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피, 시의 피를 위해 꺼내드는
“빛나는 단도”
문학 전문 기자이자 소설가, 시인이면서 다양한 저서를 펴내기도 한 정철훈의 다섯번째 시집 『빛나는 단도』가 출간되었다.
광주에서 태어나 소련 해체 이후 본토에서 러시아 관련 학위를 받은 시인은 이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특유의 강건한 문장을 무기 삼아 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역사와 시대를 작품 속에서 다루어왔다. 한국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된 아버지의 사연과 미증유의 살육을 겪었던 고향의 역사, 그리고 찾아온 현실 사회주의의 패퇴. 역사적 사건은 그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하여 남다른 가족사와 개인적 체험을 매개로 한 그의 시는 ‘북방’에 얽힌 민족사를 시 안에 적극 끌어들이는 한편, ‘광주(光州)’로 상징되는 한국 근대성의 파산 과정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며 역사와 현실을 노래했다. 정철훈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단단한 힘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된 『빛나는 단도』는 그러나 광주와 러시아와 관련된 소회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가 『빛나는 단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웅숭깊게 스스로의 내면을 주시하는 시인의 시선과 이어서 따라오는 자신을 향한 질문이다. 자신에게 시가 무엇인가 하는 시인으로서의 가장 근본적인 물음. “문자를 해득하기 전의 나를 규명하는 일은 그래서 이유 있음이다”(「독서의 습관」)라는 시구가 이번 시집의 열쇠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려한 수사적 성찬은 그의 시가 보여주는 바가 아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전철희는 “다층적 사유를 적확하게 전달하려는 시인에게”, “과장과 애매성을 수반하고 현실과 차폐된 경우가 많”은 화려함은 미덕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하여 해설에서 “정철훈의 강건한 말투가 사상적 고투의 흔적이라면 그 궤적을 복기하는 것보다 충실한 독해법을 상상하기 힘들다”면서, 그 작업에 기여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시집 속으로 들어간다. 명료하고 호방한 정철훈 시의 언어에서 “투박한 껍질 속 알을 감춘 진주처럼” 심원한 통찰을 읽어내는 것이다.
난 가끔 손재주 많은 꼽추 친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평생을 집시 무리에 끼어 세상을 유랑하다
폭삭 늙어버린 그런 꼽추 말이에요
바이올린도 켤 줄 알고 계집 맛도 좀 알아서
황혼녘이면 무리들 가운데서 혼자 떨어져
달을 쳐다보며 남몰래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그런 꼽추
유랑극단에서 피에로로 잔뼈가 굵고
어깨엔 우리를 빠져나온 사자에게 물린 상처가
훈장처럼 새겨진 그런 꼽추 말이에요
우리는 어느 날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친구가 되는데 그 기념으로
서로의 비밀 주머니에서 빛나는 단도를 꺼내
손바닥에 십자가를 긋고 피를 섞어
의형제가 된 것을 축하하는 그런 꼽추
그렇더라도 우리가 오래 붙어 있을 운명은 아닐 테니
내 소원은 꼽추보다 먼저 숨을 거두는 것
어느 날 내가 누군가에게 칼을 맞고 죽어가고 있을 때
우리의 빛나는 단도를 꺼내 아예 목숨을 끊어놓기를
그리고 축 늘어진 내 시체를 질질 끌고 가서
문밖 급류 속에 내동댕이쳐주길
시체가 뜨지 않도록 아예 내장까지 도려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그렇지 않나요, 비비안나!
럼주 세 통을 따서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잔을 채워요
빛나는 단도가 아직 잠자고 있을 때 실컷 마셔보자고요
-「빛나는 단도」 전문
표제작인 「빛나는 단도」는 시인의 내면을 솔직하게, 그래서 투박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해준다. 태생적인 불구, 그래서 고단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온 꼽추 친구는 시인에게 죽음의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이 죽음의 충동은 역설적으로 술잔을 채우고 춤을 추는 역동적인 삶을 떠올리게 한다. 앞으로만 진행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모두는 지나가는 존재. 미래는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게 불안하지만, 이 세상이, 가혹한 시간이 볼 수 있도록 피를 묻히는 것. 그것이 정철훈에게는 시가 아닐까. 이번 시집은 그의 언어의 피, 시의 피를 위해 비밀 주머니에서 그가 꺼내든 “빛나는 단도”일지도 모른다.
● 시인의 말
내게 뭔가 들이닥친 걸까요. 지나간다, 는 말에 문제 있습니까. 골목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한 명 한 명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집니다. 우연과 필연으로 타오르는 운명의 폭탄 말이죠. 어디서 왔는지는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는지 또한 아무도 모릅니다. 시간이 앞으로만 진행하는 한, 우리는 모두 지나갈 뿐입니다. 단 한 번 살기에 세상이, 혹은 시간이 볼 수 있게 피를 묻히는 것이겠죠. 나는 그것을 언어의 피, 시의 피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뭔가 들이닥친 걸까요. 지나간다, 는 말에 문제 있습니까.
2014년 봄
정철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