으며 엉겅퀴 누이는 키가 자랐다
헙스걸이 울고 있다 바잉주르흐 시장 밑길
눈가에 질척이는 식구들을 닦지도 않은 채
무엇을 지고 왔는지 해진 어깨로 여름을 길게 눕히고
지난밤 별자리는 모두 북쪽으로 건넌 것일까
술기운에 접힌 걸음이었을까
말젖술 묵은 통 속인 듯 쿨럭쿨럭 괴는 잠
타락에 양배추를 사 든 시장길
양배추보다 더 겹친 산과 들을 지나서
두고 온 두 천 리 고향길을 두루마긴 양 덮은 채
마흔 고비 헙스걸 맨발 바다가 잔다.
―「헙스걸 달래」 전문
헙스걸은 해발 1,645미터의 고지대에 있는 호수다. 넓이는 2,760제곱킬로미터에 달하고 수심은 262미터로 중앙아시아에 있는 호수 중에서 가장 깊다. 내륙 국가인 몽골에서 ‘달래далай(dalai)’, 즉 바다라는 이름을 얻은 호수로 몽골인들은 이곳을 ‘어머니’에 비유하며 신성시한다. 헙스걸은 “한때 암사슴이 손바닥 위로 달렸”고 “삼나무는 잣나무와 줄기를 나누었”던 곳이다. “타락에 양배추를 사” 들고 “산과 들을 지나” “두 천 리 고향길을 두루마긴 양 덮은 채” 잠을 자는 “맨발 바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박태일 시인이 몽골의 들판을 따라 흘러드는 아흔여덟 개의 크작은 물줄기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민물 바다를 보며 떠올린 것은 “아버지 어머니/ 달래 융단 아래 묻은” “소금 호수 천막 가게” 열 살 달래가 아니었을까? 크작은 물줄기 같은 삶의 나날들이 “둥근 슬픔에 찔리는 일”(「타락을 마시는 저녁」)이라 예감하더라도 “아이는 여자로 잘 자랄 수 있을까”(「게르는 둥글다」) 염려하고 응원하는 일. 그것이 아마 시의 기억술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곳 몽골에는 “올랑바트르 대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지어준” “한국 이름”을 가진 조아라가 살고 있다. 스물아홉 그녀는 “나릉톨 시장 들머리서 한국인 관광객이 냄새난다고 말하자/ 이러려면 몽골에 왜 왔어요 벌떡 얼굴을 세워/ 눈물을 찢어대던” 여성이다. “땅콩 까부는 듯한 말소리”(「조아라를 기억해주셔요」)를 지닌 조아라를 시적 주체는 기억하고자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잊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몽골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이 살고 있다. 별이 된 어머니와 많은 조아라들. 그곳에서 만난 우리의 자화상을 잊지 않는 데 박태일의 시가 기여할 것이다.
―이경수, 해설 「몽골을 살다」에서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태일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가 문학동네 시인선 49번으로 출간되었다. 2006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한 해 동안 머물렀던 몽골에서의 나날살이를 총 5부, 60편의 시로 오롯이 담아내었다. "언어의 생김새와 색깔, 소리 등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것의 맛을 적절하게 살려"내었다는 평가를 받은 『풀나라』 이후 11년 만에 낸 시집이라 더욱 관심을 모은다.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말결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을 바탕으로 낯선 몽골이라는 공간을 우리말의 리듬 속에 함축적으로 녹여내어 시적 서정의 공감대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든다. 박태일 시인은 몽골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에 통용되는 영어식 표기보다는 실제로 생활하며 듣고 말했던 현지 발음에 가까운 살아 있는 표기를 사용하였다.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지역어와 고유어 등을 살리는 노력에 공들여온 그이기에 이번 작업이 더욱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