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욱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2006)는 “‘나’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라는 발칙한 이야기로 출간 당시 많은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단순히 소재의 충격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독점적 사랑과 결혼 제도의 통념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이 소설은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연애-사랑-결혼을 박진감 넘치는 축구경기와 절묘하게 결합시키면서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서사를 만들어냈다. 2008년 정윤수 감독에 의해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되면서 다시 한번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논쟁적 주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축구를 사랑하는 남자가 축구를 사랑하는 한 여자를 만났을 때, 그 여자와의 사랑이 축구만큼 즐겁고 축구보다 뜨거울 때, 남자는 이미 유니폼을 입고 사랑의 구장으로 돌진할 모든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말하고 있다. “아내가 결혼했다”고.
‘아내’는 내 아내인데 ‘결혼’은 남의 것일 때, 아내의 손을 잡은 두번째 남편이 터무니없이 태연할 때, 남자는 진작 유니폼을 벗고 사랑의 잔디를 깎아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기울어진 사랑을 보는 바른 자세가 기울인 몸밖에 더 있겠느냐고. 『아내가 결혼했다』는 묻는다. 발칙한, 이상한,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랑만으로는 부족합니까? 그런데, 사랑이 뭐지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아내가 결혼했노라는 범주 밖의 속삭임(푸념이나 절규가 아닌)이 작가의 정당한 상상과 그 반추에서 파생된 목소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선한 방식으로 사랑의 두 얼굴을 관전할 수 있다는 점이 도덕적 통념을 벗어난 박현욱표 순정을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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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의 인물들은 자신의 바람을 이루고자 하는 태도에서만큼은 정직하고 비타협적이다. 박현욱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경쾌한 분위기도 근본적으로는 이같은 유연성과 비타협성의 어우러짐에서,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잡아내는 작가의 감각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경쾌함이라면 어떨까. 청산되지 못한 가부장제와 권위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밑그림이 쉽게 바닥나지 않을 것이라면, 박현욱의 저 경쾌한 행보는 좀더 지속되어도 좋지 않을까. _서영채(문학평론가,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누구도 이기지 않고, 누구도 지지 않지만, 그 순간에는 세상에서 최고로 재미있는 게임일 수 있는 경기. 그저 골을 넣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누구든 한 번이라도 축구공을 더 차볼 수 있는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신명나는 놀이. 그것은 그녀를 완전히 독점할 수는 없어도 단지 그녀를 곁에 두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경지의 은유가 아닐까. 두 개의 축구공이든, N개의 축구공이든, 상대편이 누구든, 누가 아군이든, 상관없이 축구 그 자체의 놀이에 몰입할 수 있는 것. 상대가 몇 명이든, 이성을 사랑하든 동성을 사랑하든 둘 다를 사랑하든, 지금 여기서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지극한 기쁨을 누리는 것은 폴리아모리의 진정한 이상향이 아닐까. _정여울(문학평론가)
■ 박 현 욱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장편소설 『동정 없는 세상』으로 2001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동정 없는 세상』은 섹스 말고는 어른이 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십대 남학생의 독특한 성장 과정을 밝고 건강하게 그려내면서 작가의 문학적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소설집 『그 여자의 침대』, 장편소설『아내가 결혼했다』『새는』을 통해 동시대 도시인들의 삶과 세태를 냉소적인 입담으로 가감 없이 짚어내면서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