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를 하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맞다.
어쩌면 혼자 울 일이 많은 사람인지도…….
바리스타의 일은 언제나 내 앞에 있고, 위에 있으며, 멀리 있다
일흔여섯 가지 커피와 함께 울고 웃는, 일흔여섯 개의 짧은 이야기들
이 책의 작가, 용윤선에게 커피는 삶과 고스란히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바리스타이자, 커피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소년과 소녀의 엄마이자, 문학과 여행을 사랑하는 한 여자다. 아련한 느낌의 보랏빛 표지를 열면, 진한 커피향과 애잔한 삶의 깊이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잔잔한 면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일흔여섯 가지 종류의 커피와 어우러지는 일흔여섯 개의 짧은 이야기들은 우리 마음의 깊숙한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강렬한 울림을 준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커피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커피는 원래 그 향을 갖고 있어.
그냥 갖고 있는 향을 사람이 추출하는 것뿐이야.
없는 향을 만들어 추출하는 게 아니야.”
눈물과 커피는 진하다. 어쩐지 닮은 구석이 많은 것도 같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마주 놓고 앉아서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거나 안부를 묻는다. 또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고 싶은 시간, 커피를 찾는다. 그렇게 마음이 흘러가는 곳곳마다 커피가 고인다.
커피는 이제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국민적인 음료로 자리잡았다. 국내 커피시장도 제법 빠른 속도로 성장해 거리마다 카페가 넘쳐난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 힘’으로 하루를 버티고, 지속한다. 나른한 아침 출근길에, 점심식사 후 짧은 휴식시간에,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의 연장선에도 커피는 필수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카페인이 번쩍하는 순간의 힘으로 고단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커피의 정직함을 믿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그녀의 명함에는 ‘커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책은 그만큼 커피와 깊숙하게 연관된 삶을 살아온 저자 용윤선이 살아온, 평범하면서도 날카로운 날것 그대로의 삶이다.
이 기록은 일기장보다 내밀하고 오래된 편지보다 저릿하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커피와 많은 사람들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다. 그중에는 오래된 친구도 있고,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도 있고, 커피를 배우러 오는 수강생도 있고, 늘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가족도 있다. 또 어떤 때는 사람을 대신하여 책이 그 자리를 채워주기도 한다. 시와 소설을 읽는 일을 항상 기꺼워하며 스스로의 글을 적어내려가던 습관은 커피를 추출하는 것과도 같이 정성스러웠다. 산도르 마라이, 존 버거와 같은 세계적인 문호의 발자취를 따라 나서기도 하고, 한국의 이승훈, 이병률, 김소연 시인 등의 시집을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는다.
그녀가 푸른 생두를 볶고 갈아 정성스럽게 받아내는 한잔 한잔의 커피는 아마 그런 문학적 자양분으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깊고 깊은 마음이 커피 물줄기를 따라 모이고 모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항상 커피를 옆에 두고 사람을 가까이하며 살아온 정직하고 성실한 삶의 기록과도 같다.
사람과 또 함께 살아온 시간을 중심에 두되, 커피를 기반으로 시작된 이야기 사이사이에는 전문가다운 설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르치려 하지는 않는다. 친절하면서도 깊이감 있는 묘사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커피의 종류와 원두의 가공 및 특징으로 이어져 커피업계 종사자는 물론이고 일반 애호가들의 이해를 폭넓게 돕는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페모카, 아포가토 등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아주 기본적인 메뉴에서부터 원두를 그라인딩하여 드립으로 내려 마시는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브라질, 케냐, 인도네시아 등 산지별 원두까지 아우른다. 뿐만 아니라,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커피콩을 찾아 그것을 가공하는 커피 루왁, 찬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아주 오랜 시간 추출하는 더치커피 등 최근 들어 조금은 친숙해진 고급 커피도 등장한다. 그밖에도 샤커레토, 아이리시 커피, 민트 커피, 얼그레이 라테 마키아토 등 다소 생소하기까지 한 커피까지, 이것들은 모두 교묘하게 삶의 편편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 삶의 조각들은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어긋남이 없다. 울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모두의 것이 된다.
“커피 한잔 할래?” 우리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흔히 이렇게 말한다. “밥 한번 먹자”보다는 부담은 작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작지는 않다. 커피라는 게 그렇다. 일단 커피향이 코끝에 퍼지는 순간, 마주 앉은 사람들의 간극을 허물어뜨린다. 순식간에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가장 손쉬운 매개체가 되어준다.
우리에게는 살을 맞대고 부대끼는 삶 속에도 누구나 혼자 있는 시간은 충분히 필요하다. 울음이 차오르면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도 괜찮다. 차분히 돌아앉아 귀를 막고 홀로 고요 속으로 가라앉아 있고자 할 때, 조금 허전하고 외롭다면 이 책을 곁에 두기를 권한다.
울고 싶은 일이 넘치는 요즘, ‘울기 좋은 방’이 있다면 참 좋겠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눈치보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